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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미(聖米), 교인 삶 담긴 잡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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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聖米), 교인 삶 담긴 잡곡밥 


어렸을 적 교회 입구에 큰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지금 도시의 교회들에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성미통이다. 아버님이 목회를 하셔서 주일에 성미를 비우면 그 안에 들어가 숨박꼭질 하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예배가 있는 날이면 주섬주섬 보자기에, 또는 편지 봉투에 매 끼마다 조금씩 퍼서 정결하게 구별했을 성미를 그 항아리에 붓는 모습들이 생각이 난다. 주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항아리 주변에 쏟아졌을까봐 손으로 항아리 입구를 훔치는 주름진 할머니 권사님의 손길이 생각이 난다. 

우리 집에서 먹는 밥은 그 성미로 지은 것이다. 성미는 목회자의 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구휼하는 구휼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교회의 큰 행사가 있을 때에 친교의 음식으로 사용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에 귀한 쌀이니 한 톨도 흘리거나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사실 그 때야 쌀이 부족한 시기이다 보니 어느 집이나 그런 말을 듣고 살았겠지만 우리 집은 그 의미가 달랐다. 귀한 것은 없어서 귀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구별해서 바친 정성된 쌀이기에 귀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성미로 지은 밥이 무척 싫었다. 성미가 여러 집의 쌀이 섞이다 보니 쌀 자체만으로도 알록달록 잡곡밥 색이었고, 예전에는 아무리 조리질을 잘해도 “우지직!” 하면서 씹히는 돌멩이, 그리고 간혹 등장하는 쥐똥들.

다른 친구들의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뽀얀 쌀이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도정이 잘 되어서 돌 하나 없는 아주 맛있는 밥인데, 우리 집의 밥은 그리 맛있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그런 쌀을 먹었다. 

신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성미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와 하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목회자인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목사는 모든 성도들의 삶을 잘 알고 느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미를 먹다보면 좋은 쌀도 있고 여러 해 묵은 쌀도 있는데, 돌을 씹으면 그런 돌을 씹고 있을 성도를 생각하고, 여러 해 묵은 쌀을 먹을 때는 그 쌀을 먹고 있을 성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성미를 교인들의 사정을 잘 배합해 놓은 잡곡밥처럼 여기셨다. 

사실 요즈음은 성미를 잘 하지 않는다. 성미를 해도 교회행사 때나 주일 공동식사 때에 쓰고, 목회자는 쌀을 사서 먹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굳이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목회자는 성미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도의 삶을 성도들이 먹는 같은 밥을 먹으면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미(聖米)가 아닐까?

정택은 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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