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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만사-이성규] 삼성과 ‘경제계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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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삼성의 정보력은 국가정보원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게 수억원대 말을 사주며 공을 들인 것도 최씨가 정권 최고 실세라는 비밀을 그 어떤 대기업보다 먼저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던 삼성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공정위는 2015년 있었던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500만주 처분 건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 중이다. 최순실씨를 통한 ‘성공한 로비’로 원래 1000만주 매각 결정이 500만주로 줄었으니 이를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는 게 공정위의 심산이다. 지난달 말 공정위는 이 건을 비공개로 전원위원회에 상정했다. 삼성은 지난 13일 언론보도가 나오기까지 진행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와 비슷한 시기에 국세청은 삼성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에 착수했다. 앞서 2008년 삼성특검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 1000여개와 4조5000억원을 찾아냈지만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개설된 계좌로 실명전환 및 과징금 징수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과세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근거로 과세를 진행할 예정이다. 두 건 모두 과거 삼성 측에 우호적이었던 정부 결정이 뒤바뀌어 불리하게 진행되는 형국이다. 여기에 금융 당국은 내년부터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은 금융회사와 결합돼 있는 비금융회사까지 복합금융그룹에 포함시켜 리스크 관리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삼성이 주 타깃이 될 전망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정부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삼성을 옥죄는 모양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 입법을 통한 재벌(삼성) 개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속내가 엿보인다.

삼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정부가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식 수법으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등 기업 삼성의 이미지도 퇴색하고 있다.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취임 후 첫 대기업 간담회 대상으로 삼성이 아닌 LG를 택했다. 만년 2등 기업 LG가 이미지 면에서는 삼성을 이긴 셈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이익을 잇달아 경신하는 등 실적은 문제가 없지만 국민들이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지금 삼성의 위기는 삼성 총수일가가 자초한 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부회장의 무리한 경영권 승계작업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삼성이 엮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부회장 뇌물죄 혐의의 핵심인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강화해 이 부회장이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9월 기준 삼성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0.99%다. 이 중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고작 0.29%다. 이 회장 일가는 1%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 순환출자라는 마법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삼성은 이 마법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작전을 짰다가 촛불시위와 함께 역풍을 맞은 셈이다.

항소심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언젠가 이 부회장의 수감생활은 끝날 것이다. 그때 그가 다시 경영권 승계에 주력하기보다는 일단 0.29%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경영권은 그보다 능력이 검증된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주고, 추후 주주들에게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중 선택권을 주면 어떨까 싶다. 모그룹 위기와 맞물려 성적이 곤두박질친 삼성라이온즈는 내년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인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를 데려왔다. 삼성은 “총수 부재로 무섭고 두렵다(윤부근 삼성전자 대표)”는 말을 할 게 아니라 어디엔가 있을 ‘경제계의 강민호’를 찾아볼 일이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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