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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날 다시 살리신 주님

첨부 1


- 간증 : 임 한나 집사   

지독한 몸부림속에 주님이 필요했고
작은신음소리에도 응답하여 주시는 주님..
약하고 허물많아 때론 서로 아파하며 상처를 주고 받았던 모든 일들을 이시간 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없이 연약하지만 있는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여 주신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하길 원합니다.
날 다시 살리신 주님을 잘 증거하게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은 내게 커다란 믿음을 주시기 위해 '건강'이라는 위기와 '환경'이라는 위기를 허용하셨습니다.
나만큼은 예외일것이라는 생각을 무너뜨린 환경의 위기는 그럴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고통이라 느꼈던 아픔이 고통으로만 자리잡지 않아졌고 처절할 정도로 내 자아를 무너뜨릴만큼 부서져야 했던 사건들을 통해 성전에 무릎꿇어 밤낮 가릴틈 없이 '앙앙'울어대던 통곡은 내게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할수 있는 축복으로 날 이끌어가셨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갖고 싶었던 것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해야했고, 가져야만 했기에 늘 그 무엇인가를 향해 끊임없이 열심을 내었었는데 하나님은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고 하나하나 회개를 시켜가셨습니다..

모든 풍족한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누림이라는 특권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오래전 후배를 통해 깊이 생각하게 했던것은 자연을 보면서 너무 아름답고 예쁘다는 스스럼없는 나의 표현과 늘 거침없이 내가 가진것들을 통해 자연스레 표현했던 내 모습을 후배는 지적하였습니다.
정말 먹을것이 없어 살기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이들에겐 자연스런 표현조차 상처를 줄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앞에 나의 모습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없어보고, 잃어보고 나서야 나 자신의 풍족함이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상처가 될수 있었구나라는 아픔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인가 이거다 싶을땐 밤을 지새우면서라도 해내고야 마는 집념이 강했고, 누구한테 지는걸 싫어했고, 유독 누구의 간섭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난 내 스타일대로 독특한 색깔을 지닌채 자유롭게 살아야하는 내 삶의 모습은 십자가 앞에서 버려져야 했고, 죽어져야 했기에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강할수록 그 소리는 더욱 크기만 했습니다.
친구 목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임한나에게 하나님이 아픔을 허용해야 했던것은 끼가 있기에 아픔을 주지 않으면 다른데로 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신도의 삶이 아닌 그 이상의 삶을 원하시는데 자꾸 주저앉는다며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대학시절 6년간 '사모'에 대한 기도와 준비를 했었고, 결혼에 대한 인도가 분명히 있었지만 도망쳤습니다.
자유롭게 살길 원하는 나의 기질과, 늘 약했던 내 자신의 건강이 짐이 될까봐 두려워 도망친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 내뜻, 내 의지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값을 지불하면서 기가 막힐 웅덩이속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날 부르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왜 그렇게 병에 눌려 침체되었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병의 깊이가 더해갈때 하나님은 광진교회로 날 끌어내셨습니다.

놀라우리만큼 하나님은 날 치료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사실 새벽기도는 광진교회 와서야 장기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다닐때 작품활동을 늘 조용한 밤에 즐겨하던 습관이 있었기에 밤에는 좀 강하지만 새벽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왠지 새벽시간에 끌려 나오고 있었고 워낙에 담임 목사님의 말씀이 강해 말씀에 비추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내게 회개의 눈물을 쏟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의 사명을 주셨는데 늘 걸으면서, 생활하면서,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는 해왔지만 마음과 무릎을 꿇어 진지하게 기도를 하지 못했다는 것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못했다는걸 회개 시키셨습니다.
기도가 되어지고 즐거워지면서 내 소리가 높았고 내 생각이 많아 시끄러웠던 마음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어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부분적으로 들렸던 말씀이 말씀 전체가 다 내 말씀으로 다가와졌고 나도 모르게 'Amen'이라는 소리에 앞서 '그래 맞아 그게  내 모습이구나' 라는 성령의 채찍에 통곡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진저리나고 자지러질 정도로 더덕더덕 붙어 있었던 우상 덩어리를  보게 하셨고, 환경이라는 위기와 건강이라는 위기를 만나게 하신 이유를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되면서야 왜 내게 이런 고난이 허락되었는지, 이 고난이 날 정말 행복하게 하셨구나 생각하며 감사해서 예배시간에 말씀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현재의 불편한 생활들이, 위기적인 건강이 날 하나님 앞으로 꿇게 하셨고 진정한 축복속에 행복한 날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예전처럼 풍족했고 하고 싶은대로 살았다면 하나님을 찾는 열심보다는 또다른 열심을 내고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도의 비밀을 알게 하셨고 기도하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게 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이 날 향한 '전도'임을 보게 하셨습니다.
늘 나의 장애는 건강치 못함이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자주 중단되어졌고,  의욕이 사라져 할 수 없었습니다.
투병생활하면서 내 삶속에 차츰 기도의 힘이 커져갔고,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그럴수록  전도동력 세미나는 내게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2박3일이란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이 수반되어지는지 모릅니다.
몸이 아파 온전히 말씀 드러내기가 힘겨웠고 여러가지 심한 반응들속에 이겨내려 몸부림쳤습니다.
고통스러울수록 내가 살아야 했기에 이미 배정되어진 숙소에 들어가길 포기하고 맨 앞자리를 사모하여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때마다 성령의 역사가 다르며 특별하다는 생각에 계속 참여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전도동력 세미나 6번째 참석하던 이틀째 기도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강한 병마가 내 속에 틀어잡고 있었는지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던 3천명이라는 무리에 섞여 기도하던 난 숨이 넘어갈 정도로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영적싸움을 해야했고 견딜수 없는 고통스런 아픔과 함께 수반되어지는 구토증에 영적 전쟁이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때 난 왜 목사님께서 기도때마다 "입벌려! 더 크게 벌려!"라며 명령을 왜 그토록 하셨는지, 입을 크게 벌려야 악한것이 나간다는 의미를 체험케 했습니다.
작년 7번째 변함없이 전도동력 세미나에 참석했고, 갈수록 사모하여 기대되어지는 마음이 컸었기에 하나님께 더욱 매달렸습니다.
죽기살기로 매달려 기도할 때 성령하나님이 담임 목사님을 통해 병마를 함께 쫓아 내 주신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난 전도동력 세미나가 '능력'을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후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보혈로 satan과 싸워 명령하여 쫓을 수 있는 영적인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도동력 세미나를 5번째 참석한 후부터 나에게 전도동력이 임함을 실감케 했고 늘 베낭속에 신문과 주보를 담고 미련할 정도로 헤치고 다니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어느 날 부목사님이 시화 십만명 영혼구혼을 기도하실때 성령의 음성으로 내 마음에 가득 담아 주셨습니다.

그 후 시화 십만명 영혼구원에 vision을 두고 기도하면서 지경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가까이에 있는 APT중심으로 돌았던 전도활동이 교회주변에서 먼쪽, 잘 가지 않는 APT를 전도 대상지로 삼아 지경을 넓혀 가는것이 하나님이 내게 향한 선하신 뜻이라는 생각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순종하고 나간 날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웠습니다.
예비된 영혼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깨어지고 상할대로 상해있는 정말 나처럼 주님이 필요한 56세의 아저씨가 계셨습니다.
10층부터 내려오던 중 5층에서 만나 접촉 첫날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아저씨는 1년이상 사람과 얘기해 본것이 오늘이 처음이라며 눈물을 닦고 또 닦고 하시면서 마음을 여시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슬픈 어린아이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날 전도특공대를 마치고 활동하러 나가던 중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산책하러 나가니 20분후에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할말이 많다고요.. 3차 만남을 통해 등록이 되었습니다.
아저씨의 거실엔 60개의 빈 소주병이 가득 차 있었고 몸을 다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진통제를 먹고 물을 마시며 교회를 따라 나서는 아저씨의 모습...
부인도, 자식도 다 떠나간 빈 자리에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놀라우리만큼 그 분을 이끌어내셨고, 순한 양처럼 따라 나섰습니다.
주일 낮에 교회에서 점심식사를 하시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너무 맛있다며 연약한 웃음을 짓는 그 모습속에 아린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하나님이 그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게 하셨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으로 몰아가시는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난 최고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 이제는 자유할 수 있는 기쁨과 감사와 기도를 맛보아 가며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또한번 육체적 아픔을 통해 걷지도 앉지도 못할 정도의 고통스러움을 끌어안으면서 약과 의사보다 더 큰 믿음을 소유하며 부목사님의 기도와 담임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통해 치유됨을 경험하면서 난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 주님.. 목사님을 돕는 확실한 전도자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기에 더욱 감격스런 자유함을 찬양합니다!! "

날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과의 싸움속에서 주님을 향한 뜻을 발견하고 한가지 일에 집중하여 나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숱한 갈등들이 주님만 바라보지 못한 탓에 내뜻 내 의지대로 행함으로 satan에게 허용 되어짐으로 낭비적인 삶을 살았기에 너무나도 많은 시간 회개와 가슴앓이 속에 회개하며 몸부림쳤지만 주님은 그런나를 끝까지 오래참으심으로 품어주셔서 주님의 자녀로 온전한자로 세워가시길 원하시는 사랑임을 알게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좀더 하늘을 향해 하나님만 바라보게 도우소서.
본질적인 뜻을 잘 분별하여 잘 살게 도우소서.
약한 나의 모습속에서 다시 살려주신 주님을 증거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잘 증거하게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루하루 왜 이렇게도 시간이 빨리 가는지 4년만 있으면 50이 되어가는 내 자신을 바라볼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긴시간 신앙생활속에 요즈음처럼 생생한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감격스럽고 감사한 날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날 어쩌면 너무 막연하고 너무 추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니었나도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담임 목사님을 만난 3년 7개월은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내 자신의 영적상태를 정검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커서 목숨을 걸고 말씀을 전하시며 영혼구원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모습속에서 때론 휘청거리며 내려오실때까지 안수를 해 주심으로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은 긴 시간 가슴 절이도록 감사해서 밤새워 기도함으로 보답하고도 싶어 기도하다 울며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내 연약한 육체를 이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쓰며 몸부림을쳐야 했는지 알기에 목사님의 그 바쁜 시간속에서 때론 건강이 좋지 않은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하나님이 담임 목사님을 강하게 품어가시는지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향해가는 마치 사도바울처럼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아니하는 담임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철저히 하니님께서 지켜가심을 보게 하셨습니다.

나에겐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광진교회 처음 올땐 사실 찬송가 한곡 부르기도 힘들 정도의 건강상태였고 자주 아프다는 말을 많이 했던 난 지금은 거의 아프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었고 질병도 속는 것이란 걸 알게 되면서부터 긍정적인 언어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약도, 의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만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있으면 사명을 다 할때까지 병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 내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Amen'으로 받은 난 2년 가까이 병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18알씩 약을 먹어야 했던 난 약만 보면 체한 듯 구토증을 일으켜야 했고 약이 너무 지겹게 느껴질때쯤 내겐 "죽이시든 살리시든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두려움이 사라졌고 죽으면 천국가면 되고 살면 감사하며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딸넷 중 둘째로 자란 나에겐 부모님의 나쁜 질병이 다 내게로 유전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부터인가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한 언니나 동생이 아프지 않고 결혼하지 않은 내가 다 짊어졌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이 강해 그 나쁜 질병의 저주를 다 끊어냈다면 나한테까지 육체적 가시라는 질병의 무게가 이토록 무겁지 않았을텐데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지 못하고 산 부모님의 영향권아래 유전적인 질병을 짊어진 채 너무나 오랜 시간속에 시달려오면서 때때로 버거워 하면서 죽기를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난 담임 목사님을 만난 이후에야 비로소 그렇게 무겁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끔찍한 내 몸상태를 들여다보면서 죽음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췌장에, 간에, 신장에, 난소에 커다란 혹을 달고 비균형적인 몸을 끌어안고 2개월에 한번씩 CT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통해 진행과정을 늘 체크해야 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난 병원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날 창조하신 하나님께, 전능하신 하나님께, 이미 다 이뤄놓으신 주님의 십자가속에,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는데 더욱 큰 믿음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작정기도로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사람들은 내게 계속 병원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난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늘 엄마 역시 병원생활을 자주 해야했고 집안의 어려움을 겪은 후 아직도 남아있는 후유증으로 인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난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부르짖고, 또 울부짖으면서 매달릴때 하나님은 내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가끔씩 위기로 느껴질 정도로 심한 증상이 나타낼때마다 " 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수없이 외치다가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난 여지없이 병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내게 다른 사람과 다르니 늘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늘 힘들게 일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곤 했습니다.
육체적 가시를 통해 난 한 순간순간 주님께 맡기게 되었습니다.
전도대회 선포후 기관지천식으로 엄마는 입원을 하셨고 순간순간 기침과 함께 제대로 호흡을 하지 못하여 헉헉거리며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는 엄마의 모습속에 가슴이 아파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나 역시 늘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었고 늘 감기에 젖어 살면서 3개월 이상씩 힘들어했고, 4번 정도로 천식성 기관지염 증상으로 가볍게 숨을 못쉬어 힘들었던 경험이 엄마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속에 잊혀진 숨 못쉬는 고통스러움이
더 크게 상기되어져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 절대 나에게 기관지천식까지 유전되어진다면 차라리 데려가 주세요..
정말 싫어요.. 절대 안돼요.."라며 난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으며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은 안돼요.. 철저히 목사님을 돕는 전도자가 될께요.. 건강하게 도우소서."
나에게 있어서는 절규에 가까운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난 베낭을 메고 전도에 앞장서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하면 할수록 더 열심을 내면 낼수록 satan은 날 마치 죽이기로 작정한 듯 끊임없이 장애물이라는 불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전도하기로 결심한 것은 작년 3월부터였습니다.
난생처음 초인종을 누르며 전도하기 시작했고 3등과 1등을 경험하면서  나만의 전도방법을 갖게 하셨습니다. 뭣모르고 무대뽀로 하던 전도에서 요즈음은 순간순간 지혜를 주시며 체계적으로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도움을 체험합니다.

광진교회에 와서 기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강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간절히 기도로 무릎 꿇을때 주님의 따뜻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의 아픔을 아신다는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 부흥회때 부흥강사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날 지적하셨습니다.
" 전도의 사명이 있습니다 " 라구요.. 목사님도, 나도 서로가 얼굴을 본적도 대화해 본적도 없었는데 목사님은 성령이 시켜서 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작년 구역장 세미나때 담임 목사님께서 " 임한나 너한테 할말이 많은데 말을 안해서 그렇지, 튕튕 부서가지고 10년전에 널 만났어야 했는데 광진교회 안왔으면 넌 죽었어. 더 통곡하고 울여야 돼!"
이 말씀은 내게 들려주신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수준에 늘 미치지 못한체 내 방식대로 살아온 결과였습니다.
그후 난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를 하게 되었고 쏟고 쏟으면서 통곡이 그칠날이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나를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차츰차츰 치유되어져 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형편없이 죽을수 밖에 없는 결과속에 난 지금도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2개월에 한번씩 검사하지 않아도 난 씩씩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은사가 개발되어지면 하나님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씀에 내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그 말씀이 내 말씀으로 받아들여졌고 전도에 대한 vision이 열려지는 두근거림이 생기기 시작했고 기도의 사명을 다 해내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겨 기뻤습니다.
남은 여생 전도의 사명을 다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명과 전도짝을 하면서 전도를 할때 날보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많이 건강해진 모습으로 증거가 되어졌고 장시간속에서도 잘 견뎌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속에 주님이 역사하셨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지금의 환경과 연악한 건강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이 계셨고 가끔씩 날 아프게 하여 불편하긴 하지만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하면서 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마음이라고 확신되어지면 그곳이 내가 전해야 할 전도지로 생각하고 나갑니다.

3주 넘게 엄마의 병간호를 하면서 하나님은 내게 또 다시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함께 병실에 있던 전도대상자가 월곶 풍림아파트에 살기에 금강아파트가 가장 먼곳이었지만 월곶인 풍림아파트까지의 먼 거리로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상황이나 환경을 바라보며 묵상하는게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묵상할 때 비로소 난 참 자유인걸 알게 하셨습니다.
나의 열악한 환경과 건강이 오히려 하나님만 바라게 하였고 내가 아파보았기에 아픈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아픈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트에 아파트 전체를 파악해가며 전도해가면서 때론 장기 결석자들까지 포함하여 만나면서 중보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한 영혼영혼이 노트에 채워져 가면서 전도대상자가 계속해서 늘어가면서 전도가 재미 있어지고 늦은시간 전도를 끝내고 들어올때 전도짝과 우린 너무 즐겁고 행복함을 고백합니다.

전도동력 세미나때 난 우리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목사님을 돕는 확실한 전도자가 되게 해 주세요.." 나겸일 목사님의 교인들중 전도자를 자랑하실때 난 수도없이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이 자랑할 만한 확실한 전도자로 쓰임받게 도우소서라며 vision을 크게 갖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성전 성순경 권사님과 가끔 만나면서 도전을 받곤 합니다.
항상 500명 이상 밭이 확보되어져 있고 10년이상 꾸준히 즐겁게 전도를 한다는것과 지금까지 전도한 사람중에 20여명이 구역장이라는 말이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전도의 걸음마를 떼는 내게 얼마나 큰 모델이 되는지 모릅니다.

작년 홀리워500작전이 시작되면서 나만의 전도전략을 세워 뛰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1000여명이 넘는 태신자라는 밭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서울보다 시화가 더 쉽게 밭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라 생각하기에 성순경 권사님이 100명을 하면 난 200명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도전을 하고있습니다. 
전도대회 선포후 3주이상 엄마의 병간호로 병원에 갇혀지내면서 사도바울을 생각했습니다.
병원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밭을 일구면서 씨를 뿌렸던 태신자 목록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모습속에서도 항상 선하게만 해석하라는 말씀이 생각나 때론 안타깝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여건속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며 선하신 분이시기에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려고 애를 써봅니다.
고통이라는 터널이 축복이 예비된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찬양을 드립니다.
시화성전 지을때 목사님을 미쳤다고 했다지요??
시화성전이 있었기에 난 살아났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을 겪은 후 엄마 아빠의 닫혀진 마음이 이번 엄마의 입원을 통해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 권사님과 구역장님들과 집사님의 병문안을 통해 오랜 세월 아픔으로 닫혀진 마음이 열렸고 한 사람 한사람씩 일일이 손을 다 잡아보시는 엄마의 모습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을 좋아하면서도 심방 오는걸 꺼려했고 입원하면서도 교회에 알리지 말라는 자존심을 꺽지 않으셨지만 약한모습 다 들어내면서 엄마는 광진교회 사람들을 받아 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숨쉬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며 두려워하며 잠못이루며 90도 각도세워 꼬박 세우며 앉아 있던 엄마는 이우식 목사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기적이라며 잠을 이루셨고 심한 고통에서 차츰차츰 호흡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번의 목사님의 말씀과 기도로 엄마는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셨습니다.
약과 병원을 포기한 날 늘 걱정하며 바라보시던 엄마가 병실에서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 아이가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면서 저렇게 살아났다며 담임 목사님과 부목사님 자랑을 하며 증거하시고 계셨습니다.
때론 아픔이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이미 승리하심을  바라보기에 감사만 나올뿐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많이 건강해 보인다는 말속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출처 : 광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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