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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됨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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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의 기술

-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예수님의 간곡한 기도이자 소원이셨다. 성경의 대명제 앞에 우리는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 오직 순종함으로 주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나를 이루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됨은 현대 선교의 중요한 주제이고, 하나됨을 설교도 하고 가르치기는 하지만, 실제로 본인이 하나됨에 헌신되기는 어렵다. 본인에게 유익이나 어떤 명분이 주어지지 않으면, 협력하는 것은 매우 소극적이든가 아니면 원치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기를, 한국교회는 성경을 잘못 배우고 잘못 읽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신앙은 관념적인, 불교에서 행하는 식의 지극히 사색적인 것이 되어버려, 입술로는 잘 하지만 행함이 없는 경우가 많아 기독교인들이 한국 사회에 지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을 안다. 그러나 힘써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이고 과제이다. 힘써 노력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째, 권리 포기이다. 지금까지 십수 년의 세월을 현지에서 지내오면서 생겨난 권리가 상당히 많다. 자존심부터 시작하여 이루어 놓은 업적들을 생각하면 매우 많은 권리를 누리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자기 주장, 자기생각, 열정과 지식, 옹고집, 오만과 편견 등, 선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권리에 대한 포기가 시작되어야 하나됨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2008년 12월 28일자로 4,500명 되는 7년 된 교회를 해체시켜, 4개의 교회로 분립하여 부목회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완전 위임하여, 동서남북으로 흩어 새로운 개척의 장을 열었다는 서울의 한 교회의 소식을 들었다.

개척한 본인은 담임교회 없이 뒤에서 남아 그 교회들을 지원하며 협력하겠다고 선언하고 교회 해단식을 가졌던 것이다. 속된 생각으로 고차원의 자기의 살 길을 찾고 행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평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러한 결정은 많은 부분을 포기하여야 하는 엄청난 일인 것이다.

전율, 감동,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에, 한국 목회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권리 포기이다. 아직도 은퇴할 때가 아닌데, 한참 잘 나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를 살펴보니, 거기에는 목회 철학과 신앙고백이 숨겨져 있었다.

자신의 삶을 통하여, 목회사역을 통하여, 주신 사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이 주인이 되게 하는 교회”이었다. 그것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도 포기하고, 누릴 수 있는 것도 포기하고, 자신의 능력도 포기하고, 목회자로서 다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가 있다는 사실에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한국교회의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멋진 일이다. 힘찬 박수와 존경을 보낸다.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는 특별하게 나타낼 권리가 별로 없다. 그런데 알량한 자존심과 이기심 그리고 고집, 이러한 성품으로 인하여 나타난 것에 대한 포기가 없어 하나됨을 이루는 데 매우 방해물이 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본질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다. 자신의 무능함과 허전함 그리고 자존심을 세웠다고 스스로 느끼는 정도일 뿐, 쓰레기일 뿐이다. 포기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 본질을 생각하라. 우리는 너무나 비본질적인 일에 온 열정을 다 쏟아붓고 있다. 조금만 서로 양보하면 될 것인데, 자기들의 주장이 너무나 강한 것이다. 자기들의 방법대로, 생각대로, 주장대로 하여야 정통이고, 역사성이 있는 것이고,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이기주의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폐쇄주의적 사고방식은 기독교 목사들의 세계와 선사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최고의 항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고, 자기들의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협력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심과 편견에는 관대하고 남의 생각과 주장에는 매우 엄격한, 이것이 오늘의 선교사들이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본인이 남의 여인을 사랑하면 로맨스고 타인이 사랑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세상 사람들처럼 술 담배 안하고, 세상이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여, 그것이 고집으로 이기심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지도자들이라 칭하는 이들의 편견과 이기심은 급기야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들지 않았는가?

비본질적인 일에 이제 그만 힘을 소진하여야 한다.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시간이 별로 없다. 한국교회가 기도하고 헌금하여 현장으로 보내놓았더니, 그 놈의 못된 성격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친다고 생각해보라. 하나됨을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여러 부분에서 양보하고 이해하고 권리 포기를 이루어 하나됨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지체할 일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서 재보고 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권리 포기, 그리고 본질에 충성한다면 하나됨을 이루는 일들이 훨씬 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셋째,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보수주의자들은 한번 틀어지면 곧잘 화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를 가장한 수구주의자들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자유주의자들은 곧잘 화해가 되고 용서도 될 수 있을 터이지만 줏대가 없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이다. 신앙인격에 문제가 있어도 일은 같이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적어도 관계는 깨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문화 중의 하나는 이혼한 부부가 서로 만나서 술도 한잔 하고,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아이러니이다. 한국의 문화와는 판이한 경우이다. 그리고 때로 필요한 경우에는 부부 행세도 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로 싸워도 일은 같이 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함께 허허 웃는 모습을 보면 칭찬하여야 할지, 그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저것도 합당치 않은 듯하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기도와 기술(art)이 필요하다. 아예 담을 쌓고 선을 그어 버리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악에게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앙갚음하는 일도 악에게 지는 일이다. 시기와 비난도 악에게 지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고민이 많다.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지혜가 필요하고 기술(art)이 필요한지 모른다. 주여 지혜를 주옵소서. 넓은 마음을 주옵소서. 편견을 버리게 하옵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하게 하옵소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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