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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최일도 <18> 588 희야 자매 “아저씨는 희망 일깨운 ‘꿈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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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가 이사 가던 날, 다일공동체 나눔의 집은 봉사자들로 북적댔다. 근모 형제와 함께 숙이의 방에 찾아갔다. 골목길에 세워둔 용달차가 꽤 오래 기다렸는지 ‘왜 이제야 오느냐’는 눈치였다. 짐이 빠져나간 숙이의 방은 적어도 그녀에겐 붉은 방이 아니었다.

포주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쟤가 행복하게 살길 빌겠어요. 숙이처럼 착한 애는 어딜 가나 인정받지 뭐.”

이 동네에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자신의 돈벌이를 위한 기계라고 생각하는 직업여성의 새로운 삶을 위해 포주가 등을 떠밀며 축복해주다니. 믿어지지 않는 이 놀라운 현실 앞에서 그저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포주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 뭐해요. 목사가 기도나 할 일이지. 숙이야 넌 좋겠다. 그렇게 목사님 얼굴 한 번 더 보고 가면 좋겠다고 하더니.”

난 너무 감격스러워 말을 할 수 없었고 침묵으로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다. 588번지의 주민으로 더불어 살다보니 그네들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약했고 눈물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도 점점 호감을 갖게 됐고, 마침내 음식을 나누며 기쁨과 슬픔을 서로 들어주고 격려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시집을 들고 가던 날 한 펨푸(호객꾼) 아주머니가 “그 책 내게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나눔의 집 앞 길 위에 책을 잠시 풀어놓고, 주변에 있던 직업여성들과 호객꾼, 포주들에게도 한 권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책을 받아든 그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 번졌다.

588 뒷골목에서 책 잔치가 벌어졌다. 음식이나 좋은 옷, 생활용품 등을 나눠줄 때 행려자 무의탁노인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을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시집을 나누자 저마다 나와서 받아가는 거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새로운 문화선교의 길을 우리 다일가족들에게 가르쳐 주는 기회가 됐다.

가정과 가족, 친구들을 떠나 몸으로 세파를 헤쳐 가는 그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같은 상투적인 전도 구호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전 내내 가사상태에 빠진 듯 활기 없던 거리에 해가 기울고 붉은 등이 켜질 무렵, 반라의 몸으로 진열대에 쭉 늘어앉아 몸을 파는 어린 누이들이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것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서정적인 시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돈을 주고 육체를 사고파는 588 뒷골목에 아내의 시집과 내 책이 나누어지던 날, 조금은 민망한 표정으로 다가섰지만 시집을 받은 그날부터 나를 ‘꿈퍼 목사’라고 부르던 희야 자매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저씨를 밥퍼 목사님이라 부르지만요 내게는 꿈퍼 목사님이에요. 그동안 아무 희망 없이 살던 내게는.”

난 그때 사람만이 희망이란 사실을 절감했다. 사랑하는 누이들의 찢어진 마음속에 간직한 못다 피운 아름다운 마음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희야는 숙이처럼 인간적인 포주를 만나질 못해서 여러 번 도주를 시도했다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희야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바라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떨며 입술을 깨물고 있자 희야가 도리어 다가와 날 위로했다. “괜찮아요, 꿈퍼 목사님. 이번에 또 얻어맞고 붙들려 왔지만 반드시 여길 빠져나갈게요. 사람답게 살아보는 꿈을 반드시 이루도록 계속 기도해줄꺼죠.”

그날 밤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하는 찬송 490장을 밤이 하얗게 새도록 불렀다. 너무 감사하고 아파서 울며 불렀다.

정리=이사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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