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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 요한의 출생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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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출생                           

눅1:57-80


  우리 가정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성민’이라 짓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임신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성민이라고 하셨습니다(신7:6). 저도 그 말씀이 생각나서 아이의 이름을 ‘성민’이라 짓는 데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아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을 받으며, 평생 하나님만 잘 섬기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당신은 자녀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습니까? 무슨 뜻으로 그렇게 지었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세례 요한의 출생과 이름 짓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전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은 후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중이었고, 친척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이 이름을 ‘요한’이라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천사가 이미 말해준 이름이었습니다.


    이름 짓기


  마리아가 돌아간 후 엘리사벳은 해산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의 노년에 아들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였고 기적이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하나님께서 이 경건한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총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57-58절)


  경건한 유대인들은 아들이 태어난 지 8일 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에는 집안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대개 아버지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59절) 제사장 사가랴의 집안에 태어난 이 아들은 아버지 사가랴의 이름을 따라서 짓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웃과 친척들은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라 짓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60절) 우리는 왜 엘리사벳이 모든 사람들의 의견과는 달리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겠다고 말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 사가랴는 성전에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고 나온 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아마도 글을 써서 그의 아내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했다는 것도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짓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친척들은 엘리사벳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겠다고 하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가랴의 가문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그러면 아버지 사가랴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61-62절) 사가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판에 써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63절) 사가랴는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했던 것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나이가 많아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던 경건한 사가랴 부부에게 이 아들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또 요한의 출생과 함께 사가랴에게 내려졌던 하나님의 징계가 철회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아들 요한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인데,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가랴


  사가랴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말을 믿지 못해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에 대한 징계였으며, 동시에 이 놀라운 일에 대한 표적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가브리엘이 전해준 대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집안 모든 사람들이 이 아이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분명하게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러자 즉시 사가랴의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가랴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64절)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사람을 부르실 때 그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특히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그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할 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능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 인간적인 열심과 힘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갈등을 일으키며, 시험에 들게 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가랴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67절) 사가랴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이 모든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세례 요한의 사명에 대해 예언했으며,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행하실 미래의 구원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세례 요한의 출생과 일어난 이 모든 일은 사방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들은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이 아이에 대한 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라”(65-66절)


  사람들은 주의 손이 이 아이와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손’은 힘이나 능력을 상징합니다. 특히 구약은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하신 일들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시8:3,6)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출32:11) 창조와 구원은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로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손은 개인의 삶 속에도 개입하여 역사하십니다.
  주의 손이 요한에게 함께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요한을 돌보시며 함께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요한은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태어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아이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 하고 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저는 때로 우리 자녀들을 유심히 관찰해봅니다. 어렸을 적부터 특별히 믿음이 좋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큰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그런 모습이 점점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세상이 아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이를 믿음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경외하도록 잘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베푸실 구원에 대해 큰 기쁨으로 찬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68-73절)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을 ‘속량’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속량이란 누군가가 죄인의 죗값에 대한 속죄금을 지불하고 그 사람을 풀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습니까?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고 했습니다(69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우며 위대한 일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예언하신 대로 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70절) ‘거룩한 선지자’는 구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에 대해서 율법서와 선지서, 그리고 시가서 등 구약 전체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사가랴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 사실을 깨닫고 큰 기쁨으로 찬송했습니다.

   

구원의 목적


  사가랴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찬송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74-7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사탄과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거룩함과 의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 주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을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더욱 거룩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선한 일을 열심히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보다 복되고 아름다우며 영광스러운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의 사명


  성령으로 충만한 사가랴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요한의 사명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76-77절)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면서 그분을 세상에 소개했으며, 그분의 놀라우신 교훈과 위대하신 사역을 목격하면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선구자라는 점에서 구약의 선지자들과 구별됩니다. 구약에 위대한 선지자들이 많았지만, 요한처럼 직접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수행한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사가랴는 요한이 백성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된 소망 없는 인류에게 가장 복된 일은 바로 죄 사함입니다. 죄만 해결 받을 수 있다면, 소망 없게 된 인간은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소망 없는 죄인들이 죄를 사함 받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어떻게 이 사역을 감당했습니까? 그는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킴으로써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요한은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죄를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평안과 축복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나가 요한의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사역을 통해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요한은 또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한이 또 증거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1:29,32-34)


  이렇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요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보다 더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마11:7,9)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자였으며, 죽기까지 그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으며, 그의 짧은 생애는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생애가 되었습니다.
   
    요한의 어린 시절


  누가는 요한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 대하여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80절)


  이 짧은 기록이 요한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에 관한 전부입니다. 심령이 강하여졌다는 것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견고하게 자라갔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일을 준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 광야에서 3년 동안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의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광야는 고독과 연단의 장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광야의 연단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흔들림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들을 광야에서 연단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 얼마나 누리며 사느냐, 얼마나 편안하게 사느냐 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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