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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부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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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예찬

아가서 6:4-7                                                                                         

2018. 6. 3 오전


다시 남녀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둘은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와쯔프입니다. 4장, 5장 그리고 6장에 세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눈, 머리, 이, 뺨 순서로 여인의 몸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4절)


남자는 여자에게 먼저 디르사 같이 어여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디르사는 그 때 북왕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오므리왕이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길 때까지 반세기 동안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930- 885 B C). 디르사의 뜻은 ‘사랑스럽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르사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긴 후에도 계속 개발되었습니다. 북왕국의 두 번째 도시로 성장하여 아름다운 도시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디르사처럼 아름답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 술람미는 다 내려놓고 신랑만을 사랑하였습니다. 상사병에 걸릴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를 그토록 사랑한 아내 술람미를 디르사같이 예쁘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자기 사랑을 자기가 지니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남편만 사랑하면 남편은 아내를 극찬하게 됩니다. 신부 술람미는 아가서에서 세 번 칭찬을 받았습니다.

6장 4절에서는 왕이 칭찬하였습니다. 6:10에서는 백성들이 칭찬하였습니다. 7:1에서는 술람미의 경쟁자들인 궁중 여인들이 칭찬하였습니다. 이같이 왕만 사랑하는 자는 모두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다른 궁중 여인들은 고관 출신으로 사랑만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받기만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술람미는 얼굴이 검게 될 정도로 오빠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에서 아주 밑바닥 일꾼으로 일했습니다. 그렇기 다문에 받기보다 받드는 데 익숙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가서는 예수님의 책입니다.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만 사랑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디르사처럼 예쁘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5-7)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은 아내를 귀한 그릇으로 여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신랑되신 예수님이 신부된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같이 곱고

그리고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잔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시 48:1-2)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을 온전한 곳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시 50:2)

전설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법궤가 있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의 상징입니다. 삼하 6:12-19.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의 다른 이름입니다(시 48:8, 87:3).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입니다(마 4:5).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곳입니다(갈 4:25~26). 바울은 예루살렘을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술람미가 국보급 여자라는 얘깁니다.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깃발은 히브리어로 ‘아융마’ ayummah 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의미가 있습니다. 깃발을 세운 군대를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엄이 있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감히 범할 수 없는 공포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은 미모도 있지만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위엄이 있는 여자입니다. 당시 근동지방의 여신들은 미모와 위엄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이 여신을 생각할 때는 절세미인이고 공포감을 가질 정도로 무서운 여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가서 여인이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군대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디르사 같이, 그리고 예루살렘같이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귀여운 동네 여인이 아니라 위엄 있는 국가의 여인처럼 보였습니다. 당당한 여인이었습니다.


왕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섭게 여기게 됩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모세를 바로가 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왕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하였습니다.


승리의 깃발을 들고 행군할 때만큼 당당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기에 당당하게 깃발을 들고 행군하는 군대 같았습니다.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면 사탄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아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이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가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걸레는 빨아도 걸레입니다. 보석은 흙이 묻어도 보석입니다. 왕은 거지 옷을 입어도 왕입니다. 거지는 왕복을 입어도 거지입니다. 까마귀는 흰 칠을 해도 까마귀입니다. 군인은 경찰복을 입어도 군인입니다. 간장 그릇은 아무리 애써도 김치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콩나물은 아무리 커도 콩나무가 아니라 콩나물입니다. 성도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가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애 2:15)

이같이 디르사와 예루살렘은 모두 높은 산 위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850m 산 위에 있었습니다. 모두 수도이기에 성벽, 건물, 조경 모두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여인의 아름다움에 비교하였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디르사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같이 곱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대같이 당당하다고 하였습니다.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름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5절)


첫 번 만나는 4:9에서 남자는 여자의 눈에 매력을 느꼈었습니다.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습니다. 전보다 더 강하여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감히 눈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해졌습니다. 얼마나 눈이 아름다운지 놀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싫어서가 아닙니다. 기절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가지가 예쁘면 다 예뻐 보입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에스더의 미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왕후로 삼았습니다. 그 후 에스더의 부탁은 다 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하고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한번 잘 보시면 어떤 기도도 들어 주시는 응답의 주님이십니다.

5절 후반부터는 여인의 몸의 한 부분 부분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머리털부터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길르앗에서 내려온 염소 머리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4:1에서 말했던 대로입니다.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6절)


여인의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같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가지런한 하얀 이가 인상 깊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두 쌍태같이 가지런하다는 말입니다. 이가 들쑥날쑥하지 않고 쌍둥이같이 한결같습니다. 이는 오복 중의 하나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몸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좋게 보아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고 하면 십자가를 보라.”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습니다. 최고의 사랑입니다.


“너울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7절)


이미 언급하였던 사실입니다. 너울 속으로 보이는 뺨이 석류같이 빨갛고 아름다웠습니다. 뺨은 감정을 기록하는 종이 같습니다. 뺨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의 뺨이 석류 한 쪽 같습니다. 빨간 뺨입니다. 기쁨과 행복과 평안이 철철 흘러넘치는 뺨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예쁘게 보였습니다. 눈도 아름답고, 머리털도 최고이고, 이까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모든 것이 합당하게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아내를 영부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부인입니다. 당당할 수 있습니다. 전에 옥천에 가서 육영수 여사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육영수 여사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첩을 많이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지겨웠습니다. 어린 마음에 좋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장관의 아내들에게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육 여사가 그 장관을 불렀다고 합니다. 영부인이 오라고 하는데 안 올 장관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혼내 주었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바람을 피우면 대통령에게 말해서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고위 공직자들의 가정을 잘 다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부인은 당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이 예수님이기에 당당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사울왕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그 때 장수는 거인인 골리앗이었습니다. 누구도 덤비지 못하므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뱀 앞의 개구리처럼, 고래 앞의 새우처럼,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숨어 있었습니다. 이 때 17살밖에 되지 아니한 소년 다윗이 나가서 싸워 이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 무시하여도 당당하게 나가 싸워 이기는 다윗의 용맹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할 수 있다’의 용기를 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 사람들이 무시하는데도 당당히 대처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무시하여도, 형들이 왕 되는 자리에 젖혀 놓아도, 사울왕이 "너는 너무 어려서 전쟁에 나갈 수 없다"고 무시하여도 당당하게 나갔습니다. 가장 무시한 사람은 골리앗이었습니다. 자기에게 덤비는 다윗을 보고 골리앗이 업신여겼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삼상 17:42)

그리고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내게 나아왔느냐?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에게 주리라”(삼상 17:44)

모두가 다윗을 무시하였습니다. 단 한 명도 다윗을 믿어주고 인정하여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당하게 나가서 싸웠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인정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런 당당함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14권의 성경을 쓰면서 항상 서두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바 된 나 바울은”

이런 당당함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는데 누가 건드리겠느냐는 깃발을 들고 전진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바울을 쓰셨습니 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의 인정을 받은 술람미는 깃발을 들고 당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신부된 우리는 신랑을 믿고 당당하게 깃발을 들고나가야 합니다. 세상 모두가 몰라준다 하여도 우리 주님 한 분만 알아주시면 됩니다. 다만 주님이면 족합니다. 우리 주님이 당신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교회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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