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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3> “더럽게 춥네” 했다가 “추운 맛 봐라” 부친께 혼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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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뜻밖에도 섬유 노조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일하셨다. 전쟁 당시 대북 첩보 임무를 맡았던 켈로(KLO, Korean Liaison Office) 부대 대대장으로 활약하셨던 분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선봉에 섰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나중에 아버지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아버지가 부대 부지휘관으로 계실 때 밑에 있던 부하가 지휘관을 저격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지휘관의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고, 인명을 쉽게 죽인다는 이유에서다. 그 일 때문에 군법 회의가 열렸다. 엉뚱하게도 모든 일이 나의 아버지가 주도해서 저질러진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버지는 그 일로 사형언도까지 받았다. 황해도 출신의 피난민들이 “훈장을 드리지 못할망정 이 무슨 억울한 일이냐”며 각계각층에 탄원서를 올리고 구명운동을 벌인 덕분에 무죄로 풀려나셨다.

상처를 받고 환멸을 느낀 아버지는 조용히 일본으로 떠나 그곳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공부하고 귀국하셨다고 한다. 그 후 아버지는 넥타이를 한 번도 매지 않으셨다. 항상 재건복이라 불리는 차이나 칼라의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주관이 확실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낚싯대를 메고 나가자 하시면 그날은 마냥 신나는 날이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적막한 골방에서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게 항상 잘해주신 것만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무척 추운 날이었다. 나도 모르게 “더럽게 춥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왜 추운데 더럽다는 거냐. 날씨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더러운 것”이라며 “추운 맛을 보여 주겠다”고 하셨다. 그날 아버지와 나는 집 밖에서 옷을 하나씩 벗어가며 온 몸으로 추위를 끌어안아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는 우물가로 가서 물이 꽁꽁 얼어붙은 펌프 옆에 무릎을 꿇으시고는 나도 앉게 하셨다. 얼어붙은 부자를 보고 놀란 어머니가 더운 물을 붓고 나서야 나는 다리를 질질 끌며 온돌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한동안 내 바지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아버지가 손수 꿰매 버리신 거다. “추운 날에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어깨 움츠린 채로 ‘더럽게 춥네’를 연발하는 아들놈 꼴은 못 보겠다”는 이유에서다.

내 아들이 초등학생 때 한번은 겨울방학을 맞아 매일 아침 약수터에 다녀오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기특하기도 해서 가만히 지켜봤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나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이틀이었다.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꾸짖었더니 “약수터 가려고 나갔는데 중간에 돌아왔어요. 미치게 추워요”라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밖으로 나가 아들과 상의를 모두 벗었다. 그 이후로 아들은 추운 날이면 그냥 “춥다” 더우면 “덥다”고 말한다.

“일도야 날씨가 더럽냐. 추운 건 추운 맛이 있고 더운 건 더운 맛이 있단다. 날씨 하나 극복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 고난을 극복하며 살겠냐”고 말씀 하시던 아버지. 어릴 적 들었던 추상같은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유언처럼 가슴에 남아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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