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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히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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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히 11:24-26)


1869년도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중국 선교사가 쓰러졌습니다. 몸도 지쳤고 마음은 더 지쳤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거룩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중압감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자주 화를 냈고 말도 거칠게 하는 자신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말씀을 읽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신다고 선포할 수 있는가’ 생각에 좌절하며 쓰러졌습니다. 

그때 맥카디 (Macrdy)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신실하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 구절이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예수께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거기에 안식이 있구나! 그동안 헛되이 애써왔구나. 이제 결코 더 이상 애쓰지 않겠다. 예수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믿음은 제 편에서 노력하거나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고 주 안에 거하는 것,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저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지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믿음이 충만해져 중국 대륙 선교의 아버지로 크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가장 불행한 사실은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병중의 하나는 의심의 병입니다. 불화의 가장 큰 원인도 의심으로부터 생깁니다. 삶이 고단한 이유 중의 하나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 동료나 이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금주는 평신도주일입니다. 평신도는 영어로 레이맨(Laymen)입니다. lay는 헬라어 laicos에서 나온 말로서 어원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는 99%의 평신도가 있습니다. 세상에 교회를 알리는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1%의 성직자보다도 역량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합니다. 평신도들이 맡겨진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의 존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평신도의 협력 없이는 교회의 부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믿음으로 사는 평신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야훼의 종’과 같은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그의 다른 이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별명입니다. 왜 성경은 모세를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본문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거절할 줄 알아야

미국 최대 석유회사 사장이 중국에 지사를 세우고 관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관리자의 자격 요건은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중국어를 잘하고,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격 요건을 갖춘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한 사람이 회사를 찾아왔습니다. “당신 회사에서 찾는 적임자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고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그가 얼마를 받고 있습니까?” “침례교 선교사인데 연봉 600달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말했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회사에 온다면 연봉으로 10,000달러, 아니 12,000달러를 주겠소. 아니 15,000달러까지 줄 수 있소.” 회사의 제안이 선교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회사로 찾아와 말했습니다.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장이 말합니다. “우리가 제안한 연봉이 굉장한 금액이 아닙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말했습니다. “그래요. 제안하신 연봉은 엄청난 금액입니다. 하지만 당신네 일이 너무 작습니다. 15,000달러를 받고 중국 사람들에게 석유를 파느니 지금처럼 600달러를 받고 중국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게 훨씬 큰일입니다.”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절할 것을 거절하고, 붙잡을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 즉 왕자라고 불리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친아들처럼 키워졌기에 왕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자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왜 왕자로 불리는 것을 거절했습니까? 부귀영화와 보장된 미래와 당대 최고의 권력의 자리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거절할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내려준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마땅히 우상 앞에 놓였던 음식을 거절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을 자키기 위해서 거절할 것을 분명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선택할 줄 알아야

1982년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기 위하여 고도의 훈련을 해오던 미국의 등반대원들이 네팔에 모였습니다. 현지 셸파(Sherpa)가 그들을 보고 “여러분이 저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다면 저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오셔야 합니다.” 그러자 등반대원들은 “무식한 사람 같으니라고. 우리는 수년간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겪은 전문가들인데, 고작 안내인 주제에 감히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고?” 하고는 셸파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루 휘태커(Lou Whittaker)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저는 정상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라는 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결국 셸파를 믿고 그가 인도하는 길을 선택한 휘태커만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나머지 대원들은 중도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휘태커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른 선택이 그를 영광의 자리에 앉혀 놓은 것입니다. 현지 안내인을 믿고 따르는 선택을 하였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길을 선택한 등반대원들은 다른 길로 갔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선택할 것을 바르게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습니다.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를 보면,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 있는 보물을 선택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선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모세의 가치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중요시 여겼습니까? 수많은 보물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입니까? 모세는 잠시 동안 누리는 부귀영화와 권력의 자리보다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릴 것을 버리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모세는 세상적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잠시 동안 누리는 것보다 영원토록 누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모세처럼 선택할 것을 바로 선택하여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바라볼 줄 알아야

세계적 명문 하버드대학 졸업식에서 중퇴한지 32년 만에 명예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하버드 대학교의 가장 성공한 중퇴자라고 불러주어 행복합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바로 빌 게이츠(Bill Gates)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이며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하나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공한 인물입니다. 빌 게이츠는 1973년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하버드 법대에 입학을 했지만, 1975년 학교를 중퇴합니다. 재학 중에 컴퓨터 분야에 관심을 갖고 3학년 때 마이크로소프트 회사를 창립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사업을 하는데 굳이 법대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생각하였습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법대를 졸업해 성공한 법조인이 되기를 소망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꿈마저 깨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가장 유명한 기업이 되었고 빌 게이츠 또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기부금을 많이 내는 존경 받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이 명예졸업장을 준 것이고 졸업식장에서 연설이 끝나자 5분간 기립박수를 보낸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법조인으로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과감하게 포기하였습니다. 이유는 더 큰 미래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고난을 택한 이유는 상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썩어 없어질 상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련가운데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 는 장차 받게 될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것처럼 고통을 느끼십니까?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이 떠나신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잠시 누릴 권세와 형통보다 영원히 누릴 상급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국가를 전복하려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3천개의 섬 중에 하나인 인구 100만명 밖에 안 되는 티몰섬에서부터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1년 동안 8만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흥 운동의 시작은 라투왈루라는 한 평신도의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신앙생활을 했어도 괜찮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제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후반전의 생애가 남았습니다. 후반전은 멋있게 신앙생활을 하여 멋있게 역사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거절할 것을 거절하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며 바라볼 것을 바라보는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평신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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