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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17> 오늘 밥퍼 앞마당서 서른 번째 ‘거리에서 드리는 성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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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 위에서 밥을 짓고 나누는 모습을 본 청량리 야채시장 영세 상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배식이 끝나고, 빌려 온 그릇을 돌려 드리기 위해 손수레를 끌고 야채시장을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채소 팔던 아주머니가 손수레를 세웠다. 그분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무와 배추 꾸러미를 내가 끄는 손수레에 올려놓더니 말했다. “이거 내일 아침에 설렁설렁 썰어서 무국 해드리면 좋겠어요.”

조금 더 가니까 이번에는 생선 팔던 아저씨가 생선을 아예 궤짝으로 올렸다. “이거 팔다가 남은 거긴 하지만 상하진 않았소. 가져가서 저녁 때 조려 두었다가 내일 반찬으로 먹으면 좋을 거요.” 그도 나도 소리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집에 갔더니 누군가가 쌀을 가져다 놓았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쌍굴 다리 아래로 리어카를 밀고 나갔더니 누군가가 벽에다가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글을 정성스럽게 써 놓았다. 그 벽 앞에서 얼마나 많이 또 울었는지 모른다.

단 한 끼라도 함께 나누기 원해서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한 나눔이었다. 당장 내일의 대책이라곤 아무것도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의 소식을 들은 이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감동시켜 주셨다. 사랑이 나눠지는 곳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기적이 일어난다. 야채 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처음 배식을 시작한 그날 이후 30년이 다 돼가는 오늘까지 1000만 그릇이 넘도록 하루도 먹을 거리가 없거나 자원봉사자가 없어서 밥의 나눔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기적을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나서 한강을 두 쪽으로 가른다 해도 나는 그런 기적은 믿지 않는다. 쫓아가서 구경할 생각도 없다. 사랑에 근거하지 않은 기적엔 나는 아무 감동을 느끼질 못했다.

다른 종교에도, 심지어는 이단 종파에서도 신기한 일은 갖가지 형태로 일어난다. 인도에 가면 별별 희한한 사람이 다 있다. 나무 위에 까치처럼 매달려서 100일을 살기도 하고, 물속에서 50일씩 지내는 사람도 있다.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피를 쏟고도 멀쩡하고 작두 위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그 행위 안에 참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이 없으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나 같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오늘 2017년 12월 25일, 밥퍼 앞마당에서는 서른 번째 ‘거리에서 드리는 성탄예배’가 열린다. 1988년 12월 25일, 노숙인 형제 세 사람 넙죽이, 억만이, 이차술과 초 한 자루 켜들고 쌍굴 다리 옆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캐럴을 부르던 것이 처음 예배였다. 그 세 사람 중 둘은 길에서 잠을 청하다가 얼어 죽고 말았다. 한 사람 이차술 형제만이 살아남았고, 그는 봉사자로 거듭나 17년째 헌신하고 있다.

이제는 매년 각 언론사에서 우리 공동체의 거리 성탄예배를 소개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찾는 자리가 됐다. 드러낸 일이 없는데 드러나고야 말았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말구유로 내려가지 않고는 성탄의 정신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젠 제발 우리 시대 작은 자라고 불리는 형제자매들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만 전해지는 성탄이 되길 소원한다. 청량리의 무의탁 노인이나 청와대 대통령이나 목숨은 똑같이 소중하다. 생명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지 초막이든 궁궐이든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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