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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사초롱-이나미] 우리 안의 문화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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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신의학’이란 영역이 있다. 문화 차이나 유사점을 분석, 정신질환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처방을 내놓는 분야다. 특정 문화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유도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과거 미국이나 유럽의 인류학자나 사회학자 정신과의사들이 원시인의 심리를 연구한다면서 마치 동물 군락을 관찰하듯, 비윤리적 연구결과를 내놓았던 일들도 적지 않았다. 백인과 유럽 중심의 세계관으로 타문화의 가치를 폄하했던 탓이다. 먼저 서구화된 일본인 중에도 자신을 유럽인으로 간주, 나머지 동양인들은 야만인으로 몰고 갔던 학자와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이런 편향된 태도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가난했던 최근까지 이어지다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유럽 중심주의가 팽배하던 와중에도 중국과 일본은 예외적인 취급을 받았다. 일본은 16세기부터 무역을 하며 유럽문화권에 슬쩍 편입이 되었고, 중국은 최근까지 가난했지만 방대한 과거의 문화유산과 엄청난 인구 때문에 함부로 폄하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 중심의 문명관이나 세계관은 오로지 근대의 산물일 뿐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여러 면에서 유럽은 동양에 한참 뒤져 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그리스 로마인은 게르만이나 켈트인, 즉 지금의 독일, 프랑스, 영국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게르만족이 유용한 것은 튼튼한 몸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더 거슬러 이집트가 세계 문명의 중심일 때는 당시 최고 문명권이었던 북아프리카인에게 서유럽은 끔찍한 원시인의 나라였을 것이다. 세계사의 변화를 큰 틀에서 이해한다면 서양은 우월하고 동양은 열등하다는 낡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나라들의 문명은 근본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풍요로움만으로 문명의 우열을 가리는 태도에는 심각한 도덕적 맹점이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믿는다. 물질적으로 화려한 문명은 부러워하고 소박하면 무시하고 폄하하는 태도는 비윤리적인 이분법의 산물이다. 예컨대 고대 로마나 근대 프랑스의 어마어마한 유적에는 감탄하지만, 백인들에게 파괴된 인디언 보호구역을 보면서 “그 풍요로운 대륙의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이렇게 못 살다니”라고 멸시한다면 오만할 뿐 아니라 지구환경 보존에는 해로운 태도다. 자연을 신성하게 생각하며 존중했던 인디언의 생태적 세계관은 자연 파괴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근대의 편협한 인간 중심적 세계관보다 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현재의 지구에게는 더욱 절실한 가치관이다. 그 대단한 유적이란 것들도 지도층의 화려한 생활을 위한 민중의 피땀 어린 희생이 아니었을까.

강대국 사이에서 오랫동안 시달리며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역사가 우리에게 있는지라, 문화 콤플렉스가 작동해서 특히 외국과 관계할 때 굴욕, 조공, 체면… 등등의 감정반응부터 먼저 튀어나오는 것 같다. 외국 세력의 압박에 대한 집단 무의식적 반응이다. 못 살고 힘없던 시절, 어이없이 유린당한 기억의 흔적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열등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데도, 과거의 피해 의식에 휘둘려 냉정한 협상에서 손해 보는 선택을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실익을 따르려 했지만 명분만 주장한 수구사림파에 밀렸던 광해군이나 소현세자의 경우와 거란이나 여진 같은 소수민족의 국가들이 소멸되는 와중에도 군사적 압박과 외교를 통해 영토를 넓혀갔던 서희 장군 시대의 고려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싶다. 같은 독일어를 쓰고 역사의 뿌리도 같지만, 전쟁 전에는 최빈국이었던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을 표방해서 전후 평화로운 부국으로 태어났고, 전쟁광 히틀러에 휘둘린 독일은 2차 대전에 패해서 오랫동안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콤플렉스에 휘둘리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망할 수 있다. 아무쪼록 김정은 정권을 욕하면서 닮아가는 일이 문화대국인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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