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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키스탄은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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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서 베나지르 부토의 죽음을 보며

-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1주일 전 파키스탄 최대 야당 인민당(PPP) 지도자인 베나지르 부토가 선거 유세장에서 총탄을 맞고 숨졌다. 범인은 자살폭탄테러로 다른 20여 명의 목숨도 앗아갔다. 이 사건은 단순한 테러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인구 1억 6천만 명이 넘는 파키스탄은 이슬람 대국이다. 부토는 파키스탄은 물론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총리의 자리에 올라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 알리 부토 전 총리와 형제들도 죽임을 당했다. 부토도 두 번이나 총리의 자리에 올랐으나 부패 혐의로 도중하차하여 8년 간 망명생활을 했다. 위기에 처한 무샤라프 정권이 궁여지책으로 부토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작년 10월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토의 귀국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친미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부토는 이슬람의 가치와 기준을 존중하기 보다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며 사회의 선진화와 개혁을 외치는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원래 인도의 한 모퉁이를 차지했던 국가다. 그러다 유일신 알라(Allah)를 믿는 무슬림들이 다신교를 믿는 인도 정부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며 독립을 쟁취해 생성된 국가다. 파키스탄이라는 이름도 ‘퍽’(Pak : 거룩한, 정결한, 순수한)에 ‘스탄’(-stan : 땅)을 붙여 만든 것으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사는 순수하고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국가에 서구화 된 지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토를 반대하는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리에 여성이 서는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의 하디스에 보면 ‘여자에게 무슨 일을 맡기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Those who entrust their affairs to a woman will never know prosperity!)고 말한다. 이는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반상식이다.(Fatimah Mernissy, Women and Islam, Blackwell Publishers, UK,1992, p1)

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한 정치 테러사건으로 보이지만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소유한 나라라는 점이다. 만일 파키스탄이 반미로 돌아서게 된다면 대 테러 전쟁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친미 정책을 펼치면서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부토의 사망 이후 파키스탄 내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과격 테러분자들이 집권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는 파키스탄의 내부 상황이 더욱 심각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무샤라프 대통령은 인기가 하향한 상태다. 치안도 불안하다. 지도자를 잃은 부토 지지 세력들은 매우 분노해 있지만 이를 통제할 대책은 미비하다. 최악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이 가세해 정국을 소란하게 한다면 파키스탄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셋째는 반미벨트가 형성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파키스탄 바로 위에는 탈레반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파키스탄 왼쪽에는 반미의 상징인 이란이, 그 너머에는 이라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파키스탄마저 흔들린다면 반미벨트가 형성될 수 있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겉으로는 미국에 협조하는 척 하면서 테러범들을 색출하거나 소탕하는 데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제 파키스탄은 어디로 가게 될까. 당분간은 극심한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모든 무슬림은 한 형제다.” 이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가장 큰 이슬람 사원에 새겨진 문구다. ‘무슬림은 무슬림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이슬람의 철칙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왜 계속해서 무슬림들끼리 서로 죽이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서로 죽이고 복수하는 곳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밖에 없지 않을까.

이지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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