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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복음 (행 13: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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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복음 (행 13:42-52) 
 
성경에는 안디옥이라는 두 도시가 나옵니다. 우리가 지난 몇 주 동안 읽었던 사도행전 13장 전반부까지 나오는 안디옥 지역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 지역은 서로 다른 지역입니다. 지난주까지 읽었던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터키 맨 마지막 시리아와 경계지역에 있는 안디옥이라는 지역으로 헬라시대 때에 로마가 건축한 도시가운데 세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를 가리켜 수리아 안디옥이라고 불렀고, 그곳에서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세계 최초로 선교사로 안수를 받아 세상에 복음을 증언하러 떠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은 그 안디옥이 아니고 성경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안디옥은 지금의 터키의 서쪽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면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수리아 안디옥보다 큰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 섬, 지금의 키프로스 공화국에서 복음을 증언하고 다시 배를 타고 본토로, 대륙으로 들어갑니다. 지금의 터키 땅 서쪽으로 들어가지요. 거기서 몇 개의 도시를 거쳐 도착한 도시가 지금의 본문에 나와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이곳에 도착해서 아마 길거리에서 또는 시장에서 아니면 공회당 같은 곳에서 사도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복음을 증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주 안식일이 되어서 이 두 사람이 회당에 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 세계에 흩어지면 유대인들끼리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하고 가르치는 회당을 만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데요, 가는 곳 마다 꼭 회당을 짓습니다. 이곳 비디시아 안디옥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유대인들이 만든 회당에서 안식일 날 예배를 드리는데 이 두 사람이 유대인이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안식일 날 회당에 갔습니다. 회당장이 사회를 보는데 모세오경 율법서와 그리고 선지서를 다 읽고 난 다음에 바울에게 혹시 이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 있으면 하라. 라고 기회를 줍니다. 오늘 말로 치면 성경봉독 하고 난 다음에 설교를 좀 하겠느냐?  라고 부탁을 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회당장이 바울에게 설교를 할 내용이 있으면 하라고 부탁을 했겠는가!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해서 길거리에서나 집에서나 여러 사람에게 이 복음을 증언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회당장이 그날 회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바울에게 당신이 길거리에서나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그 내용을 오늘 이 회당에 온 사람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겠느냐? 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합니다. 사도바울의 설교가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오는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의 앞 절에 나오는 설교가 사도바울이 한 최초의 장문의 설교가 나옵니다. 우리는 오늘 그 본문을 읽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일어나서 백성들에게 설교한 내용은 커다랗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사, 즉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여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깨닫지 못했다. 급기야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마저 유대인들인 당신들이 죽이지 않았느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 값을 너희들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용서하시는 사랑을 베푸셨고 누구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 얻어 의로워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회를 주셨다. 이것이 설교의 요지였습니다. 아주 평이한 복음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듣고 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오늘 우리가 읽은 42절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42절)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다시 설교를 부탁합니다. 설교를 부탁 받고 난 다음에 예배 마치고 나오는데 아주 유대교에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바울에게 와서 당신을 좀 따를 수 있겠느냐? 놀라운 변화지요! 어떤 사람들은 와서 다음 주에 와서 설교를 다시 해 달라고 이야기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서 바울과 바나바를 뒤따르게 되었더라. 제자가 되겠다는 뜻이지요. 그랬더니 바울이 그 사람들을 향하여 “항상 주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으라” 라고 권면하고 떠났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됐습니다. 1주일 후 다시 오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다음주일에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도시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회당에 왔더라. 고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벌써 1주일 동안에 사도 바울이 길거리에 다니면서 또 다시 복음을 증언했을 것이고, 그 회당에서 들었던 사람들이 은혜가 되니까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데리고 왔겠지요. 그래서 회당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이 회당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시기하고 방해하였더라.” 그래서 사도바울이 시기하고 방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본래는 당신들에게 전파 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의 조상이 당신들이 거절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 복음이 이방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사야서 46편 2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증언합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그러니까 본래 유대인에게 적용이 되어야 될 복음이 유대인들이 거절하게 되자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들어가 이방인이 구원의 빛을 보게 되었다고 전달합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앉아 있었던 많은 이방사람들, 헬라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 이제는 복음이 유대 사람들에게서 이방인인 우리에게로 전달이 되었구나!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니까 사도바울을 반대했던 유대인들이 안 되겠다 싶어서 이 도시의 귀부인들과 관리들을 쑤셔서 바울과 바나바를 이 도시에서 내 쫓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 도시를 떠나면서 발에 있는 먼지를 털며 가면서 이제 이고니온으로 떠나게 되는데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영혼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게 되면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바울이 증언한 이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이 전달되니까 사람들이 금방 변화되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복음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 생명의 복음이 이토록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집에 제가 며칠 전에 호박씨를 심었습니다. 조금 못생기고 둔탁하게 생겼는데 물에 며칠간 담갔다가 이것을 심으면서 속으로 시간이 늦었는데 될까? 심어놓고 며칠 잊었어요. 그랬다가 가 보았더니 손바닥 반만 한 싹이 올라오는 것이었어요. 하나도 죽지 않고서. 제가 그것을 보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는 싹이 나게 되어있다. 

사도바울이 증언했던 이 복음! 생명의 복음입니다. 왜 복음이 생명의 복음일까요? 그것은 이 복음 속에 있는 생명,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 복음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 영혼과 마음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가만히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도바울이 증언한 생명의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2000년 전에만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오늘날 똑같은 일이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복음이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될까요? 우리는 안디옥교회가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생명의 복음의 능력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생명의 복음이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42절)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첫 번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언했더니 복음을 다 듣고 난 다음에 사람의 마음이 감동이 되어서 들었던 사람들이 다 뭐라고 이야기 하냐 하면, 다음 안식일에도 와서 설교를 좀 해 주시오. 

만약에 제가 복음을 전했는데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감동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제가 다음 주일에 올라와서 설교를 해도 여러분은 감동이 없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설교를 해도 여러분이 감동이 오지 않으면 여러분이 그 설교를 듣겠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서 처음으로 설교를 했는데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은혜가 되고 감동이 돼서 다음 주일에도 다시 와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증언한 생명의 복음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이 왜 중요하냐 하면, 우리가 복음을 증언하게 되면, 그 복음 속에는 생명의 씨앗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복음이 전달만 되면, 마음의 영혼에 떨어지기만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이 열려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생명이 있는 씨앗과 그렇지 않은 씨앗의 차이점입니다. 아무리 모양이 좋아도 아무리 멋진 것 같아도 그 속에 생명이 없으면 절대로 자라지 않지만, 둔탁하게 생겨도 못생겼어도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면 그것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거대한 물줄기로 모든 것들이 떠내려갑니다. 통나무도 떠내려가고 집도 떠내려갑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도 작지만 살아있는 생명체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증언한 설교의 내용,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향한 구원의 계획이 있었고 당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고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게 하시고 용서하셨고 의롭게 하셨다. 이것이 복음 아닙니까? 이 복음을 증언하니까 이 복음 속에 담겨있는 생명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달이 되니까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다음주일에도 와서 설교를 해 달라.

우리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언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사도바울이 증언한 설교의 내용을 전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어떤 사람이 자살해서 죽으려고 합니다. 병들었고 사업도 안 되어 세상에서 정말 실패하고 좌절한 실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여러분이 찾아가서 우리 교회에 나오세요. 목사님도 좋습니다. 우리 장로님도 너무너무 좋고 교회 너무 좋고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봤자 그 사람은 감동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여러분들이 그 사람에게 찾아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이 이렇게 실패한 인생을, 좌절과 절망의 인생을 살아가다가 인생을 하직하라고 당신 인생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당신을 향한 구원의 계획과 아름다운 회복의 계획을 갖고 계세요. 예수님은 돌아오세요.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예수님은 당신의 손을 붙들고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전도해보세요. 복음의 주인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생명의 주인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주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증언하는 복음에 생명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을 하면,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그 예수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 때문에 이 생명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생명의 복음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따르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나님의 사람을 따르도록 도와줍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43절)

따른다는 말은 무슨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울과 바나바가 설교를 하고 나오니까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서 사도바울을 따라가겠다. 그 말은 당신의 삶, 당신의 가르침을 내가 이제 행동으로 옮기겠습니다. 이거 아닌가요?

그런데 놀라운 건, 42절에 나오는 유대인과 43절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반응이 다릅니다. 42절에는 사도바울이 설교하고 떠나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아, 좋습니다. 다음주일에도 와서 설교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을 했는데 43절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서 바울을 뒤 따랐더라” 그랬습니다. 42절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아 좋습니다. 은혜가 되네요. 감동이 됩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듣기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다음주일에도 와 주세요.” 이런 사람들은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좋습니다. 은혜가 되네요. 감동이 되네요. 이 사람은 앉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생각으로 정신으로 은혜는 받습니다.


그런데 43절에 나오는 유대인들 가운데 바울을 뒤 따랐던 사람들은 “옳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말로 생각으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은혜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일어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뒤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복음은 우리들의 생각만 바꾸게 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우리들에게 말을 바꾸게 만들고 행동을 바꾸게 만들고 삶의 목표를 바꾸어 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게 만듭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와 함께 있었던 동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버려두고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스스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내 일생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정말로 생명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행동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말로만 은혜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생각으로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 생명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손을 들어 발을 들어 삶의 모든 내용 시간과 재물과 재능과 몸을 드려서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귀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말고 가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손과 발을 통해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삶을 따라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생명의 복음이 전달이 되게 되면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44절)

이 안디옥 도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회당에 모여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복음이 전달되니까 지역 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회당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118년 동안 이 지역을 섬겨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분 잘 아시는 데로 영어 이름이 Neunggok Community Church입니다. Neunggok Presbyterian Church가 아니고, 장로교회가 아니고 공동체교회, 지역교회입니다. 

왜 우리교회가 Community Church로 교회 사역의 방향을 정했을까요? 우리회는 이 지역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지역사회가 영향을 미치고 지역사회에 교회가 영향을 미치는 다시 말해서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지역사회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협력하는 아름다운 선한 영향력을 미칠 때 그 교회는 생명의 복음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 문제점이 많습니다. 저도 교회 지도자로서 너무너무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회개해야 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지도자들에게 문제가 많습니다. 한국 교회가 물량위주로 가고요, 금권 권력 명예에 관심을 갖고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지역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교회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면 그 지역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 교회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하고 있는 많은 사랑 나눔 시리즈 경로대학 또 매월 첫 주 토요일마다 갖는 어르신들을 위한 이미용 서비스, 사랑의 김장나누기, 사랑의 헌혈나누기, 사랑의 건강 검진 또 2013년도가 되면 우리교회 창립 120주년을 맞아 우리교회에서 120명의 환우들에게 개안술이라든가 심장수술을 해 주려고 9월 10월 달에 커다란 바자회를 준비합니다. 몇 천만 원을 모아서 저희들이 120명의 환우들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끊임없이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도와주고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구원의 손길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가 자기들끼리 모여서 복음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이런 일차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때 사람들은 교회로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1주일이 지난 그 다음 주일에 회당에 갔더니 도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더라. 그러면 1주일 동안 이 두 사람은 무엇을 했을까요? 쉬지 않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길거리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언했겠지요. 아마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사도바울과 이 두 사람이 환자들을 고치기도 했겠지요. 다시 말해서 복음의 영향력,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영향력, 하나님의 사랑의 영향력을 도시 사람들에게 전달하니까 도시 사람들이 안식일 날 회당으로 모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제가 우리 지역사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감화 시킬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는,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시기 자와 질투 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45절)

여기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한 내용을 듣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반박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반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복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유대인들 우리만 구원을 받는다. 이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복음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율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복음으로 구원받고 그리고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다. 그러니까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들이 굉장히 민족적이고 제한적이고 독선적인데,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복음의 내용은 우주적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율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방인들이 듣기에 와!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복음의 내용과 저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복음의 내용이 다르거든요. 유대인들의 복음에 의하면, 그들의 율법에 의하면 이방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복음의 내용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당연히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이 증언하는 복음을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마음속에 갖게 되면, 우리는 시기와 질투와 비방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 적인 사람들, 자기만 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복음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아였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이 이제는 유대인에게서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아들을 살리셨던 것입니다. 

편협한 사람들은 누굴까요? 독선적인 사람들은 누굴까요? 남을 비방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은 누굴까요?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생명의 복음이 전달되게 되면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47-48절) 

만약에 여러분의 자녀가 다섯이 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어떤 자녀는 말도 잘 듣고 착하고 부모님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는 말썽 피우고 공부도 안하고 사고 칩니다. 똑같은 자녀인데 어떤 자녀는 기쁨이 되고 어떤 자녀는 부모님에게 짐이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어요?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이 말 잘 듣고 착한 자녀에게 관심을 더 가질 수 있겠지요?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사랑을 갖고 있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 다섯 자녀가 똑같이 부모님에게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유대인 백성이 더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난 다음에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자녀도 구원 못 받아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하나님의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 자기만 구원받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 딛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사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로서 세계 방방곡곡에 복음을 증언하는 이 아름다운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선교의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접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되돌아 갈 때 우리는 온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 정체성을 가질 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구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온 세상 끝까지 증언하라. 우리 교회가 생명의 복음을 가진 자로서 생명의 복음을 경험한 자로서 이 지역을 뛰어넘고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온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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