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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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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시대가 혼란하다. 천안함 사건, 경제 침체, 청년실업, 세종시, 4대강 논란 등 헤쳐 나가야 할 난국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이념과 지역,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국가백년대계보다는 지역과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 민족 정체성과 역사적 안목보다는 포퓰리즘에 의존한다. 이러한 때일수록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조국애를 가진 깨어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는 지도자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대와 역사는 어떤 지도자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갈렸다. 

조선왕조는 초기만 해도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새 시대의 아침을 열었다. 그러나 연산군 이후부터 왕권이 실추되고 진정한 지도력을 보이질 못했다. 결국 선조 때에 와서는 사색당파에 의해 조정이 분열하고 다투다 임진왜란을 당했다.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 의하면 거리에는 시체가 널려있었고 해산하는 임산부의 코와 귀까지 베어갔다고 한다. 그뿐인가? 광해군 때에는 지도자들이 명분과 체면만 앞세우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실패한 외교를 펼쳤다. 그래서 결국 병자호란을 당하여 삼전도비의 치욕을 겪었지 않은가. 그러나 조선은 그 처절한 역사의 치욕 뒤에도 반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권 싸움을 하다가 결국 노론 천하가 된다. 정조 정치개혁도 노론의 수장인 정순왕후 때문에 실패한다. 

특히 조선 후기 때는 노론에 이어 패권을 잡은 안동 김씨 세력이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고 부정한 권력을 휘둘렀다. 헌종이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죽자 그의 삼촌뻘 되는 강화도령 이원범을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옹립시켰다. 그런 철종은 연일연야 궁녀들의 치맛자락에 빠져 살다 정력이 메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저 드넓은 땅 북간도, 만주를 청나라에 빼앗겨 버리고 나중에는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지 않았는가. 깨어있는 지도자의 부재, 그리고 지도자의 중요성을 모르고 하찮게 여긴 역사의 비극적 종결이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 1세대 목사님들은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영권이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너무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향의 목사님들만 세우려고 한다. 그리고 뒤에서 지도자를 조종하고 흔들려고 하는 잘못된 성향이 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지도자를 존중해야 한다. 왜 인가? 하나님은 항상 지도자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항상 지도자를 세우기 전에 훈련하고 준비시킨다. 모세와 바울도 그랬다. 서정주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는가 보다”라고 노래했다. 하나님도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많은 인내와 기다림으로 훈련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존중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주일을 스승주일로 섬겼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아는 민족은 흥왕한다. 그러나 지도자의 중요성을 모르는 민족은 패망한다. 이제 우리 모두 눈물과 오랜 기도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워보자. 지도자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해보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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