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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금식,목회자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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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느 낙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1980년 여름, 낙도 선교를 위해 어느 섬에 이르러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니
마침 밭 한가운데 시퍼런 천막으로 세워진 작은 교회가 하나 보였습니다.
수요일 밤이고 해서 천막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할머니 대여섯 분이 모여 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어떤 아가씨인지 아주머니인지 알 수 없는 여인이 예배를 인도하는데
어린이용 계단공과를 그대로 읽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할머니들은 힐끗힐끗 뒤돌아보며 호기심을 가지더니 예배를 마치자마자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선상님은 어디서 왔어요?”

“예, 서울서 왔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라고 했더니 한결같이 그런 줄 알았다면 설교를 부탁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아닙니다. 담임목회자가 시킨 사람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언제 세워졌습니까?”

교회는 1년 전 어떤 신혼 전도사 부부가 그 섬에 들어와 개척을 시작했고,
부부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1년만에 노인 1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 부부가 보이지 않아 어디 갔느냐고 묻자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전도사 부부가 저녁 때 산책을 하고 있기에 교인들이
“전도사님! 식사는 하셨어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부는 “예, 우리는 금식을 합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섬마을에서 평생 금식이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은 금식을 목회자만이 먹는 식사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일식이 있고, 서양 사람들에게 양식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로부터 7∼8개월쯤 되었을 때 사모님이 영양실조로 인해 임신중독이 되어 광주 병원으로 급하게 실려 갔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금식할 수밖에 없었던 실정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는 교인들은
사정을 듣고 가슴아파했었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육지 교회에서 매월 5000원씩 보내주는 선교비로(80년초)
광주의 한 신학교에 다니면서 사역하던 부부의 어려운 생활을 뒤늦게 알고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식했던 거예요. 전도사님이 금식한다고 했을 때
임산부가 금식하면 안 좋으니 우리가 먹는 수제비라도 한 그릇씩 나눠 먹자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 강의구 목사(등촌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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