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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국, 최초 목사 량파 기념관 건립 기독교 입장변화 훈풍 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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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태경 기자(국민일보)

중국 광둥성 푸산시에 중국 최초의 목사 량파(1789∼1855)의 기념관이 세워진다. 푸산시는 무술인 황비홍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2001년 1월 부지면적 5000여㎡에 청나라식 2층 건물로 황비홍의 기념관이 설립돼 있다. 현재 이 기념관에는 황비홍의 유물과 사진, 그림 1000점 이상이 전시돼 있다.

그런 푸산시에 량파 기념관이 세워지게 된 것은 중국 기독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량파 기념관은 그가 태어난 푸산시 허청구 시량촌에 2층 규모로 설립되고 그의 생전 사진과 저작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푸산시 정부는 량파의 화집을 발간할 뿐 아니라 관련 문물 관람과 관광, 학술교류의 장으로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앞서 2004년 량파의 생가를 복원하기도 했다. 홍콩 구룡반도 쿤통에는 1963년에 세워진 중화기독교회 량파기념예배당이 있다.

량파는 중국에서 활동한 첫번째 개신교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과 함께 사역한 중국인이다. 모리슨 선교사가 번역한 누가복음과 일부분의 바울 서신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인쇄됐다.

광저우에서 소학교를 마친 그는 선교사 윌리엄 밀느의 인쇄소에 들어가 모리슨과 밀느가 번역한 서적들을 인쇄하는 일을 했다. 1816년 밀느에게 세례를 받고 중국인으로서는 두번째 기독인이 됐다. 첫번째 세례 기독인은 모리슨의 문서 번역과 출판 사역을 도왔던 인쇄공 차이야가오(蔡亞高)였다.

량파는 모리슨과 밀느가 말라카에 영화서원을 설립할 때도 동참했다. 1819년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미신과 우상을 버릴 것을 촉구하는 '구세록촬요약해'라는 책을 펴냈다. 이는 중국인이 저술한 최초의 전도서적이다.

그는 1820∼21년 영화서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아내 리씨가 1820년 세례를 받고 중국 최초의 여신도가 되었다. 1823년 10월에는 그의 아들 량전더가 중국 최초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는 또 같은 해 광저우 지역 전도인으로 안수 받고 중국 최초의 전도사가 됐다. 3년 뒤 모리슨은 그를 광저우의 목사로 임명했다.

량파의 대표작은 1832년 광저우에서 출판한 '권세양언'. 총 235쪽, 약 9만자의 9권으로 이뤄진 책자로 훗날 훙쉬취안의 태평천국 건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권세양언은 량파 자신의 기독교 이해를 바탕으로 쓰고 모리슨과 밀느의 성경번역본인 '신천성서'를 발췌, 전재한 것이다. 그는 앞서 자신의 개종과 세례, 전도 활동과 종교적 체험 등을 자술한 '숙학성리약론'을 출간했다. 량파는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대부에게 기독교 전단과 책 등을 배포하며 전도하는데 힘썼다. 1년에 나눠준 소책자가 7만권에 달할 정도였다.

올해는 모리슨이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 점에서 량파 기념관이 중국 땅에 세워지게 된 것은 세계 교회에도 희소식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나서서 한 기독인의 기념관까지 만들게 된 것은 앞으로 중앙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입장 변화 가능지수를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량파 기념관이 하루속히 완공돼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베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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