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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난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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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위험성     
 
-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고난은 유익하지만 위험하다. 고난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된다. 고난은 연단을 통해서 더 강한 존재가 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고난은 유익도 주지만, 위험한 것이다. 왜? 고난은 ‘메마름’을 주기 때문이다. 나를 메마르게 만들고, 하나님을 메마른 존재로 만든다. 

고난은 나를 메마르게 만든다. 고난이 심해지면,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나의 문제에만 빠져들게 된다. 머릿속에 남의 아픔은 사라진다. 아이티 지진으로 죽는 사람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탈북자의 고통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너 없는 내 반응’만 존재한다. 오직 나의 위험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게 된다. 세상을 풀어야 할 문제라고만 여긴다. 어떤 냉정한 엄마를 알고 있다. 고등학생 딸에게 오직 대학진학에만 매달리게 만든다. 입학 후에는 취업이 목표이다. 취업 후에는 결혼이 목표이다. 결혼 후에는 사위의 승진이 목표이다. 목표만을 이루기 위해서 딸은 기계같이 살아갔다. 30대 초반이 된 딸의 삶은 메말라져 이제는 아무 생각 없는 깡통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삶이 이렇게까지 메마를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예이다. 

고난 중에는 어렵더라도 교류해야 한다. 나에게 집중된 관심을 깨고, 오히려 희생하고, 섬기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메마름을 이길 수 있다. 춥다고 자동차 문을 오래 닫아 놓으면, 습도가 떨어진다. 그때는 춥더라도 문을 열어야 한다. 찬 바람과 함께 습도가 높아져서 편안해진다. 공기도 교류하지 않으며 메말라진다. 

고난은 하나님도 메마르게 만든다. 하나님을 이상화시킨다. 하나님은 무조건 옳고, 의롭고, 완벽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들고 하나님께 나가기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이기에만 급급하다. 이혼 직전의 딸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서 항상 “행복해요. 문제없어요.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가슴이 더 아프다. 오히려 ‘아파요, 힘들어요, 못 살겠어요’ 하고 진실을 들고 나오기를 원한다. 그래야 아파하는 아버지를 만나고, 치유 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탕자가 돌아올 때 의를 들고 온 것이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회복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실은 ‘아픔’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라. 힘들면 힘들다고 하라. 그리고 부르짖으라. 그러면 나도 진실해지고, 멀리 계신 하나님이 바로 내 옆에서 울고 계시고, 아파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신앙의 출발은 깨달음이 아니라 부르짖음이다. 부르짖는 자만큼 하나님의 존재를 철저하게 믿는 자도 없다. 부르짖는 순간 생명의 교류가 일어난다. 문제없는 내가 아니다.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다. 아픈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고난이 하는 일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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