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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장기 복역수, 너를 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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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에겐 종교가 없었다. 원래 그의 가족은 불교신자였다. 
정수가 홍성교도소로 이감됐을 때 이름 대신 그의 가슴에 새겨있던 수인번호가 기억난다. 
그의 번호는 66번이었다. 
정수는 자신의 수인번호를 가리켜 '육땡'이라며 장난기 어리게 말했지만 
나는 성경 66권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어느날 정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아내에게서 이혼 소송장이 날아온 것이다. 
정수는 유약한 곳이 있어서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내심 걱정됐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20년이 넘게 견디며 기다렸던 아내를 편하게 해주는 게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이혼서류에 주저 없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재소자들이 교도소 생활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가족관계이다. 
특히 결혼한 사람들이 장기수가 될 경우 이혼을 하게 되거나 부모상을 당할 때 가장 힘들어한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비통함에 빠져 절망해한다. 

마침 복음가수가 인도하는 찬양집회가 교도소에서 열렸다. 
그는 거기서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가사 구절에 갑자기 솟아오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가사를 따라 부르며 진정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찬양집회에서 은혜를 체험한 그를 위해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도록 격려했고, 
얼마 안 있어 성경통신학교를 권유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고 정수는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믿음의 성장은 눈에 띄게 도약하고 있었다.

그후 그는 불신자였던 그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고 면회왔던 어머니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면 다음부터 면회 오시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고생하는 모친이 지옥에 간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라며 
평생 자신 때문에 속만 썩고 사신 어머니가 너무 가엾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고 금식기도를 드렸다. 
그 후 다시 면회온 그의 어머니는 주보 한장을 내밀었다. 
그의 모친은 아들을 위해 교회에 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교회 목사님에게 연락해 어머니를 위해 신앙지도를 부탁한다고 알렸다. 
이제 그의 어머니는 열렬 신자가 됐다. 

성령의 바람은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오늘도 교도소 담장을 넘어 재소자들을 만지신다.

- 김봉래 목사 (홍성교도소 경교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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