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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우리가 계속 신명기 28장에 대해서 읽고 있습니다. 이것을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늘 영적 이치 영인성장 면에 영적 면에서 정신 사상 믿음 신앙생명 그 면으로 들어가 있으면 자기가 영의 눈이 밝아서 현재에 어떤 상태로 되어있는 자기 신앙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걸 발견해야 돼요. 복음은 영인성장을 위해서 주는 겁니다. 근데 예수 믿으면 자꾸 세상에서 복 받고 안 믿는 사람들의 소원 목적처럼 생각을 하니 사람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피해가 막심합니다.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알아야 되겠어요.

 

우리 모두 각자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굽은 것이 곧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그 앞에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들으신 분은 생각이 납니까? 지금 불도저가 밀어버린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까? 굽어진 것이 곧아지고. 쉽게 생각을 해 봅시다. 이치적으로. 지형적으로 보면 길이 굽어지면 멀리까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렇지요? 굽은 길이 있게 되면 또 늘 그곳에는 사고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위험요소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굽은 길에서 속도를 내면 목숨을 잃게 되지요. 더더군다나 빙판길이라면 속도를 냈다면 그건 백 프로 사고요. 옛날에는 길 돌 때마다 사고가 많은 곳에는 해적선 깃발처럼 해골을 딱 그려놨는데 그걸 왜 치웠는지 모르겠어. , 그걸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도록 해야지.

 

그 다음에 이 철사 줄. 철사의 경우를 가만히 또 생각을 해 봅니다. 굽어져 있으면 이게 원래대로는 펴지지는 않습니다. 많이 해 봤어요. 용도에 맞게 쓰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무너진 아파트에서 나온 이리저리 휘어진 철근 그거 다시 갖다가 집짓는 데는 쓸 수가 없습니다. 맞지요? 용광로 행입니다. 굽어진 것은 이건 펴도 안 되면 용광로 행이다. 새 집 짓는 데는 녹슬지 않고 곧은 새 철근이더라. 녹 쓸면 안 돼요. 곧아도 녹이 쓸어있으면 안 돼요. 행여나 집 지을 때 녹슨 거 갖다 넣으면 안 돼요. 오래 가지 못해요. 녹슬지 않고 곧은 것은 용도에 맞게 자르든지 굽히든지 해서 쓸모가 많아요. 용도에 맞게 자를 수도 있고 휠 수도 있고.

 

못의 경우 못 중간이 휘어지면 그래도 뺀찌를 물고 어렵사리 박아지기도 하지만 못대가리가 휘어진 것은 처음부터 아예 손에 잡지를 말아야 돼. 이 지금 못이요 사람이요? 못대가리 휘어진 거 머리부터 휘어졌으면 이건 아예 쓸모가 없다. 사람이 쓸모가 없다. , 처녀총각들 잘 보라고. 못대가리 휘어진 것처럼 대가리가 휘어진 사람이 있는지? 몸뚱이만 미끈하다 보고 그렇게만 보면 안 돼요. 못대가리 휘어진 것처럼 머리가 휘어진 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많아.

 

어쨌든 못대가리 휘어진 거 집어서 박았다간 이건 때릴수록 몸뚱이까지 형편없이 휘어져 버려요. 곧아진 몸뚱이도 못대가리가 이렇게 옆으로 돼 있으면 이건 때릴수록 몸뚱이까지 휘어져 버려요. 그러니까 힘만 쓰고 애만 썼지 다 못쓰게 돼버려요. 작품이 돼지지를 않아요. 못대가리 휘어진 것 많이 박아봤습니까? 절대로 못 쓴다. 일반이치에서 우리에게 신앙 믿음을 정신적 사상적 신앙 믿음을 많이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깨달으라고 하는 거요. 박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깨달으라고 하는 거란 말이요.

 

그 다음에 또 보면 사람이 성격 면에서 굽어있는 성격이 많습니다. 굽은 것을 알려면 굽은 사람의 마음 정신을 알려면 먼저 곧고 바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격이나 성질이나 성분은 모두 곧고 바릅니다. 모두 진리생명으로 되어있고 전부는 우리의 구원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뚤어지거나 굽어지거나 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주님을 따른다면 그런 성격 성질 성분을 보고 고치란 말이요. 왜 안 고치지? 왜 안 고쳐요? 안 고치고 은혜 받을 수 있고 안 고치고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봅니까? 고쳐야 돼.

 

정확하고 절대적인 것을 모르면 굽어진 것도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바른 것을 정확한 것을 정답을 알지 못하면 자기가 틀려있어도 이게 왜 틀려있는지 그걸 몰라요. 고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절대적인 그 분을 많이 알수록 많이 깨달을수록 자기가 그만큼 보이는 겁니다. 고쳐야 돼요.

 

그 다음에 네 번째 보면 아까 거는 사람의 성격 면에서, 더 앞에 것은 물질적인 면에서 못이나 철사나 무슨 지형적인 거나 그런 데서 우리가 이치를 생각을 해 봤어요. 근데 네 번째는 신앙사상 면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인데 진리는 영원히 가는 것, 썩지 않고 불타지 않고 요동치 않고 불에 타지 않고 진동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바람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것. 그런 성격 성질 그런 소원 목적 그런 지혜지식 그런 도덕성. 이 진리란 말이요. 진리라 그럴 때는 하나님의 속성적인 것이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걸 진리라 그러는 거요. 그리고 그 진리는 살리는 운동을 해요. 죽은 것이 없으니까 비뚤어진 것이 없으니까 살리는 운동하고 펴는 운동하고 고치는 운동을 한다.

 

하나님의 이 진리본질에서 이탈된 신앙사상이 또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비뚤어진,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저주받을 수밖에 없고 심판받는 그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면에서는 전부 요건 비뚤어지고 굽어져 있습니다. 신앙 면에서도 이건 비뚤어져 있지만 인간 자기 것도 펼 도리가 없어요. 그건 안 펴져요. 죽을 때까지 예수 믿어도 안 펴집니다. 펴는 방법도 모르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우리 모두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 보면 자기 성질에 안 맞으면 다른 사람보고 고치라 그렇게 하긴 쉬운데 막상 자기를 향해서 고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세상적인 인본주의 육본주의 넓은 길 사망 길로 가는 사상이라서.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 있습니까? , 이게 어느 교회로 많은 사람이 간다지금 그렇게 생각을 말고 그렇게 생각을 말고 일반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그건 세상 넓은 길로 가는 거다. 그런 면에서 사망 길로 가는 사상이라서 그 신앙은 하나님 앞에 구원의 일에 충성봉사를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 쓸모가 없어요.

 

하나님 앞에 갖추어지는 것은 먼저 번제단에서 잡혀가지고 성전 안으로 전 안으로 들어가게 돼 있어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돼 있어요. 죽기 전에는 못 들어가요. 하나님 앞에 못 들어가요. 쉽게 그저 얘기를 한다면 육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는 하나님 앞에 죄악적인 것 하나님과 맞추어지지 못한 것 완전히 세상적인 것. 그 하나님 안 받아요. 흠과 티가 있기 때문에 안 받아요. 하나님 앞에는 흠과 티가 없는 것으로 들어가는 거요. 우리는 흠과 티가 많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봐서 이렇게 들어가 있단 말이요. 세상 넓은 길 사망 길로 가면서 교회에서 충성봉사 몸 바치고 목숨을 바쳐도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성경에 있습니까? 구절적으로도 있지요? 그런 데서 충성봉사 하려거들랑 그런 구절이나 해석을 명확히 하고 하라고요.

 

더군다나 성격 면에서나 깨닫는 면에서나 두 가지 다 복합적으로 비뚤어져 있다면 신앙 면에서도 비뚤어져 있고 사람의 성격 면에서도 비뚤어져 있다면 이것은 사람 앞에도 힘들고 하나님 앞에도 참 힘든 사람이다. 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느냐? 교인을 다 쫓아 보내요. 그런 일을 해요. 성격이 고약하면 다른 사람을 싸워서 다 쫓아 보내버려요. 한 번 생각을 해봐요. 이 어찌되겠나? 이거 안 된다. 사람 앞에서도 참 힘든 사람이라. 그놈의 성격 성질 때문에 신앙은 고사하고 사람이 다 싫어해요. 그럼 어찌 되는 거요? 어떻게 전도를 할 것이며 어떻게 전할 것이며, 그리고 말하는 것도 비딱하고 앉는 것도 비딱하고 서있는 것도 비딱하고 일하는 정신도 비딱하고 전부는 비딱이요. 성질도 가시 돋고 입도 비쭉이고 보는 시선도 흘깃하고. 그래서 부모형제도 아내도 남편도 이웃도 친구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 당신이 좋으면 사람을 통해서 또 좋아하게 돼 있어요. 결국은 용광로에 들어가서 다시 만들어져 나와야 하는 수밖에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광야에서 선지자 만나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굽은 성격 성질 성분들은 주님처럼 잘 펴지고 고쳐질 것입니다. 광야로 나가야지 세상을 의지한 채 고쳐지느냐? 그건 안 고쳐진다. 죽을 때까지 예수 믿어도 그 성격 성질은 안 고쳐진다. 세상으로 딱 들어있기 때문에 그게 짐이야. 왜 그렇게 무거운 것을 속에 안고 머리에 이고 들고 왜 그러는지 몰라.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그럽니까? 자기가 그러는 거요. 자기가. 자기가 감기 들면 감기가 머리 아프다 그래요? 자기가 머리 아픈 거요.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험한 길보다 평탄한 길이 더 좋지요? 더 좋아요. 어느 누가 험난한 길로 가려고 하겠는가? 다 평탄한 길로 가려고 하지. 험한 길은 땅이 울퉁불퉁하지요? 돌짝 길 가시가 돋은 가시밭 길 넝쿨이 많은 산 길 움푹움푹 파인 길 이 참 가기가 힘들어요. 더더군다나 그런 데는 또 웬 뱀이 잘 기어 다니는지 몰라. 원리가 그래요. 그런데다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는 길이가면 이건 무척 힘들다. 이거 사람이 다치더라.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길이란 사람이 다니는 길. 왜 다니느냐? 살려고 다니지. 살려고 다니는 길. 언제까지 그 길을 다니느냐? 죽을 때까지 그 길을 다니더라. 살려고. 그러니까 인생의 삶의 길이라 그 말이요.

 

만일 출생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행복의 맛도 못 보고 험한 길로만 살아온 여정이라면 그 인생이라면 인생을 살았다 하는 맛이 무슨 보람이 있을까? 무슨 보람이 있을까? 기가 막히지 않는가? 그거. 또 평생 살아야 할 길이 평생 험난한 길로만 가야 한다고 알 때는 삶의 위로를 어디서 받을까? 그 인생을 좀 생각을 해보란 말이요. ‘돈만 있으면 산다. 집만 있으면 산다. 먹을 것만 있으면 산다. 재워놓고 산다. 저축해놓고 산다그렇게만 생각을 하지 말고. 그거 어떻게 보장을 해요? 그 한 번씩 보면 돈을 취급하는 은행에서도 직원들이 먹고 날아버립니까? 그 어떻게 맡겨요? 생각을 해봐요.

 

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하여튼 앞으로 자기 계획이 있어가지고 은행에다가 다 집어넣지 않아요. 은행이고 보험이고. 근데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지진이라든지 일으켜가지고 이래놓으면 자기도 죽고 은행도 폭삭하고 그러면 돈을 누구한테 달라고 그럴까? 누구한테 달라고 그러겠어요? 찾을 수 있겠어요? 못 찾아요. 국가가 있는 한 다 국고로 들어가는 거지. 찾으려고 그래도 증거가 있어요? 돈에다가 자기 인물 찍어놓은 것도 아니고. 저는 좀 이상한 데가 많아요. 한 번씩 가다가 그런 생각을 좀 해보는 거요. 어떻게, 보실 때 내가 미친 거처럼 안 보여요?

 

삶의 위로를 어디서 받을까? 이 참 정말 참 기가 막힌 삶이다. 타락된 인간의 세상은 험한 길밖에 없습니다. 아예 그렇게 생각을 하세요. 험한 길밖에 없어요. 타락된 인간의 세상은 그래요. 바람 불면 파도가 일고 눈보라 치는 세상입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근데 그렇게 해 놨어요?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어떤 사람에게 그렇다는 말인가? 어떤 사람에게 그런 거요?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어떤 사람에게 그렇다 그 말이요? 죽은 사람에게 말하는 거요 산 사람에게 말하는 거요? 지금 누구보고 하는 말이요? 남보고 하는 말이지? 예수 믿으면서 예수 믿는 효력을 좀 보자 그 말이요. 신약 구약을 먹었으면 약 두 첩을 먹었으면 뭔가 효과가 나야 될 것 아니요? 예수 믿는 효과 봐요? 효력 있어요? 예수 믿는 효력도 없이 교회에다 헌금이나 바쳐놓고 이러면 억울해서 어떻게 잠을 잘까? 나 같으면 억울해서 못 살겠어. 은혜도 못 보고 예수 믿는 효력도 없고 뭐가 감사하다는 거요? 감사할 건더기가 없잖아요? 효력 효과가 있게 예수를 좀 믿어보자.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자기가 사는 동안에 그런 면을 좀 은혜를 받아야지. 빈들 광야로 나가서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에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어도 회개 안 된 사람이 많아요. 그건 평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게 좀 저주스럽게 말을 한다면 네 앞길이 참 걱정스럽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렇단 말이요. 예수 믿으면 사람이 성격이나 성질 면에 마음 면에 심성 면에 복스럽게 나간다면 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생기고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고약하면 참 너 큰일이다이런 거 있습니까? 평탄하여 진다고 하는 것은 그 전에는 험난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빈들로 나가서 세상 것을 탈탈 털고 빈들로 나가서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고 나니 세상을 기대던 정신이 하늘 쪽으로. 그 회개요. 자기의 소원 목적도 하늘 쪽으로.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보면 자기 세상성공을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 그건 회개 안 한 사람이다. ‘넌 끝내 그렇게 살 것 같으면 끝내 너는 그 길로 죽겠구나.’ 회개가 아니란 말이요.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에게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고 가니 이제는 험한 길도 평탄한 길처럼 느껴지면서 험한 길이 험한 길로 보이지 않는 거요. 남 보기에는 별 험하지 않는데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험한지? 왜 그렇게 어렵게 사나? 자식도 다 크고 논밭도 많고 이제 두 부부가 늘그막하게 손자나 보면서, 먹을 게 없나 돈이 없나 집이 없나? 자식이 다 직장 다니고. 근데 가만 보면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한지. 이게 험한 길이요. 누가 험한 길을 만들고 있나? 자기가 그렇더라. 그러니까 일찍 죽어버리더라. 그냥 일찍 죽으면 낫겠는데 치매 걸리고 똥오줌 싸고 벽에다가 된장 칠하고. 이 참 정말 은근히 걱정이 돼요. 예수 믿는 사람이 나뿐만 아니고 늙어서 벽에다가 된장 칠을 하고 죽는다면 이게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 믿는 덕이라고 하는 게 하나도 없겠구나. 은근히 걱정이 돼요.

 

험한 길도 평탄한 길처럼 느껴지면서 간다는 것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입은 사람이구나. 험한 삶인데도 세상사람들이 볼 때는 험한 삶인데 어렵게 살고 곤란하게 사는데 그렇게 사는 본인에게는 이게 험하지를 않아. 그럼 정신병자입니까? 어때요? 그 사람 마음이 넓은 거요 좁은 거요? 우리교인들이 볼 때는 제가 키도 작고 마음평수가 이게 얼마나 되겠어요? 조금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서산 해미에서 살면서 정말 정말 세상 말로 하면 고생을 많이 한 거지요. 고생이야 날 때부터 했으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고생으로 여기고 어떻게 사나? 자식 키우면서 어떻게 사나?’ 우리에게는 그걸 고생으로 여기지를 않았어요. 집사람한테 물어보라고요. 앞으로 나가고 뚫고 나가고 밀고 나가는 거밖에 없어요.

 

못 사는 게 고생이요? 아니요. 못 깨닫는 것이 고생이요. 하나님 앞에. 먹고 마시고 잘 산다고 해서 사람이 편하라는 법은 없어. 하나님이 휘 저어버리면 난리법석이 나는 거요. 그거.

 

우리가 세상 사는 사람들을 가만 보면 자기의 환경은 결코 험난하지는 않는데 자기의 성격 성질 때문에 자기 일생을 험하게 만들어놓고 사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더라.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험난한 환경인데도 잘 이기고 견디고 잘 만들어져가는 사람도 있더라. 사람이 문제 아니요? 알고 보면 모두 자기 인격의 수준 문제더라. 깨달음의 문제고.

 

사람이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선지자를 만나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만, 사람이 구원된단 말이요. 자기가 그렇게 올라간단 말이요. 그렇지 않을 경우 험한 인생을 살면서 악바리 같은 험한 사람이 되고 만다.

 

가만 보면 남편도 죽었지. 여자가 이제 어린아이를 기르면서 살려니까 남자가 돼야 돼요. 평생 살면서 남자에게 얻어맞고 돈 벌어도 갖다 주지 않고 만날 여자가 남편을 먹여 살리고 자식도 어린 자식을 키워야 되니 여자가 강한 마음을 안 먹으면 안 되잖아요. 맞잖아요? 같이 죽을 건가? 살아야지.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지혜가 나고 좀 이렇게 사람이 부드러운 데서 지혜가 나고 이렇게 되겠는데 지혜의 사람이 돼서 도덕성적으로도 나가겠는데 예수도 안 믿지. 그러니까 무슨 장사꾼들이나 가만 봐 봐요. 이게 뭐 여자인데 남자처럼 살려니까 얼마나 강인한, 어떤 입을 악다물고 살아야 되겠느냐? 그러니까 말하는 그 모든 것이 참 험악해요. 굉장히 험악해. ‘여자가 나쁘다그게 아니고 환경적으로 만들어지는 그 사람의 성격. 환경의 산물이라 그 말이요. 그게 참 불쌍하다. 참말로 불쌍하다. 악만 남았어요. 사람이 악만 남았어요. 그런 사람 간혹 볼 수 있어요.

 

좋게 칭찬적으로 말하자면 그 정신이기 때문에 그래도 자식들 학교 보내고 무난히 살아나왔구나. 나쁘게 말하면 사람이 이게 고쳐지지 못하고 다듬어지지를 못했구나. 그러니까 여자라고 하는 매력은 하나도 없는 거지. 남자보다 더 억세니까 이건 뭐. 우리 모두 자기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악바리가 되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 그런 예언을 했습니까? 4절에 보면 누가 그랬어요? 이사야가. 주님 오시기 전 약 칠백 년 전. 주님 오시기 칠백 년 전에 예언한 겁니다. 이 예언을 이사야 자기 개인 생각대로 한 것이냐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된 것이냐? 뭐로 됐어요? 쉽게 이해를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인간 되어 오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이사야에게 그런 예언을 하도록 당신이 시킨 겁니다.

 

광야로 나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은 이제는 멸망당할 육체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본다.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그게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온전한 영능의 능력의 사람이 되고. 영능의 능력의 사람은 자기 마음은 요동 없고 변동 없고 이룰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게 되고 그 다음에 악인의 심판과 성도의 보존을 자기가 보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체험하고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구원이요. , 사람 자기 자체에게 그게 들어있는 건데 예수이름 이용하고 교회이름 이용하고 뭐하겠다고요? 그건 도둑의 발상이요 예수이름 이용해서 자기 볼 장 챙기려고 하는 이건 못 쓴다. 너는 저주다.

 

지금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잘 들으면 주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반드시 네가 보게 된다.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 안에서 외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음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너에게 없다. ‘천국 못 간다그 말이 아니고 네가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너는 발견을 못할 거다.’

 

가르침에서 저것이 신앙운동인지 하나의 종교운동인지 그 성질을 구별을 해야 합니다. 우리교인들은 그걸 잘 구별 하세요. 설교도. 하나의 기독교 종교인만 되지 말고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리본질의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 만들어지는 것. 그 외에는 다 따라오는 거다. 다 따라오는 거다. 그게 지금 이해가 됩니까?

 

세상 일이 자기 앞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이런 소리 들립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편안히 듣는 것도 자기가 뭐 배가 부르고 편안해야지 몸도 아프고 고생스러운데 그게 들리겠느냐? 자기가 세상살이 어려울 때에 세상이 말하는 소리를 빨리 듣겠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를 빨리 듣겠는지? 어느 쪽으로 마음이 빨리 달려갈까? 그건 자기가 못 속이지요?

 

내가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그런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의 만능의 능력은 못하심이 없습니다. , 뭐 돌을 가지고 사람을 만들까 만은 왜 그런 표현을 하시는가 하니 당신의 만능의 능력은 못하심이 없다.

 

자기가 뭐로 된 것 같아요? 흙 가지고 된 것 같습니까 돌 가지고 된 것 같습니까? 저는 참 생각할수록 신비스럽다. 무슨 말이냐? 이 산천초목들을 보면 어찌 갖가지 영양분을 그렇게 빨아먹었을까? 땅속에 물도 단물도 있고 쓴물도 있고 짭짜름한 물도 있고 신물도 있고 다 있다는 건데 그런데 그 나무들이 그런 물을 다 빨아가지고 햇볕을 받으니 그 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신과일이 나오고 단 과일이 나오고, 물이 많은 과일도 있고 없는 과일도 있고 여러 가지 형태로 나온 걸 가만 보면 너무 신비스럽다. 인간이 어떻게 그걸 하겠어요? 인간은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장난질을 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나무의 열매나 채소를 먹고 이게 또 속에서 영양이 돼가지고 그 속에 어떻게 머리카락도 있을까? 머리카락의 요소가 들어있었다는 말인데, 없이는 머리카락은 안 나올 거란 말이요. 손톱도 돼 나오고 뼈다귀도 돼 나오고 너무 신비스럽다. 참 신비스럽다.

 

, 그리고 또 일반적으로 보면 햇빛을 많이 받는 사람은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근데 가만 보면 상당히 튼튼해. 뼈대가 튼튼하고 피부 살결도 튼튼하고. 그런데 그을릴까 싶어서 그늘에서만 살고 있으면 겉으로 보면 하얗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너는 뼈가 삭는다. 삭아. 알겠어요? 햇빛 너무 안 쐬면 자기 뼈가 삭아버려요. 삭아버려. 골다공증도 막 생기고.

 

자기 얼굴을 하얗게 만들고 그러려면 아예 콩나물 단지 속에 들어가서 까만 거 쓰고 있어. 그럼 하얘질 거요. 누래질 거요. 인간이 어떻게 그런 쪽으로만 신경을 쓸까? 그리고 남자들 제발 아내얼굴이 까맣든 하얗든 원래 생긴 대로, 문제는 마음바탕이란 말이요. 하야면 어떻고 까마면 어때요? 피부가 거칠면 어때요? 안 그러면 남편 보기에 그걸 자꾸 다듬느라고 야단법석을 치지. 이제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사서 고생을 만들어.

 

만능의 능력이 못하심이 없다. 그런데 지금 그걸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성을 가진 너희들이 이성도 없고 오각과 오감성도 없고 생명이 없는 이 돌보다도 더 못하다는 말이 되는 거지요.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면서 얼마나 악한 정신 사상을 불어넣어주고 있는지? 아브라함은 개인적으로 실수는 있어도 교훈적으로 가르치기를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다는 거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혈통 자손이라 자랑하면서 신앙사상은 아브라함의 신앙사상은 아니고 이방민족 로마를 왕으로 삼고 소원성은 세상에 있는 것을 구하고 입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짖고 있으니, 말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유대종교적인 세상을 이루어 달라고 예수님 당시 종교인들은 그렇게 가르쳤더라. 그러니까 그들의 가르침이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을 걸었던 그 사상하고 같은 사상이요.

 

우리는 사단 마귀가 유혹하고 미혹하는 거. 부피 외모 모양 덩어리 큰 것에 맞추면 안 돼요. 그런데다가 기준을 세우면 안 돼. 자기 일이 잘 풀리는 그 쪽으로 기준을 세우면 안 돼요. 이건 마귀의 격동을 받아서 마귀 짓을 하게 돼요. 광야의 신앙사상의 주님의 보내신 사자의 소리를 듣고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6절에서 말하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 그 구원을 보게 된다 그 말이요.

 

살아서 믿는 자는 죽는다 그랬어요 산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안 죽는다 그 말이지요? 살아서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그렇습니까? 육신은 죽지요? 어디 가서 또 살아요? 천국 가서. 그러면 영원히 죽지 않는 건 또 뭐요? 지금 믿는 것은 영원히 안 죽는 게 들어있습니까? 우리는 죽고 없어질 것으로 신앙하는 게 아니요. 신령천국에서 효력이 있는 것, 그리고 천국뿐만 아니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오늘 성경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하나님은 거짓말을 안 해요. 그런데 왜 자기가 효력을 못 보고 있느냐? 문제는 어디 있느냐 그 말이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는 거냐 인간 내 편에서 문제가 있는 거냐? 그걸 잘 찾아서 회개를 하고 바로 잡아야지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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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 또는 010-8886-****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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