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9·11 이후 삶은 덤… 봉사하며 삽니다” 무역센터 붕괴 5분전 탈출..

첨부 1


[국민일보] “9·11 이후 삶은 덤… 봉사하며 삽니다” 무역센터 붕괴 5분전 탈출 오세종씨 

“엎드려.”

2001년 9월11일 오전 9시3분(미국 현지 시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 73층 모건스탠리 증권에 근무 중이던 오세종(30·미국 퀸스장로교회)씨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듯 사람들이 연달아 넘어졌고 잠시 후 주위는 정전으로 암흑이 됐다. 이쪽 저쪽에서 “하나님,살려주세요”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뒤섞이면서 건물은 아수라장이 됐다.

오씨는 대형 사고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비상구를 향해 빠르게 걸어나갔다. 40층쯤 내려왔을까. 60대쯤 돼 보이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걸을 수 없다”는 그녀를 등에 업고 비상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조난당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기독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발동한 것이다.

오씨와 할머니가 건물을 빠져나온 5분 후. 자신이 근무하던 건물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 채 무너져 버렸다. 5분 차이로 살아난 것이다. 바로 그때 오씨의 머릿속에는 이날 아침 묵상한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씨는 참혹한 현장을 체험한 후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살아난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며칠 후 그는 많은 연봉을 받는 모건스탠리를 사직한 후 적십자봉사단에 가입해 헌신하기 시작했다. 테러 부상자들을 도우며 구조작업을 시작했고 헌혈을 시도했다. 병원 벤치에서 새우잠을 자며 이재민을 도왔다.

봉사 기간 중 그는 커다란 영적 도전과 위로를 받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뻗는 자원봉사자들의 인류애와 시민의식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테러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게 융자를 해 주는 미국 중소기업청 산하 중소기업성장센터에 지원해 어려운 한인 교민들을 돕고 있다. 오씨는 “9·11 사건의 후유증을 가정예배와 교회생활,그리고 자원봉사를 하며 이겨냈다”며 “하나님이 덤으로 주신 인생인데 평생을 신앙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간증했다.

최근 뉴욕 투로 로스쿨에서 또다른 인권 보호를 위해 변호사 공부를 하고 있는 그는 “9·11 테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엄청난 파장은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렸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씨의 아버지 오인환(66) 목사는 테러 직후 3일간이나 아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오씨가 자원봉사에 전념하느라 연락을 못한 것이다. 오 목사는 “아들의 생사 소식을 기다리면서 예수의 죽음을 앞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간증했다. 이후 오 목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를 사임하고,샌프란시스코 예수 위성 TV를 설립해 미주 전역에 24시간 복음을 전하고 있다. 또 오클랜드장로교회를 맡아 목회사역을 펼치고 있다.

유영대 기자 [email protected]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