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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고난을 통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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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직 집사 (남, 42세, 충현교회, 서울시 송파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믿음

  나는 어린시절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큰 누이에게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꼬박 꼬박 이름을 불렀었다. 그 당시에 우리집에서는 큰누이만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는 나에게 ‘너 오래 살고 싶으면 나에게 누나라고 불러. 그러면 하나님이 오래 살게 해 주실 거야.’라고 했다. 나는 ‘하나님이 어디 계신데?’라고 물었고 누나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라고 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그 뒤로 교회를 다니며 그저 막연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는 되었지만 어린 마음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계실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만 잠시 가졌을 뿐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적도 없었고 신앙도 깊어지지 않았다.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걸치고 있는 형식적인 신자에 불과했다.
  1989년에 결혼을 하면서 ‘칼라현상소’를 개업하였다. 작은 평수였지만 10년 전 당시 한달에 600만 원의 순익을 내었으니 작은 벌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나의 믿음이 형식적이기는 했으나 십일조만큼은 빠짐없이 드렸었는데 막상 수입이 많아지니까 십일조를 내는 것이 아깝게 느껴져 한 번, 두 번 거르는 일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돈을 버는데 재미를 들여서 주일날에도 가게 문을 열고 조금이라도 손님을 더 받다가 예배가 거의 끝날 즈음에 성전에 들어가곤 했다. 말하자면 성전 문턱만 밟고 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까 나라도 얼굴을 비추고 와야 하나님께 덜 죄송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십일조를 잘 내지 않아도 이렇게 잘 되는데 굳이 십일조를 바쳐야 하나?’ 하고 생각하며 아예 십일조를 드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십일조를 내는 것은 그렇게 아깝게 여기면서도 아내가 조르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자동차는 가장 좋은 것을 타고 다녔다. 그런데도 아내는 늘 나에게 불만이 많았고 자주 다투었다.


연속된 고난

1992년 1월 1일에 처갓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가족들과 함께 스키장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길이 너무 막혀 짜증이 나 있는 상태에서 인터체인지에 들어가는 길을 잘못 들어 후진을 하다가 가드레인을 들이 받고 말았다. 나는 새 차가 부서진 것이 속상해서 아내에게 스키장에 안 간다는 사람 들들 볶아서 나오게 하더니 스키장에서는 한 시간도 못 있고 길에서 시간 다 보내다가 차까지 부서졌다고 화를 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내는 진심으로 나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다. 이유는 친정 식구들 있는데서 내가 화를 냈으므로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혼이란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서 아내를 달래도 보고, 용서도 빌었지만 아내는 돌아서지 않았다. 나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아내의 굽히지 않는 고집으로 할 수 없이 법원에 이혼 소장을 접수시켰지만 이혼사유가 안 된다며 기각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5개월 후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 친정으로 갔다.
  친정으로 간 아내를 설득하여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아내가 다시 가출하기까지 5년을 더 살았지만 이미 서류상으로만 부부일 뿐 실상은 부부가 아니었다. 아내는 가출을 하면서 아이를 두고 나갔는데, 아내가 집을 나간 후 딸아이는 나에게 어떤 아저씨가 자주 집으로 찾아와 아저씨랑 같이 살자고 했노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친정에서 운영하던 사업장에 근무하던 한 사람과 사귀었었는데,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고 친정어머니를 따라 억지로 교회에 몇 번 나간 뒤에 한 교인의 중매로 나를 알게 되어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 부모 곁을 떠나 자유로우니까 교회를 등지고 살면서 결혼 전에 사귀었던 그 사람을 못 잊어 다시 만나다가 끝내는 가정을 버린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가정을 지키기 위해 멀리하던 교회를 다시 찾게 되었고, 아내와의 불화가 나의 불신앙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생각이 들어 회개하며 주일은 물론이고 수요일과 금요철야에도 열심히 참석하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는 것 같아 작정새벽기도까지 했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집을 나갔고, 하나님께 매달리던 나의 노력도 허사가 되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잘 되던 가게가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가게 건물주가 친척이기에 믿고 계약서 하나 제대로 받아놓지 않고 보증금을 주었었는데, 건물주는 받은 적이 없다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하소연 할 데도 없이 답답하기만 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하는 수없이 빈손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나는 물질의 어려움으로 더욱 허덕이게 되었다.

  연속된 고난으로 나는 ‘신앙생활을 엉망으로 하더니 결국 가정도 깨지고 번창하던 사업도 망하고 빈 몸이 되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때 내 마음으로 사무치게 깨달아 진 것은 앞으로는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십일조 생활을 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믿음생활을 잘하리라는 것이었다.


소원을 주심

  그 후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리라’고 작정하고 찢겨진 마음을 안고 힘없이 강남금식기도원을 찾아갔다. “하나님, 돈이 우상이 되어 돈만 좇으며 십일조도 안하고, 예배가 다 끝나갈 때 겨우 참석하여 그게 주일성수한거라고 여기고, 뉘우침도, 깨달음도 없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 이런 비참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의 뜻만을 따르며 살겠습니다.”라고 회개기도를 하던 중에 내 마음 가운데 소원이 생겼다.

  먼저 딸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는데 딸이 장차 하버드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두 번째로는 나는 경기대학을 나왔는데 연대 영문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소원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내게 소원을 주신 대로 내가 연대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고, 또한 미국에 계신 고모님께서 나의 친아버지께 전화를 하셔서 내가 혼자서 딸 키우느라 고생이 많으니 유학 비자만 발급받아 들여보내면 딸 은희를 미국에서 학교도 보내고 키워주겠노라고 제안하셨다. 그때가 2002년 7월이었다.

  그 뒤 유학원에 가서 상담한 결과 내 재정상태가 부족해서 지금은 자격미달이라며 1년 후에 다시 해보자고 했다. 맘은 급했지만 웬일인지 다른 유학원에는 가고 싶지 않아 1년을 기다렸다가 올해 9월에 다시 그 유학원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내 재정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한번 시도해 보자는 대답을 듣고 나는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기도원에 올라가 먼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다음으로는 미국 비자 받기가 아주 까다롭고 어려우므로 기도로 준비했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 인터뷰를 해야 가장 좋게 무리 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 꿈속에서라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후 숙소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25라는 숫자가 또렷이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25일이라고 보여주셨는데도 날짜가 촉박할 것 같아 내 생각대로 시일을 앞당겨서 인터뷰를 잡았다가 결국은 불합격하고 하나님께서 꿈에서 지시하신 그 날짜에 합격이 되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쓰라린 고난의 자리에서 뼛속 깊이 사무치는 깨달음을 주셨고 기도하게 하시고 소원을 주시더니 그 주신 소원대로 모두 이루시며 믿음으로 새롭게 일어나게 하셨다. 이제 나에게 또 다시 주신 꿈은 새 가정을 이루는 것이고 십일조 일억 원을 드릴 수 있는 재물의 축복이다. 그 재물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주의 복음을 위해서만 쓰여 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 출처 : 강남금식기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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