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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김홍일 <6> 술에 빠진 가난한 자를 통해 배운 복음과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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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중풍에서는/왜 일가친척도 피붙이도 남지 않은 하늘 아래서/며칠 밤이고 잠 못 이루고 긴 밤을 천장과 눈씨름 하여야 하는/할머니의 외로움이 지워지지 않을까…”.

나눔의 집에서 썼던 ‘가난한 노래’ 시집의 일부다. 피난 중 잃은 아들이 나를 많이 닮았다며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는 어느 날 나눔의 집에 들어와 같이 살 수 없겠냐고 했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할머니의 청을 들어드리지 못한 채 동네에 새로 생긴 노인시설로 모셨지만 어느 날 할머니의 부고를 들어야 했다. 나눔의 집 식구들과 함께 문상객 한 명 없는 장례를 치러드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함께 존재하는 일, 하나님 이름이 임마누엘이듯이 사랑은 함께 존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눔의 집 결연자 중에는 장애와 당뇨로 고생하며 딸아이를 혼자 키우던 아저씨가 있었다. 일하던 중 사고를 당해 목발을 짚고 생활했다. 가출한 아내에 대한 원망으로 술에 빠진 채 병원을 오가고 있었다. 당이 있어 술을 마시면 당수치가 올라 입원했고, 좀 나아지면 집에서 다시 술을 마시는 일이 반복됐다.

관계의 가난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나눔의 집 봉사자들이 찾아갔지만 돕는 자와 도움 받는 자의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그 관계 역시 친구나 이웃이 되지 못했다.

그분이 고립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산으로 함께 꽃구경을 갔다. 개울이 흐르는 넓은 바위에 앉아 식사하고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늘 우울하고 조용하던 그분이 어깨를 들썩이며 ‘목장 길 따라’를 부르며 흥겨워했다. 우울한 그림자 뒤에 숨겨져 있던 사람의 흥을 만나는 일처럼 반가운 일도 없다.

어느 날 그분은 스스로 주일 예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광고시간에는 가끔 자원해 직접 지은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친구와 이웃이 생기면서 먹던 약도 잘 듣고 술도 줄이게 됐다는 고백을 들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정서적·관계적 빈곤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됐는지를 깨달았다. 가난한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는 일이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분절적으로 진행되던 의료적 지원과 방문 봉사, 경제적 지원, 반찬 지원 등 다양한 지원들이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봉사자, 병원과 의료봉사자, 경제적 후원자 등 다양한 봉사자들을 하나의 봉사조직으로 구성했다. 봉사자들 역시 삶의 의미와 의미 있는 관계에 목말라했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늘 경쟁해야 하는 긴장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웃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냐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대답했다. 율법 교사가 이웃이 누구냐고 되묻자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며 이웃이 돼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했다.

봉사하는 사랑은 삶의 새로운 의미에 눈을 뜨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자신의 한계와 씨름해야 하며 그 여정을 격려하고 지지할 친구들을 만나는 경험은 새롭다. 구원은 ‘가서 사랑하는 일’로 이루어진다는 진실을 그렇게 알아갔다.

정리=김동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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