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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기형아를 주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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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아를 주셔도

6개월이 지난 뒤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너 기형아라면 어떻게 할래?" 그때 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낳아야지."


저는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고, 1997년 셋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하면 보통 3개월 때부터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혈압은 정상인지, 임신 중독증이 있는지 등등을 알아보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풍진 검사입니다.  풍진 검사는 선천성 기형아 검사와 쌍벽을 이루는 것인데, 정식 명칭은 선천성 풍진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풍진은 아이나 어른이 걸려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임산부가 걸리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질환이 생긴다고 하는데, 태반을 통해 풍진 균이 침투한 경우 태아의 심장, 눈, 귀에 이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풍진 때문에 태아에게 생길 수 있는 병은 대략 20여 가지나 되기 때문에 임산부가 풍진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면 3개월 이내에 낙태를 시키는 것이 보통입니다. 아이나 부모가 평생 고통 속에 사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개인 병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병원에 나가 일을 돕고 있었는데, 병원 직원들이 1년에 한 차례씩 건강 검진을 하는 기회에 저도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풍진에 감염되다

검사 결과 제가 풍진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남편은 그 사실을 저에게 숨기고 다른 증상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했습니다. 더욱 정밀한 검사를 받기 위해 샘플을 일본에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급성으로 감염된 것으로 판정이 나왔지만 낙태 수술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후 남편은 저에게 사실을 말해 주면서 "설사 아기에게 이상이 있더라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기형아나 문제가 있는 아이라도 우리는 감사히 받자"고 했습니다. 

어떤 집회 때 "장애아를 낳은 것은 왜 그렇습니까? " 하고 어떤 자매가 목자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잘못으로 그런 경우가 있다."는 대답이 있었는데 이 말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한테 부담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사실 친정 쪽으로도 시댁 쪽으로도 장애아가 있습니다.  차별이 심한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잘 되어 있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조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죄가 많아서 장애아를 낳을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목자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지도 못했습니다. 

남편의 병원이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점심때는 집에 온 식구가 함께 모여 식사를 했는데, 그 전에 먼저 기도부터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기도도 안 나왔습니다.  남편이 저를 위로하고 친정 어머니도 "그러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까 감사히 받아야 된다.  정상아를 주신다고 믿자"고 말씀했지만 제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복잡해지고 아이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다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면 눈물이 나왔습니다.  매일 울어서 얼굴이 부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교회를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피곤해서 그렇다고  인사를 받았습니다.

  장애자를 주셔도 감사하자

어느 날 남편이 "서양 사람들은 인종도 틀린 아이들을 정상아보다 장애아들을 택해 입양해 가지 않느냐? 하물며 우리 자식인데 비정상이면 어떠냐? 그 사람들도 얼마나 잘 키우는데"라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 맘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감사히 받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정말 외국인들은 장애아를 입양해서 잘 키우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데 제가 자식을 지우려고 했다는 것이 너무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며 '그래 어떤 아이를 주시든지 감사히 받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기도를 할 때 "정상아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어떤 아이든지 감사히 받고 잘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6개월이 지난 뒤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너 기형아라면 어떻게 할래?" 그때 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낳아야지."


그런데 임신한지 9개월쯤 되었을 때 텔레비전에서 두 명의 장애인이 스웨덴으로 배낭 여행을 간 내용을 상세히 보여주었습니다.  한 명은 뇌성마비로 말을 잘 못하였고, 다른 한 명은 휠체어를 탔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장애인도 저렇게 꿋꿋하게 살 수 있구나'하는 사실을 알고 마음의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이었는지 눈물이 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하기 3년 전인 1988년 꿈을 꾸었습니다.  남편은 가끔 꾸면 일어나서 일기장에 적어놓는데 지금 그것이 태몽이었습니다.  동굴에서 애를 낳아 데리고 오는 꿈이었는데, 셋을 낳아 데리고 왔습니다. 

큰애 낳기 전에는 제가 또 태몽을 꾸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과수원이 있었는데 과수원 아저씨가 사과를 따가려고 했습니다.  다 빨간 사과인데 파란색 사과가 세 개가 있었습니다. 보통 사과처럼 연두 빛이 아니라 파란색 사과였는데, 굉장히 큰 사과여서 저는 그 사과를 세 개 따서 봉투에 넣어 왔습니다.  또 한 친구는 거북이 세 마리가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저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기도와 이런 꿈 이야기들도 저희에게 위로와 힘을 주었습니다. 

1997년 11월 21일날 새벽 5시에 통증이 시작되어 병원을 찾았고, 도착한지 2시간만에 분만을 했습니다.  대기실에 있을 때 남편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혜경아, 잘 키울 수 있지? 자신 있지?" 그래서 저는 "잘 키울 수 있어요, 자신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낳기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며 고통을 참았습니다. 남편은 "할렐루야"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낳고 보니 아이는 정상아였습니다.  "할렐루야"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이의 가슴에는 검은 반점이 하나 크게 있는데, 의사는 "풍진 균이 뚫으려고 하다가 남긴 흔적이군"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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