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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신앙인 (창 26: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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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앙인 (창 26:12-35)


몇 년 전 베트남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을 공산화로 통일시킨 호치민(호지명)을 영웅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고 없지만 그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지하궁전에 모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진심으로 호치민을 우러러 본다는 것입니다. 호치민은 베트남을 독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통일을 이룬 진정한 민족지도자라는 것입니다. 

키 160cm가 못되는 작은 체구의 지도자를 온 국민들이 그토록 우러러 보는 것은 그의 삶이었습니다. 호치민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느라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한 끼에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편안하게 앉아 맛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총독부로 쓰던 건물을 주석궁으로 사용했는데, 호치민은 그곳에 단 하루도 머물지 않고 조그만 집을 집무실로 삼았으며, 주석궁에는 호치민을 도와 일하는 국가 관료들이 사용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치민의 전용차가 있었지만 호치민은 그 차를 한 번도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신발은 평생 패 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고 난후 그에게 남은 것은 집무실의 낡은 책상, 패 타이어로 만든 샌들과 낡은 옷 몇 벌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국민들로 하여금 그를 그토록 신뢰하며 따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호치민이 그러한 마음의 자세로 남쪽 베트남과 미국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펴고 하고 있을 때, 남베트남의 티우 대통령은 호의호식(好衣好食)을 하며 지낸다는 소문은 제가 1971년 월남으로 파병되어 근무하던 주월 한국군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있었습니다. 심지어 수도 사이공에서 수 백리 떨러진 항구 도시 다낭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점심식사를 하러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남베트남 가정은 티우의 지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형제가운데도 한사람은 월맹군이 되고 한 사람은 월남 군인이 되어 싸웠습니다. 월남 군인인 형제가 월맹 형제에게 무기를 몰래 넘겨주었습니다. 

월맹군을 잡고 보면 무기와 양식은 거의가 미국산이었습니다. 그 전쟁은 질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미국은 월남 전쟁에 지상군을 54만 명이나 파견했으며, 전쟁 비용을 288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월남의 티우 대통령이 민주주의 우월성을 얼마나 외쳤겠습니까? 그래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백성들이 그를 지도자로 삼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구호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고, 영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예수쟁이들 말 못하는 사람 없다.”라는 말입니다. 말 잘하는 것이 흠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말은 그럴듯한데,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변화된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식적인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4절~16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참된 성도의 삶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이삭의 삶에 빛이 되는 참 신앙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살펴보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一.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삭이 살고 있던 지역이 극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견디기 힘든 흉년을 피하여 물 많고 양식이 넉넉한 애굽으로 이사를 가려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가지 말고 있던 곳에 머물기를 말씀하신 것이 창세게 26장 2절~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 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그곳에 가면 양식이 많아 육신의 생활에는 유익이 되겠지만 신앙생활에 지장이 되므로 그곳으로 가지 말고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을 잘 섬겨라. 그리하면 내가 때가 되면 너와 네 후손에게 넘치는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이삭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생활은 흉년 까닭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굶주린 식구들의 힘없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삶을 한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의 위치를 굳게 지켰습니다. 육신의 안일보다 영혼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보다 더 귀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믿고 이내하며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에게도 때로는 가난의 시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영혼에 유익이 되는 시험입니다. 성도의 시험에 대해 야고보서 1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하셨습니다. 

이삭이 이렇게 시험을 참고 견딘 보람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26장 12절~14절에“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아.....”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넘치는 축복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흉년이 변하여 풍년이 되었습니다. 가난이 변하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실패가 변하여 성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순종은 이와 같이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현실이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의 위치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성도위에 하나님의 축복은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서울남대문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한정원 권사(97세)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아홉 살 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90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주일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성경을 10장씩 읽어 지금은 신구약 성경을 백번 이상 통독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조실부모(早失父母)한 후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편까지 북한으로 납치되어 갔습니다. 그 후 혼자서 7남매를 키우기 위해 날품팔이, 품앗이, 삯바느질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숱한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어떤 절망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지 않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며 용기와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는 훗날 말하기를“참으로 눈물겨운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분이어서 기도할 때마다 용기를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셨어요. 또 삶에 지쳐 쓰러졌다가도 성경을 읽으면 희망과 감사가 솟아났지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그에게 지금은 7남매 중 3명의 박사와 4명의 박사 사위를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대학교수가 다섯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매주 3일씩 이대 부속병원에 나가 수술용 가제를 접어 주기도하고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해주고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환경을 믿음으로 이기며 성도의 위치를 지켜 순종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二. 이삭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큰 축복을 받았지만 이어서 또 다른 역경이 닥쳐왔습니다. 이삭이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우물을 빼앗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이들과 다투기를 싫어한 이삭은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는데 물이 솟아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또 와서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는데 거기에도 물이 솟아났습니다. 또다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 네 번째 옮겨 우물을 팠는데 거기서도 물이 솟아났습니다. 이때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다투지 않았기에 그곳에 머물며 살게 되었습니다. 

물이 흔한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만 중동 지역은 사막이기에 물이 매우 귀합니다. 오늘날도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영국에 와서 물을 사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물은 흔한데 석유는 나지 않습니다. 중동지역은 기름은 물처럼 흔한데 물은 매우 귀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이삭을 시기하여 해를 끼치는 방법이 우물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씩이나 생명줄과 같은 우물을 빼앗기면서도 이삭은 다투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이것은 이삭에게 싸울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박할만한 구변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이삭은 성품이 온유하여 다투며 싸우지 아니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씩이나 그 귀한 우물을 힘없이 빼앗긴 이삭의 모습은 못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삭을 시기하여 우물을 빼앗았던 블레셋의 추장 아비멜렉이 보았을 때, 이삭은 어디서나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통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비멜렉에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 화해를 요청하는 모습을 창세기 26장 28절~29절에 기록하기를“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삭의 우물을 빼앗으며 기세등등했던 사람이 이제는 두려워하며 해치지 말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온유함의 힘입니다. 온유한 이삭은 시기하던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온유한 이삭은 강한 자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온유한 이삭은 포학한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온유함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의 군병들에게 뺨을 맞으시면서,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면서, 벌거벗기는 수모를 겪으시면서 묵묵히 참고 기도하셨습니다. 참으로 무능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갖 수모를 다 받으시며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의 무릎을 예수님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사람 편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약속하시기를“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12장 18절~21절에 말씀하시기를“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하셨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양보하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더 귀한 것을 얻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양보하는 것은 약한 것 같으나 가장 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유한 자와 함께 하셔서 양보한 것 보다 더 귀한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해치는 악한 사람을 이기도록 하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노자는 상창이라는 스승으로부터 도를 배웠습니다. 어느 날 상창이 늙어 죽게 될 무렵 노자는 스승을 찾아가서“사부님, 사부님께서 세상을 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상창은 얼마 동안 노자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고는“내 이빨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노자가 대답하기를“사부님 혀는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상창은 말하기를“자, 이제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노자는“사부님 알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하고 큰절을 드리고 물러 나왔다고 합니다. 

이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간단명료합니다. 그렇다면 노자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빨처럼 굳고 강하고 날카로워서 입술과 혀를 물어서 피를 내는 것은 부러지고, 깨지고, 빠져나가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권력이나, 무력이나, 돈으로 사람을 물어 상처를 주고, 피를 내는 강하고, 굳고, 날카로운 것은 부러지고 빠져나가서 결국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혀처럼 부드러운 것은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노자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오래 남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37편 11절에도“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고 하습니다. 온유함이 감함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자 편에 계셔서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하트마 간디(M. Gandhi)는 키가 5척 밖에 되지 않는 볼품없는 모습에 무명옷을 입고 생활했지만, 그는 그의 유명한“무저항주의”를 통하여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투옥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암살까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늘 하나 들어보지 않고, 돌 하나 던지지 않고, 3백 년 동안 지배하고 있던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온유한 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듭니다. 새로운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三. 이삭은 예배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이삭의 생활에 대하여 기록하기를“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오랫동안 이방에서 살다가 가나안 땅에 돌아오자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재단을 쌓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먼저 제단 쌓는 일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거할 안식처 장막을 쳤고, 그 다음 우물을 팠습니다.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자기들이 살아갈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은 이렇게 먼저 할 것은 먼저하고, 나중에 할 것은 나중에 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깨달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마태복음 6장 33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먼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슬픈 일이 일어났을 때 무엇을 먼저 하십니까? 성공을 거두었을 때 무엇을 먼저 했습니까? 혹 실패 하였을 때에는 무엇을 먼저 하셨습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만 일방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감사를 올려드리고, 정성을 올려드리고, 찬송을 올려드리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반면 동시에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성령의 생수를 내려주시고,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도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예배를 잘 드린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12장 7절~8절 말씀에“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가는 곳마다“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였습니다. 철저한 예배중심의 삶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이 이것을 본받았습니다. 예배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 정성스러운 예배의 유산을 후손 다윗이 이어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내종 다윗, 내종 다윗 하시는 이름이 성경에 800번 이상 나옵니다. 다윗은 안식일 예배는 물론이고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씩 꼭꼭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게을리 했던 롯은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에서는 축복의 반열에서 멀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사울 왕은 패망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잘 드린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신앙생활의 승리자이며, 신앙생활의 승리자가 곧 인생의 승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가 그 후손에게 물려 준 것 가운데 가장 값진 유산은 개척 정신과 청교도 신앙입니다. 청교도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위해 미국 땅에서 천신만고 끝에 얻은 첫해 수확으로 예배당을 세우고 기뻐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나라가 그들의 후손들이 누리는 미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의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예배를 중심한 정성된 신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예배를 중심한 정성된 신앙은 쓰레기에서 장미꽃을 피우게 합니다. 예배를 중심한 정성된 신앙은 죽음에서 부활하는 창조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까? 예배를 중심한 정성된 신앙유산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언제나 하나님께 제단 쌓는 일을 가장 먼저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드리는 정성어린 예배를 가장 기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순서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삶의 비결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 이삭은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불순종하여 애굽의 풍요로움을 취하기보다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은 백배나 축복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 이삭은 온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 번 씩이나 우물을 빼앗기면서 그는 다투지 아니하는 무저항 비폭력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퍅한 자의 무릎을 이삭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 이삭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장막을 치고, 가족과 가축을 위해 우물을 파는 일도 급했을 터인데 그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가장 먼저 쌓았습니다. 

이 고귀한 참된 하나님의 사람 이삭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이로 인해 이삭이 받아 누렸던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풍성한 축복이 우리 모두의 축복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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