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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박윤선 목사님의 개혁신앙의 재평가에 대한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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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목사님의 개혁신앙의 재평가”에 대한 논평

 

 

논평자 : 조병하(백석대학교 역사신학교수)

 

 

본 글은 박윤선 박사의 개혁신앙에 대한 여러 가지 저술 중에 서영일의 박사학위 논문 『박윤선의 개혁신학연구』(1992), 합동신학교에서 출판된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1996), 박윤선의 조직신학 강의록이 제자들에 의하여 그의 소천 후 출판된 『개혁주의 교의학』(2003), 김영재의 『박윤선: 경건과 교회쇄신을 추구한 신학자』(2007)의 글들이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는 자료를 활용하고 원자료로 박윤선의 『성경과 나의 생애』(2005)와 발표주제를 뒷받침 하는 박윤선의 관련 글들을 활용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논문의 구성을 박윤선의 개혁신앙형성의 배경과 주제에 따른 그의 개혁신앙을 분석하여 이제까지의 연구 글의 결과들을 “재평가” 하는데 두고 있다. 주제에 대한 것은 구체적으로 1) 일생을 드려 성경주석에 나타난 그의 개혁신앙 분석, 2) 그의 조직신학 주제들 중 전통적인 개혁신앙과 차이가 나는 성령론, 3) 교회사적인 관점에서 그가 이해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 그의 칼빈주의에 대한 이해와 그 같은 이해가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연구하였다.

우선 박윤선 목사의 개혁신앙의 형성을 위하여 평양신학교, 웨스트민스트 신학교 1차 유학, 웨스트민스트 신학교 2차 유학, 화란자유대학 유학 과정이 대단히 주요했음을 강조하였고, 그 시기 마다 어떻게 개혁신앙을 진전시킬 수 있었는지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정암 박윤선의 개혁주의 신앙의 전개를 위하여 박윤선의 개혁주의 성경 주석 작업의 진행으로 해방 이전 『고린도후서 주석』과 “바르트 성경관과 계시관 비판”(1937), 『요한계시록주석』(1949), 박윤선의 주석을 위한 대 작업이 1953년 공관복음 주석부터 1979년에 신구약 주석을 완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개혁주의 신앙이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자세히 살피고 있다.(30년간 쓰인 주석을 바탕으로 박윤선 목사의 성경관, 박윤선 목사의 성경해석원리를 정리한다.) 박윤선 목사의 개혁신학 주제에 관한 것으로 두 번째는 “성경신학과 언약신학에 대한 이해”, 다음으로 그의 “성령론”에 대하여, 또한 “박윤선 목사의 칼빈주의 이해”로 특별히 일반은총, 교회와 국가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박윤선 목사의 교회관에 따른 현실 역사 속에서 교회의 분리에서 취한 태도에 대하여 평하고 있다.

 

이은선 교수의 좋은 글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연구를 위한 자료들이 충분하고 충분한 원자료들에 의하여 논술하였기 때문에 부정적 비판을 가할 이유가 없어본인다. 그리고 시간관계상 이은선 교수가 정리해 놓은 좋은 내용들을 여기서 다시 소개하기보다는 하나 더 배우는 자세로 논평과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시간을 절약하고 편의를 위하여 논문기술 전개를 따라서 질문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각주 6에 해당되는 내용에 “근본주의 교육을 받으며.... 칼빈주의 차원에서 신학을 해득하지는 못했다”와 “선교적 열정을 가진 복음주의적 성향이 강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복음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성향의 신학”(각주9)라는 기술에서.... 논평자로서의 질문은 “근본주의의 범주는 칼빈신학이 제외 되었고 현대 복음주의적 성향은 칼빈주의에 연관성이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청교도적인 성향의 신학은?”이다. 당시 평양신학교에서는 핫지의 조직신학도 가르쳐졌다.

2) 칼빈주의라는 말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각주 6) 그가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칼빈주의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칼빈주의는 곧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라는 박윤선 목사의 정의가 적합한 이해인가? 또한 박윤선은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사색”이라고 하였는데 “사색”이라는 말이 당시는 신학을 의미했는가?

3) 각주29 다음에 『아빙돈 다권주석』(1534→1934)에 대하여 “길선주 장로의 제의로”라고 되어 있는데 적합한 표현인가? 길선주 목사? 아니면 선교장로?

4) 각주34 해당본문에서 세대주의의 성행 이유로 “구역이 ....등을 해석하면서 구약과 신약의 단절성을 강조”라 하였는데 구역은 이전 성경번역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박윤선의 이러한 평가는 정당한가?

5) 각주36에서 39로 뒷받침 되는 박윤선의 칼 바르트에 대한 평가는 정당한가?

6) 각주53의 본문 앞 문장에서 “그 성경”으로 “번역”은 해석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각주 60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7) 각주70이 포함된 단락에서 “풍류”가 무엇을 의미하나? 비유? 은유? 알레고리? 유형론? 아나고기적 방법을 의미하나?

8) 각주72는 박윤선의 해명인가?

9) 같은 단어 “베리트”를 언약과 계약으로 구별 번역하면서 신학의 차이를 낳은 박윤선의 계약론은 의미가 있는가? 혹은 정당한가? 아니면 신학방법론의 부족에서 온 것은 아닌가?

10) 박윤선이 차영배의 영향을 받아 성령세례절충론자가 되었다고 할 때(각주 98 다음문장) 오순절쪽에서 주장하는 성령세례와 같은 의미인가? 아니면 다른가?

11) 각주 103 해당 문장과 이어지는 문장에서 논리의 모순이 보인다.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한다.”와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있다”라고 정리 기술하고 있다.

12) 각주 114 이하 문장에서 “일반은총”과 “보통은총”은 신학의 다른 항목인가? 그리고 기독교강요 2권 2장 16절 역시 번역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자구적인 내용이 바로 눈에 안 보인다.

13) 각주 119의 서영일의 박윤선에 대한 비판은 오늘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닌가?

 

 

“박 윤선 목사님의 개혁신앙의 재평가” 에 대한 논찬

김성욱(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1. 감사와 치하: 많은 분량을 잘 요약하면서 논리적으로 글을 정리하신 이 교수님의 능력에 관하여 높이 평가합니다. 중요한 부분에 관한 재확인의 시간을 가졌으면 더욱 귀하고 값진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예: 박형용-> 박형용, 각주 72, 1534년->1934......)

 

2. 제가 합동신학원에 있을 때, 중요한 명강의 가운데 하나가 박윤선의 변증학이란 말을 자주 접하였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신약신학자로 시작하였으나, 조직신학까지 그 분야를 확대한 것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신학자체에 관한 고민의 확대 혹은 신학방법론의 확대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Albrecht Ritschl 역시 신약신학으로 시작하였으나 그의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hnung, (Bonn 1870-1889)와 Geschichte des Pietismus(1880-1886)로 유명하듯이 연구분야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윤선 신학의 가장 중요한 통일성은 제일 먼저 성경이며, 그 성경을 토대로 하는 계시의존적 사색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성경신학외에 변증학이나 조직신학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할 방법론은 계시의존적 사색이다. 그것을 반틸과 달리 이해한다고 성경을 초월주의로 이해한다는 평가는 조금 조심스럽다. 많은 책을 통한 연구과 그의 신학적 고민 그리고 성경을 통한 묵상이 전제된 것이기에 그 방법론에 관하여 좀 더 근본적으로 다루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신학적 방법론의 문제는 1923년 독일에 있었던 하르낙과 바르트의 서신교환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3. 박윤선 목사의 역사적 전천년설 주장에 관하여 여러 영향들이 언급되고 있다. 한국초기 선교사들, 길선주목사, 평양신학교의 레이놀즈와 박형룡. 그 외에 어릴 때 서당에서 9년간 배웠던 조선성리학의 정통에 대한 충성의 강조와 배타적인 자세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비관주의적인 세계관의 영향 등이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복음적인 열정과 그와 함께 수용된 신학교 당시의 복음전파의 열정이 연계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타당한 분석일 수 있으나, 박윤선에게 있어서 가장 큰 원리는 성경일 것이다. 계시록을 외우면서까지 연구하던 분야라면, 성경을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가 박윤선에게는 전천년설이 더 타당하고 분명한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분명할 것이다.

학자로서 박윤선이 한국적 상황, 성장배경과 동료에 의하여 영향받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그들보다 더 분명한 스승인 성경을 통한 신학적 정리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어지는 성령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차영배를 만나서 신학적 입장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박윤선에게는 이런 고민 있었고, 성경을 가지고 씨름하는 가운데 차영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자신이 읽고 묵상한 성경에 다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무난할 것이다.

박윤선의 강의나 저술도 특정인물이나 학교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성경연구와 분석 그리고 묵상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이며, 언제나 성경을 최고의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이며, 이런 면에서 자신의 신학방법론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계시의존적 사색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런 정신과 노력의 산물로 그의 성경주석이 완성된 것이다. 만약 기존의 학자들의 영향 가운데 혹은 비교 연구 가운데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성경주석작업은 실천에 옮겨지기 어려운 결과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4. 박윤선 목사의 생애를 다루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그가 분리주의자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평가이다. 이은선 교수의 글에서도 두 번이나 “합동신학교 설립은 신학적인 기준에서 볼 때는 명분없는 교회분열을 가져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라고 분명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윤선 목사가 활동하던 신학교와 교단에서 분열이 있었고, 그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를 평가할 때, 모든 분열의 원인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그리 타당한 주장이라고 주장하기 힘들 것이다.

교회의 하나됨을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고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할 것이지만, 그 방향성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분열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이며 외적인 요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표면적으로는 교리논쟁의 형태를 표방하는 것도 세속 교회정치 가운데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교개혁시대의 중요한 논쟁이었던 참교회 거짓교회논쟁에 핵심되는 것은 교회의 표지였지만, 종교개혁 다음세대의 분열은 교회의 표지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다른 입장의 차이를 두고 각각 독특한 특징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부분에 있어서 굳이 틀렸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성격이나 신학의 차이로 인정하는 것이 더 분명할 것이다.

 

5.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뒷산에 있는 박윤선 목사의 묘비에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시라”(마 6:34)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조용히 무덤앞에 있노라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려움 많은 나날의 삶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며 살아가라는 교훈을, 무덤에서도 여전히 외치는 그 소리를 마음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듣는 듯하다.

“경건과 교회 쇄신을 추구한 개혁신학자”로 소개하는 김영재 교수님의 글은 생애와 신학에 대하여 평이하게 잘 기록하고 있다. 사실 박윤선 목사님께서 1988년 까지 활동하셨고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의 제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료를 정리하며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암신학강좌”라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중요한 학술행사도 여전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인식할 것 가운데 하나는 현재의 시각에서 박윤선 목사에 대해 평가하기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정리해야 할 것이다.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 역시 그렇게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영수 목사를 비롯한 몇몇에 교단신학교이지만 마치 사유화되어 신학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신학교에 있으며 제대로 강의할 수 없어도, 그래도 그냥 참고 있어야 한다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지내온 역사를 보면서, 다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하여 설명하며, 그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더 나은 전망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권하며 함께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더 많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sols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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