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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김홍일 <15> 가난한 청년들과 도심 속 공동체 ‘숨과 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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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 샬렘재단의 친구회에서 열린 5박6일 일정의 침묵 피정에 참석하던 중이었다. 마음 깊이 정말 원하는 삶에 대해 묵상하며 산책을 하다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부르심을 체험했다. 함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었다.

귀국해 처음 1년 동안은 강원도 강촌의 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에서 장기 손님으로 머물게 됐다. 일주일에 3일은 서울로 출퇴근을 했고 주일에는 개척한 교회 사역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성공회 서울교구로부터 교육훈련국장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강촌을 떠나게 됐다. 수도회 입회와 교구 사역을 동시에 할 수 없었던 탓이다. 미국 샬렘재단의 설립자 틸든 에드워드가 말한 “가장 중요한 공동체는 하나님과 내가 이루는 공동체”라는 조언이 떠올랐다. 서울로 돌아가면 프란시스칸 재속회나 신수도원운동 등과 같은 공동체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개척한 희년교회에서는 주중에 쓸 모임 공간과 선교를 위한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2014년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전세를 얻어 선교센터와 공동체 생활을 함께할 수 있는 ‘숨과 쉼’을 시작했다. 도심 속 수도원처럼 분주하고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숨과 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고자 했다. 무엇보다 공동체 사람들이 기도와 활동을 함께하는 삶의 공간이고자 했다.

나와 교회 청년 두 명, 신학도 한 명이 숨과 쉼을 처음 시작하며 매일 아침과 밤에 공동기도를 드렸다. 규칙적으로 이른 아침 기도를 드리는 일은 청년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모두가 그 시간만큼은 기쁘게 참여했다. 한 날은 기도를 인도하던 청년이 기도 인도 중 잠깐 잠이 들기도 했지만 기도를 공동체 생활의 중심에 두는 일에는 모두가 노력했다.

청년들의 지인들이 숨과 쉼을 방문하며 이곳은 자연스레 청년들의 공간이 됐다. 청년들의 대화를 듣는 일이 많아졌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고민과 마주하게 됐다. 가끔 차가 끊겨 집으로 갈 수 없는 청년들이 잠을 자고 가기도 했고 급기야 집을 나와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 방을 얻어 생활할 수 없는 청년들이 짐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던 청년은 불가능한 독립을 꿈꾸다가 숨과 쉼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 남은 잠자리가 거실밖에 없어 걱정했지만 청년의 바람으로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렇게 사연을 지닌 청년들이 하나둘 숨과 쉼을 찾아왔고 거실은 청년 세 명이 함께 지내는 공간이 됐다. 독립심이 부족하다며 집에서 쫓겨난 청년과 아버지와 다투고 무작정 집을 나온 청년이 찾아오기도 했다.

100만원 남짓 되는 월급으로 월 30만∼50만원 방세를 내고 학자금 융자도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이었다. 고시원, 좁은 단칸방에서의 고립된 생활은 청년들에게 불안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외로움을 만들었다. 꿈을 꾸기도 전에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청년을 만나며 든 생각은 이런 세상을 만나게 해 준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이었다.

청년들은 교회가 청년들을 위한 공동 주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숨과 쉼과 같은 공간을 늘려나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다. 내 안에서 가난과 청년을 분명히 연결할 질문이었다.

정리=김동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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