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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오셨네 1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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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셨네 1 (행 2:1-4) 
 

❚교회력과 성령강림주일

‘교회력’(敎會曆, church year)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뜻을 풀어보면 “교회에서 사용하는 달력”이라는 뜻입니다. 한 해 동안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를 배열해 놓은 것인데 우리가 잘 아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여기 해당됩니다. 이 세 절기는 기독교의 대표적인 절기이기 때문에 어떤 날인지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력에는 이 세 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현절, 승천절, 성령강림절 등 꽤 많은 절기가 있고 이런 절기들이 모여 한 해 동안의 교회력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운데 성탄절은 매년 12월 25일로 딱 고정되어 있지만 그 외의 절기들은 해마다 나름대로의 날짜 계산법에 의해 날짜가 달라집니다. 일반 달력에서도 음력 양력 따지며 해마다 설날 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등이 해마다 날짜가 다른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 간혹 “목사님,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이 매년 달라져서 헷갈립니다. 우리도 성탄절처럼 딱 날짜를 못 박으면 안 됩니까?” 하고 묻는 분이 계신데 마음대로 바꾸면 큰일 납니다. 설날이 헷갈린다고 날짜를 딱 못 박으면 큰일 나겠지요?

자, 그런데 우리 교회 주보에는 늘 교회력이 소개되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절기가 괜히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그 절기에 맞는 예배와 기념순서를 가지면서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주보 광고의 ‘예배’ 란 1번을 보시면 이렇게 나와 있을 것입니다. “성령강림주일(예고) : 다음 주일(6월 12일)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주님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님이 강림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로 지킵니다.” 자, 이제 성령강림주일이 올해는 언제인지, 그리고 이 성령강림주일이 무엇을 기념하고 예배하는 날인지 아시겠지요? 오늘 여름철을 맞아 주보 사진과 틀이 시원하고 산뜻하게 바뀌었는데 앞으로도 꼭 주보를 통해 이번 주일이 어떤 절기인지 관심 있게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 두 주에 걸쳐 성령강림주일을 기념하며 “성령이 오셨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고 여러분이 귀 기울여 듣는 중에 성령님이 우리 심령을 사로잡고 여러분 마음속에 성령의 뜨겁고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순절 날에...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알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신학교에서도 성령론(聖靈論)에 대해 한 학기, 혹은 그 이상 공부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성령님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그 방대한 성령님에 대한 지식을 다 말씀드릴 수도 없고 말씀드린다고 해서 여러분이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 이렇게 두 주간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성령강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성령강림의 결과가 무엇인지 이 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서론은 다 생략하고 곧바로 본문으로 들어가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2장 1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오순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성령강림사건을 ‘오순절 성령강림’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오순절’은 구약성경에 나온 이스라엘의 3대절기 중 하나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주일과 같은 감사절기입니다. 첫 보리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한 지 일곱 주(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함)가 지난 때로 일곱 주가 지나고 오십 일째가 되는 날이므로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인 것처럼 오순절도 이스라엘의 3대 절기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절기라서 이 때만 되면 온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함께 모여 큰 잔치를 벌이고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곤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이 오순절은 더욱 큰 절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이 너도 나도 오순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순례를 와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바람에 온 예루살렘 성내가 북적거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이 바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오순절로, 올해도 어김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속속 모여들어 예루살렘 성 전체가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이 오순절에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왜 오순절 북적거리는 절기에 한 곳에 모여 있었으며, 그들이 모여 있던 한 곳은 어디였을까요? 그 답은 바로 본문 앞 장인 1장에 나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부활, 그 이후’라는 시리즈 설교의 마지막 시간으로 “재림을 약속하신 주님”이라는 설교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 사도행전 1장에서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무엇을 약속하셨다고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그렇습니다. 1장 5절에서 주님은 며칠 안에 요한이 베푼 물세례가 아닌 성령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성도들은 이 약속을 믿고 1장 13절에 보면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쓰며 이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렸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은 바로 이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은 주님이 남기신 성령강림 약속을 기다리며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강림사건

그런데 사도행전 2장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드디어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바야흐로 성자시대(聖子時代),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친히 말씀하고 가르치고 역사하신 성자시대에 이어 성령이 역사하고 다스리시는 위대한 성령시대(聖靈時代)를 열어가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2절과 3절, 4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때 강림하신 성령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말씀을 통해 앞으로 위대한 성령시대를 열어 가시는, 그리고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성도들과 교회를 통치하시는 성령님에 대해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의 첫 번째 현상은 ‘소리’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는데 어떤 소리로 임하십니까? 2절에 나온 것처럼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오십니다. 그런데 성령과 바람소리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히브리말에 ‘루아흐’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영, 바람, 숨(호흡)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꼭 같은 뜻을 가진 헬라어 낱말은 ‘프뉴마’입니다. 즉 히브리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靈魂)을 바람이나 숨(호흡)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실 때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후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창 2:7). 이 생기란 바로 숨, 호흡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들어 아직 무생물인 인간에게 하나님의 숨, 호흡을 불어넣을 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 사람이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영을 바람으로, 혹은 숨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영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신약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강림사건이 나오지만 이 때 비로소 처음으로 성령이 등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께서는 구약시대부터, 아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그 이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역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2절을 보십시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함께 하며 수면 위에 운행하신 그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 성령님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셨다는 말은 전에도 그러했듯 하나님의 영으로서, 바람처럼 숨소리처럼 임하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은 잔잔한 바람이 아닙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다락방에 임하시되 순식간에, 그리고 아주 강력하게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권능이 가득하신 성령의 임재가 강력하게 제자들과 성도들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두 번째 현상은 ‘불’입니다. 본문 3절을 보세요.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님께서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양으로 다락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임하십니다. 이 불의 혀 같은 모양 역시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구약에서는 여러번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도 떨기나무의 타지 않는 불로서 임재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임재 또한 불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불의 이미지는 어떻습니까? 강력합니다. 뜨겁습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더럽고 오렴된 모든 것을 태워 깨끗하게 합니다. 제물을 불로 태워 드리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성령께서 불의 혀 모양으로 임하심은 성령이 하실 일을 뜻합니다. 성령은 강력한 능력으로 뜨겁게 역사하삽니다. 우리의 죄를 태워 정결하게 하십니다.

성령강림의 세 번째 현상은 ‘방언’입니다. 본문 4절을 보세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렇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의 모양으로 성령님이 임재하시자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자 다른 언어, 다른 나라 말로 방언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남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주를 이루지만 오순절의 방언은 다른 나라 말, 즉 외국어로 한 방언입니다.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로 방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 때 방언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사람들이 교만해져서 바벨탑을 쌓아 하늘까지 이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 바벨탑 건설을 무산시키십니다. 가끔 영어 같은 외국어를 배우다가 힘들면 조상 탓을 하곤 합니다. “그 때 조상들이 바벨탑만 안 쌓았다면 외국어 배우느라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때 혼잡해지고 나누어진 언어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 방언의 역사를 통해 하나가 됩니다. 외국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혼잡해진 언어가 다시 회복됩니다. 이 사건은 죄로 말미암아 언어가 혼잡해졌지만 성령의 강림을 통해 다시 회복되는 새 시대, 즉 성령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성령시대에 살고 있습니다ㅣ

❚성령강림과 성령충만

자, 지금까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성령님이 어떤 모습으로 임재하셨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성령충만’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4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했다고 나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성령충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충만’은 성령의 강림과는 다를까요? 또 사도행전 1장 5절에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세례’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일반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지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이것이 성령강림사건입니다. 그런데 성령강림과 성령세례는 같은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에게 강림하시는데, 언제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순간 우리에게도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 내주(內住)하시게 되는데 이를 성경에서는 ‘성령세례’라고 부릅니다. 이 성령세례는 물세례와 다릅니다. 물로 주는 세례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 모두는 성령이 내게 오시고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세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세례는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은 좀 다릅니다. 성령충만은 이렇게 이해하면 쉽습니다. 성령의 지배와 인도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사로잡고 지배하셔서 내가 성령의 강력한 인도를 받는 상태를 성경은 성령충만이라고 부릅니다. ‘충만’(充滿)이라는 말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가득차야 합니다. “나를 비워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무언가로 가득 차야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안 그러면 공허(空虛)하고 허무(虛無)해서 못 삽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늘 무언가로 가득 차야만 하는데 만일 내가 돈 충만하다면 온통 돈 생각이요 무엇을 해도 돈, 돈만 찾으며 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내가 출세로 충만하다면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혀 권력과 출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돈도, 세상의 무엇도 아닌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 있다면 나는 오로지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되고, 무엇을 해도 성령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인도하심만 받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내가 성령세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늘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강력하게 나를 지배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충만한 상태가 될 때 반드시 그 결과가 실제적인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성령충만해지니 내 삶이 변화되고 내가 변화되니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사회와 직장과 나라와 민족과 주변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다음 주일(성령강림주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 그래서 성령님이 비록 내 안에 계시지만 역사하지 못하고 능력도 나타내지 못 하실 때, 어르신들께는 죄송하지만 마치 ‘뒷방 늙은이’처럼, 시어머니가 예전에는 곳간 열쇠(시어머니의 영향력, 지배력을 의미) 틀어쥐고 온 집안을 휘어잡다가 이제는 늙고 힘없어 곳간 열쇠도 내놓고. 집안에는 계시지만 아무 힘도 없고 영향력도 없어지는 현상처럼 성령이 내 안에 계셔도 나를 지배하지도,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실 때 우리는 성령충만과는 전혀 거리가 먼 영적으로 나태하고 무기력, 무능력,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말씀처럼 우리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바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입니다. 물세례도 꼭 받아야 하지만 물세례만 받고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은혜 받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성령세례를 한 번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면 예수를 믿어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뿐더러 결코 하늘의 능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방언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변화되고, 내 삶이 변화되니 교회가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고,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성령강림주일을 맞으며 나는 성령세례 받은 성도인지, 나아가 성령충만한 삶을 지금 누리고 있는지, 나에게 성령님을 통해 하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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