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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시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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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삶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4세대를 위한 스마트폰이 곧 출시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크기가 지금 휴대전화보다 훨씬 크지만 매우 가볍고 용량의 확대는 물론, 기능의 다양성이 기존 것에 비해 실로 놀랄 만하다는 것이다. 기능 소개 기사를 읽으면서 놀랍고 신기하기보다는 어쩐지 씁쓸하고 개운치 않았다. 

처음 휴대전화가 출시되었을 때는 정말 필요하고 유익한 기기가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반갑고 신기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부터 나의 정신세계는 점차 메말라가고, 사유가 삭제되며, 삶의 여유가 좁아지는 듯했다. 

요즘 언론환경이 변하고 있다. 휴대전화(인터넷 포함)를 통해 여러 신문을 찾아가며 그 가운데 자기가 읽고 싶은 기사만 집중 선정해서 읽어버린다는 것이다. 신문의 심장부위라고 볼 수 있는 사설, 논설, 시론 따위는 관심 밖의 내용이 되고 말았다. 

2박3일 여행하는 일이 있었는데, 깜빡 잊고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간 적이 있었다. 여행 가면서부터 첫날은 안정감이 없었다. 모든 정보가 다 그 속에 있었고, 여행 중에도 연락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조금씩 불안했었다. 

그런데 수목 사이를 오래 걷는 동안 그 불안은 점차 사라졌다. 그 이튿날부터 귀가할 때까지는 정말 편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전화불통인 여행이 이렇게 명쾌할 줄은 몰랐다. 

가끔 휴대전화를 꺼서 집에 놓아두고 기도원으로 간다.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기도가 너무 잘 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기계에 노예가 되어 시달려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휴대전화가 인터넷 기능까지 하므로 휴대전화 하나로 만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휴대전화 하나로 무엇이고 다 해결하고 있다. 연락은 물론, 구매, 계약, 기계시동, 사기, 모함, 모략, 치료, 처방, 사랑, 이별, 심지어 상담이나 예배까지도 다 휴대전화 하나로 할 수 있다. 

정말 번잡스럽고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휴대전화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꼭 있다고 본다. 서로 마주보고 표정을 읽어 내거나 배려하는 일, 고통을 같이 나누는 일, 사랑스런 교감을 나누는 일, 이런 중요한 사실들을 교환하는 일들을 어떻게 휴대전화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연인이 헤어질 때 흘리는 눈물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면 정말 그 눈물의 참 의미가 전달될까? 얼마나 생애에서 기억되며 남을 것인가? 

얼마 전 ‘현대문학’에 ‘잠적’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나는 맨 처음 순한 흙으로 된 자였네/ 그런데 정말 내가 끝까지 흙이었는가? …중략… 나는 내가 켤 수 있는 모든 전원을 다 끄고 충전 배터리를 빼버린 후/ 오늘, 나는 없겠네.” 

흙으로 된 자가 끝까지 흙이 되지 못하고 이질적인 것에 길들여지는 것을 참지 못해 잠적해버리는 한 시인의 연민이 될 것이다. 가끔 휴대전화 없이 지내보라. 삭제되었던 사유와 담론이 회복되며 깊고 좋은 생각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진짜 충전이 아닐까?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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