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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탈북자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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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간증


김태진이라고 하는 분은 북한의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 4년이나 수용되어 있다가 
지금은 남한에 와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은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당의 명령에 따라 공장에 가서 노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세뇌 교육을 받은 것이 북한이 지상 최고의 낙원이라고 했는데 
똑같은 노동을 반복하다 보니 회의가 생겼습니다. 
도대체 최고의 지상낙원이 이것인가 했습니다. 
그래서 탈북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도망가서 중국 탄광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제일 숨기 좋은 곳이 탄광이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거기에서 조선족으로부터 성경을 선물 받아 읽기 시작하고, 
조선족 부부가 교회로 인도해서 다니기 시작했지만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4개월 만에 발각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은 북한으로 송환되었는데 이런 사람은 즉결 처분을 당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이 믿음 없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셔서 사형당하는 것을 면하게 하시고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습! 니다. 

그런데 얼마나 때리는지 매를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고, 
어떤 때는 씻지도 못하게 하고, 쥐나 벼룩이 물어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감옥이 매우 추운 감옥에 꼼짝없이 갇혀있는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8년 3월 31일에는 요덕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이곳은 추운 고산 지대에 있는 노동수용소라고 합니다. 
옷은 한 벌만 주고,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계속 노동을 시키는데 
하루에 주는 식량은 300g의 옥수수밖에 없어서 너무 배가 고프니까 
쥐가 나오면 쥐를 잡아먹고, 뱀도 잡아먹고, 개구리, 두꺼비, 뭐든지 잡아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모범수 몇 사람을 석방을 시키더랍니다. 
여기서도 살 길이 있구나 하고 희망을 품고 결심을 하여 최고의 모범수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더니 1992년 4월 1일 요덕 수용소에 갇힌 지 4년이 되는 날에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모든 죄수들을 모아놓고 석방발표를 하는데 
특사로 풀려나는 명단에 자기 이름이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거기에서 나와 자기 집으로 갔는데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덕 수용소 출신은 가족도 안 받아 줍니다. 살 길이 막막할 겁니다. 
할 수 없이 또 탈출을 해 중국으로 가서 거기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나고, 
탈북자들이 성경공부 하는 곳에서 열심히 했더니 
나중에는 리더가 되어 오히려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을 돕는 사람들을 통해서 남쪽으로 무사히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지금 한국 정식 시민이 되어서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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