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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분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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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바르트의 중재자로서 오토 베버(Otto Weber)

 

최윤배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1. 서론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신학의 전문가인 김명용은 오토 베버Otto Weber, 1902-1966)를 바르트계열의 신학자로 분류하는 가운데서 베버는 ‘바르트 신학과 매우 유사한 신학을’ 전개했다고 주장한다. 바르트 신학의 전문가인 김재진에 의하면, 베버는 바르트를 잘못 이해하면서도 그를 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평가한다. 이같이 베버는 일반적으로 바르트계열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바르트

신학에 문외한인 필자도 여기에 동의하면서도, 베버의 신학에 대한 평가 이전에 먼저 한 마디 부언하고자 한다.

필자가 평소에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시대와 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혁신학 전통 속에서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개혁파 종교개혁자들(H. Zwingli, M. Bucer, J. Calvin 등), 개혁파 정통주의자들(B.B. Warfield, H. Bavinck, H. Heppe, A. Lecerf 등), 개혁파 신정통주의자들(K. Barth, E. Brunner 등), 개혁파 현대신학자들(G.C. Berkouwer, H. Berkhof, J. Moltmann, J. Lochman, T.F. Torrance 등)과 이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자처하는 소위 칼빈주의자들과 소위 바르트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과 차이점 중에서 차이점만이 강조되고, 부각되어 개혁신학 전통의 교회와 신학 속에서 조화와 협력보다는 갈등과 균열의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상호 협력(조화, 통합) 내지 상호 존중의 정신의 부재라고 생각되어 진다.

필자는 본고에서 베버를 칼빈과 바르트 입장에서 평가하면서 상호간의 화해의 다리를 놓으려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고자 한다. 여기서 모험적인 시도라 함은 1) 필자는 가능한 객관적인 눈으로 베버를 고찰하겠지만, 칼빈과 바르트 입장에서 그에 대한 평가에서는 개혁신학 전통 속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시각들을 존중하면서도, 상호 유기적이면서도 통전적인 논의가 가능한 물꼬를 트기 위한 어느 정도 주관적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다는 점이며, 2) 16세기의 칼빈과 20세기의 바르트와 베버 사이에 역사적 간격이 너무 크다는 점(역사적 연관성이 배제된다는 점)이며, 3) 바르트 신학에 대한 필자의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베버의 주저인 『교의학의 기초들』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필자가 이해한 칼빈과 바르트의 입장에서 베버를 평가하고자 한다. 단지 논문의 분량 상의 이유로 본고에서는 말씀론, 신론,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화해론만 다루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은 제외하기로 한다.

 

 

2. 기독교 신앙과 교리

 

베버에 의하면, “기독교적 신앙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다.” 한 인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문제와 관련된 신앙은 순종과 신뢰와 자기 복종으로 이해된다. 기독교 교리들 중에서 중심된 교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이며, 계시에 대한 해석과 하나님의 자기 교통으로서 기독교 교리는 보편적이고, 무시간적이고, 비인격적인 것과 관계되지 않고, 특수한 것과 시간적인 것과 인격적인 것과 관계되어, 인격성과 역사성이 중요한다.

기독교 교리는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로부터 오는 성서의 증언에 대한 해석이다. 성서의 증언 속에서 신앙공동체는 자신이 성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자신이 들었던 것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리는 교회, 즉 신앙공동체의 기능이다.” 베버에 의하면, 기독교 교리는 삼중적 형태, 즉 설교(Predigt; 선포, Verk?ndigung), 교의(Dogma, 교리), 교의학(Dogmatik)과 관계된다. 기독교 교리는 설교 자체 속에서 생긴다. 따라서, “교의와 교의학은 설교와 관계된다.”

 

3. 말씀론(계시론)

 

3.1. 계시와 신지식(神知識)

베버에 의하면, 계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인간(피조물)의 자기지식, 이 세 가지는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세 개념들 중에 어떤 것도 다른 것 없이는 파악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계시는 항상 하나님의 지식과 관계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항상 (인간/피조물의) 자기지식과 관계된다. 이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베버는 하나님의 계시를 ‘은사’(Gabe)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자기노출’(Selbsterschließung Gottes)로 이해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 지식의 본질에 대해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의 근거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노출의 본질로 간주되어지는 것 속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은사로 이해한다. 이 은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가능성을 허락하신다.”

‘계시’라는 용어는 첫째로 모든 경우에 실제적인 사건이며, 둘째로 계시는 하나님의 행위의 본질 속에 있으며, 셋째로 계시는 ‘신비’를 알려주는 것이다. 계시와 이성 사이에는 통일성도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이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이다.” 또한 베버는 역사(歷史)와 관련하여 계시의 수직적?수평적 차원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적(歷史的) 활동성을 수직적인 관점에 위치시킨다. 하나님은 역사나 발전에 따라 수리화(數理化)할 수 있는 구성요소가 되지 않고, 그는 항상 역사의 모든 순간 속에서 자기 자신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참으로 자기 자신을 역사 속에서 노출시키신다는 사실은 그의 계시를 수평적인 관점에 위치시킨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노출시키시는가? 여기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말씀 속에서 노출시키신다는 것이다.” 베버는 바르트와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성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으로서 말씀”(geschehene Wort)이며, “증언된 말씀”(bezeugte Wort)이며, “선포된 말씀”(verk?ndigte Wort)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노출 속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성육하신 아들 속에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은 아버지시다.” “사건으로서 말씀은 증언된 말씀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나간 말씀이 아니라, 차라리 단 번에 일어났던 말씀의 사건화는 말씀의 지속적인 유효성을 조건지어주기 때문이다.”

베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의 계시, 관계성, 신앙, 실존적인 만남과 결부시켜서 전개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만남과 교제와 신앙의 행위로 기술한다.” 특히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과의 만남, 파트너쉽,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대한 계(언)약적 성격을 갖는다. 지식은 궁극적으로 항상 인정(Anerkennen)이며,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그리고 이스라엘로부터 야훼에 대한 나-당신의 관계의 경험이며, 하나님과의 교제(Gottesgemeinschaft)이다.

베버는 소위 ‘자연신학’의 문제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길게 논의한 후에 교의학적 사고는 그러한 문제를 필연적으로 취급하게 만든다고 말한 뒤에 “하나님에 대한 자연 지식의 관점은 각각의 특별한 배경과 관련된 매우 다른 세 가지 관점들”, 즉 변증적 관점과 창조신학의 문제와 연속성의 문제가 있다고 결론짓는다.

 

3.2. 성서

베버는 그의 성서론을 전개하기 위해서 성서의 ‘영감’(Theopneuste) 문제, 성서와 교회의 관계 문제, 구약과 신약의 관계 문제, 성서해석의 문제를 다룬다. 이 문제들 중에서 우리는 특별히 ‘성서의 영감’ 문제와 ‘성서의 내적 조명’ 문제와 성서와 교회의 관계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베버는 먼저 ‘성서영감론’(Inspirationslehre)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상세하게 다룬다. “영감론은 인간 속에 그리고 인간 위에서 성령의 사역에 기초 하에 성서를 이해한다. 이것은 두 가지 기본적인 관점들로 귀결된다: 성령의 사역이 하나님의 자신의 사역이고 그러므로 또한 그리스도 자신의 사역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계시의 주관적 ‘실재성’이고 ‘가능성’으로서 이해하는 첫 번째 관점(‘객관적으로’)은 성서의 고유하고도 특별한 실재성을 소유한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주관적으로’)은 절대적으로나 상호 보상적으로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신적 형태 속에서 인간(신앙에 대한, 증언에 대한, 순종에 대한)의 사역과 관계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마지막 두 가지 관점들(‘객관적’ 그리고 ‘주관적’)을 함께 요약한다면, 우리는 ‘영감’의 본질과의 관련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증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는 ‘하나님을 통해서 영감되었다’. 즉, 성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 속에 있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단지 인간의 말로 축소될 수 없는 인간의 말로서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위해서 또는 죽음을 위해서 우리를 분명하게 만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서 속에서 스스로 우리에게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성서의 ‘영감’은 구원 사건에 대한 그것의 내용적 관계성 속에서 그리고 성서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성경의 인격적 관계성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베버는 성경의 ‘영감’의 문제를 논의 한 뒤에 ‘성령의 내적 조명 교리’(Lehre vom 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 문제를 논의한다. “성령의 내적 조명의 교리는 다음의 사실에 대한 재발견을 천명한다. 성서의 권위는 (고전적인 영감론의 의미에서) 개관적으로 또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의미에서) 주관적으로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구속(拘束)을 좌우하는 분으로서 당신의 자유 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우리는 그것에 의해서 설득되어질 것이라는 사실. 성서의 ‘영감’(theopneustia)은 성서의 수동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생명력이 있는 구원하는 행위다.”

성서와 교회의 관계 문제를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종교개혁은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교회는 어떤 성서들(문서들)이 정경에 속하는지를 결정했다. 이 기능들 속에서 교회는 의심할 나위 없이 수행하는 권위이다. … 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하나의 ‘순환’을 발견한다.”

 

4. 신론

 

4.1.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베버에 의하면, 삼위일체론은 계시에 대한 해석의 열매이다. 고대교회는 오랫동안 일체성을 희생시킨 종속론과 삼위성을 희생시킨 양태론에 반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장했고, 삼위일체론 논쟁은 주로 구원론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베버는 하나님의 활동성과 본질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해서 진술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참되지 않은 활동성이 아니라, 참된 활동성이다. 하나님의 활동성은 참되고도 진정한 존재에 일치하는 활동성이다. 하나님은 그의 참된 본성 속에서 그의 자신의 대응면이시고, 또한 일치성이시므로, 그의 사역은 창조자의 사역이고, 화해자의 사역이고, 우리를 성화시키시는 자의 사역이다. …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본성은 상호 분리될 수가 없다.”

베버는 바르트에게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삼중성 속에 있는 일체성’(Einheit in der Dreiheit)과 ‘일체성 속에 있는 삼중성’(Dreiheit in der Einhei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삼위성 속에 있는 일체성’이라는 표현은 근본적으로 ‘동일본질’(?μοο?σι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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