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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결한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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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한 손길 

- 장경철 교수 (서울여대) 
 

가끔 아이들 방에는 양말이 흐트러져 있다. 예전에는 양말을 주워서 옮기는 것이 싫었다. 머리카락을 줍기는 쉬운데 양말을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어차피 나의 종목으로 삼은 것이었지만 양말은 나의 주종목이 아니었다.

게다가 남이 벗어놓은 양말이라! 어딘가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느낌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양말도 옮긴다. 지저분한 양말을 옮기는 과정 속에서 나는 깨끗함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손바닥에 아무 것도 묻어 있지 않는 것이 깨끗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깨끗함이 더러움을 품고 옮겨주는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깨끗한 손은 아무 얼룩도 묻지 않은 손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깨끗한 손이란 더러운 것을 집어서 옮길 수 있는 손이라고 생각한다. 더러운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옮겨줄 수 있는 마음이 깨끗하다.

추한 것을 옮긴 이후에 손을 닦을 수 있는 능력이 깨끗하다. 손을 씻을 수 있는 물이 공급되는 환경이 깨끗한 환경이다. 깨끗함은 진공이 아니다.

깨끗함은 순진무구가 아니다. 깨끗함은 휴지와 양말을 기꺼이 옮겨주는 마음이며 행동이며 인격 속에 담기는 것이다. 이전에는 깨끗함을 추상적으로 이해했다면 이제는 깨끗함을 구체적이며 역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구정물에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의 손이 깨끗한 것이 아니다. 아이의 새 하얀 피부도 깨끗하지만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어머니의 손이 더 깨끗하다. 손에 구정물을 묻히는 아내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다. 문득 아이의 방에서 휴지와 양말을 옮겨주는 나의 손도 깨끗한 손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우리 하나님은 진정으로 깨끗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정결함은 하나님이 저 하늘에서 고상하게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분임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더럽고 추한 곳에 친히 찾아가셔서 당신의 손으로 인간의 추함과 더러움을 담당해 주시며, 그것을 치워주기를 마다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깨끗하신 분이지만 그분의 손에는 우리의 흠과 더러움이 묻어 있다. 내가 더럽고 추한 삶 속에서 현재의 모습이라도 유지할 수 있음은 그분의 정결한 손길 때문이다. 진정한 정결함은 진공 속의 정결함이 아니라 추함과 더러움을 기꺼이 집어서 옮겨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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