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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도소 안에서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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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판결문 낭독을 마치고 내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소.
횡령이라니,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니….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 그제야 현실로 다가오더군.
나중에 그날의 고백을 이렇게 적어 놓았소.

‘이렇게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주님 앞에 선 적이 없었다.
나의 명예, 지위, 자존심….
주님께서는 이런 기이한 장소에서 나를 자유케 하시며 나와 독대하신다.’

대구로 이감하는 날 아침, 나는 방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기도했소.

‘그동안 하나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계셔서, 이곳도 평화롭고 감사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인내로 새 삶을 배우게 하시고, 믿음을 다져 가게 하시옵소서.’”


남편이 구속된 지 나흘째 되던 날이 스승의 날이었다.
침통한 침묵 속에서 1,800여 명 한동 식구들의 행렬이 구치소 앞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노래는 끝내 흐느낌이 되었다.
이어서 허밍으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
비록 감방에 있지만 남편이 그토록 사랑하는 학생들의 노래가 그의 가슴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한 교도관은 이렇게 고백했다.

“김영길 총장님은 오히려 저희 교도관들이 고생하는 것을 걱정하시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법원 밖에서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보석으로 출소하시면서 갖고 계시던 돈 전부를 교도소 신우회에 헌금하고 가셨지요.
‘한동대 사건’은 저의 상상을, 저의 인생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 '갈대상자' / 김영애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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