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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2:47

시험은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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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6년 12월 3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4 시험은 어떻게 오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1-4)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시험에 잘 들기에 예수님께서 이 구절을 집어넣으셨을까? 시험이 없는 인생이 없다. 그러나 시험이 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갈린다. 시험은 어떻게 오는가? 시험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당하신 시험을 살펴보며 그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여기서 ‘그 때’는 언제인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직후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신 때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 직후다. 은혜가 가득한 그 때에 마귀의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마귀는 여러분이 썬데이 크리스찬으로 살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 여러분이 막 은혜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시험한다.


마귀의 시험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천지창조가 끝나고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그 때에’ 마귀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창조명령을 받은 아담에게 마귀는 찾아왔다. 하나님의 뜻이 시행될 통로를 차단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기에서 알 수 있듯이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께 제한을 받는다. 마귀의 시험은 욥이 정금과 같이 순도높은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되는데 그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는 아담이라고해서 자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께만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단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 먹지 않는 것으로 확인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마귀는 아담의 그 결단을 흔들었고 아담은 결국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시험이 찾아왔다. 출애굽이 시작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체험한 ‘그 때에’ 시험이 온 것이다. 그들은 광야를 만났고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었다. 그러나 광야 40년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다.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 된 것은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을 얻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민족을 선택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한 분의 말씀에 민족 전체가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했다. 광야를 지나면서도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 한 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연단되어 흔들리지 않는 인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배고픔, 목마름이라는 육신의 욕구 앞에 무너졌다. 하나님의 부르심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나안이라는 약속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당장 눈 앞에 먹을 것이라는 욕구가 중요했다. 육신의 욕구 때문에 광야 1세대들은 불평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불신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반응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만다.


예수님에게도 시험이 찾아왔다. 예수님에게 공생애라는 그의 부르심을 시작하는 순간이 왔다. 너무도 중요한 순간에 마귀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갔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광야로도 인도하신다. 평탄한 길, 안정된 길, 형통한 길만 열어주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 아니다. 연단된 인격, 광야와 같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성령은 때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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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광야에 있는 성 조지(St. George) 수도원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셨다. 배고픔이라는 육신의 욕구가 가장 차올랐을 때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한다. 마 4:4,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 육신의 욕구를 먼저 만족시키라’고 유혹한 것이다. 예수님은 아담이 어디서 넘어졌는지 알고 계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디서 실패했는지 알고 계셨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육신의 욕구를 앞세웠기에 무너졌던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의 첫번 째 유혹을 신명기 8장 3절 말씀으로 응수하셨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가장 큰 바램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말씀에 자발적으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목적을 선택한 것이다. 육신의 욕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게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보다는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급급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마귀는 따로 그들을 시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담이 넘어진 곳, 이스라엘이 실패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첫번째 시험을 통과 하신다.


두번 째 마귀의 시험이 이어진다. 마 4:5-6,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자, 놀라운 것은 마귀가 성경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악한 목적을 위해 그것을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귀가 인용한 시편을 보자.


시 91: 9-12,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것은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의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 천사에게 명령하여 붙잡아줄 것을 약속하는 말씀이 아니다.


말라기 3장 1절을 보면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유대인 랍비들은 이 말씀 때문에 ‘메시아 왕이 오실 때, 그는 성전 지붕에 서실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마귀는 이러한 배경속에서 예수님께 그들의 메시야로 화려하게 등장하라고 부추긴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려서 메시아임을 입증해보라고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제안을 거절한다. 마귀가 성경을 문맥과 상관 없이 인용한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귀의 제안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라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응한다. 이것은 역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신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알고 계셨다. 그들은 맛사에 이르러 마실 물이 없자 시험에 빠졌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출 17:7) 의심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였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형통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는지를 가늠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태도였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을 해주고 안 해주고에 그 관계의 기초가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분을 시험할만한 어떠한 행동도 시도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인정받는 메시아로 등장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변함없이 따르는 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역사상 많은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자기를 입증하라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다. 성경을 문맥 밖에서 인용하면서 수많은 거짓선지자들과 이단들이 나왔다. 이단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잘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성경을 모른 채 신앙생활하다가 마귀와 이단에 넘어갈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마지막 세번 째 마귀의 시험이 이어진다. 마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라고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아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순종하는 것만이 사탄의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유일한 길임을 아셨다.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골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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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 시험산 수도원 (The Monastery of Temptation)


마귀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막기 원했다. 그래서 십자가 없는 영광을 취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셨다. 그리고 성경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기록되었다고 응수하셨다. 역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신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누구를 섬기느냐의 문제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편함과 영광 때문에 십자가 없는 영광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신이 보여주는 영광과 부에 눈이 멀어 그에게 절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성공, 십자가가 없는 영광은 우상인 것이다.


바울이 말한다.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이 시험받고 고난 당하신 것은 시험받는 우리를 돕기 위함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예수님처럼 시험을 통과하는 자가 적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사명을 이룰만큼 시험을 통과하여 연단된 사람들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한번 고백했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잇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전략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오직 육신의 욕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선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광야와 같은 환경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상 영광과 손쉽게 얻는 성공보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필요하다. 시험을 통해 연단된 인격,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필요한 것이다.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있다. 고참 마귀 스크루테이프가 자기 조카이자 신참 마귀인 웜우드에게 보내는 31통의 편지를 소설 형식으로 쓴 것이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참 마귀가 신참 마귀에게 조언하는 말이다.


“교회 출석이라는 이 증세가 나아지지 않을 시에는, 차선책으로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 주변을 헤매다니다가 결국은 교회감별사 내지 감정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인간들이 자기한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다 보면 원수(하나님)의 바람대로 학생이 되는 게 아니라 비평가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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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산에 오르는 케이블카


이 글은 요즘 소위 좋은 교회를 찾아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사랑하기로 결정하고 선택하셨기에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이 언약적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나 조건이 안될 때에도 주님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우리에게 목숨을 내어주신 것이다. 부부가 결혼한 것도 언약에 기초하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못 생겼다고, 공부 못한다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약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초로 세워진 관계다. 하나님과의 언약만이 아니라 성도들 간에도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다. 나와 다르고 싫다고 해서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부부가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의 헌신이 필요하다. 한 쪽만의 일방적인 섬김이 아니라 서로가 각자의 기능을 성실히 행할 때 가정이 온전히 세워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손이면, 손, 발이면 발의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의 몸이 온전히 세워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교회 성도가 언약이 아니라 계약관계처럼 교회를 선택하는데 있다고 본다. 세상 사교클럽처럼 내 기호와 기준에 따라 가입과 탈퇴를 마음대로 한다. 그것은 언약관계로 이루어진 교회를 허무는 행위다. 부부가 서로 무조건적인 위탁과 충성,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부관계의 위기다. 마찬가지로 교회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무조건적인 용납과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의 위기이자 개인 신앙의 위기다. 교회를 통해 신앙의 유익을 얻으려 하지만 한 몸된 지체로 세워지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헌신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몸은 세워지지 않는 것이다.


아담을 만드신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실현해 낼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처럼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을 통해 검증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환난과 시험을 인내하며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연단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야 한다. 그래야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육신의 욕구를 선택하며 부르심의 소망을 놓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의심하며 부르심의 소망을 놓친다. 십자가 없는 영광, 손쉬운 성공을 선택하며 부르심의 소망을 놓친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 그 최후 승리와 영광을 결코 모방할 수 없다. 그리하여 가짜 영광을 먹음직도하게, 보암직도 하게, 탐스럽게 만들어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바라기는 마귀의 시험과 거짓 영광에 넘어가지 않고, 오직 최후 승리와 영광이 있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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