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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우리는 파수꾼 (겔 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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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수꾼’.com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3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7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겔 33:1-7) 

전쟁은 인간이 만든 가장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겪은 6.25가 이제 61주년을 맞았습니다. 극심한 동족상잔의 상처와, 남과 북 2개로 민족을 분단시킨 고통스런 경험입니다. 이 전쟁으로  유엔군 5만명 내외, 한국군이 13만명,  북한군 52만명 안팍 중공군90만명, 한국의 민간인 99만명이 희생당하였고, 약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무지막지 한 것이 전쟁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육로관광 실시, 개성공단 조성, 경의선 철도 개통 등 남북 간의 화해를 도모하는 고무적인 일들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 원수처럼 대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천안함 피폭사건으로 46명의 젊은 군인들을 또 잃게 된 것과 연평도 포격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한사회도 빈부격차의 확대, 부동산 문제, OECD 국가 중 1위에 올라선 높은 자살율과 이혼율, 세계 최저출산율, 도덕과 가치관의 타락, 공무원들의 높은 부패지수, 등등으로 총체적인 난맥상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敎會)의 각성(覺醒)입니다. 문제는 敎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의 타락을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세상에 의인(義人)이 없는 것이 항상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사회가 병들었거나, 타락했거나, 부정부패로 가득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본래 그런 곳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더러운 세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이 없는 것이 문제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바로 서 있느냐, 아니냐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교회가 민족의 파수꾼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삼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민족의 파수꾼으로서 담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 시간에 6.25전쟁을 상기하면서 민족의 파수꾼으로서의 한국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인 에스겔서는 남유다 패망 전후 시대에 걸쳐 주어진 예언들의 모음집입니다.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을 기점으로 하여 전반부(32장까지)는 선민과 주변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언을 수록했고, 그리고 후반부(33~48장)는 거룩한 종말론적 새 왕국의 이상을 보여주는 회복 관련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33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의한 선민의 회복(回復)을 다루는 후반부의 시작 부분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회복 예언을 전할 도구로 에스겔이라는 사람을 부르셨고, 그를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민족의 파수꾼으로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을 전해야 할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파수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 칼이 임함을 보고 경고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3절)“...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6절)“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파수꾼은 첫째로 자신이 파수(把守) 책임을 맡은 지역을 부지런히 돌아보며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적군을 발견하는 대로 속히 나팔을 불어 경고하는 사람입니다. 즉 파수꾼은 전쟁을 미리 준비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이 없거나, 졸고 있으면 아무런 준비 없이 적의 기습을 받게 되어 그야말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전쟁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전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며 불의를 행하자 이방나라를 사용하셔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누가 일으킨 전쟁이라고요? 하나님이 일으키신 전쟁입니다. 왜 그토록 비참하고 잔인하고 무서운 전쟁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일으키시나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죄(罪)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우상숭배(偶像崇拜)이기 때문입니다. 

유대민족은 제사장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유대민족이 죄와 우상숭배에 빠지면... 온 인류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냥 다 죽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 아닙니까? 백성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이 다른 것이 눈이 팔려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희망이 사라집니다. 이 백성 저 백성 할 것 없이 다 죽는 것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의 제사장민족인 유대나라가 죄와 우상숭배에 빠지니...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죄에서 멀어지도록, 우상이 헛된 것임을 알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유대나라는 온 세상의 제사장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을 일으켜서 전쟁으로 유대나라를 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를 맞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나도 살고 너도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냥 술 취해서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모두 다 죽어야 하겠습니까?  살아야 합니다. 유다는 온 세상의 제사장나라입니다. 유다가 살아야 온 세상이 삽니다.  전쟁은 유대민족의 죄와 우상숭배로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우상숭배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지금 까지 유대민족은 한 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서 바알과 아세라도 같이 섬겼습니다. 이것이 영적 타락이요, 우상숭배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여전히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왜 제사를 드립니까? 하나님 한 분만으로는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조상으로부터도 복을 받고 화를 면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의 주권자이시오, 우리의 生死禍福이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행동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제사를 아직 폐지하지 않는 다른(교회) 교인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우상숭배자입니다.  교회는 주일마다 나오지만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유대민족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 전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같이 세우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유대나라에 전쟁을 일으키시면서 동시에 에스겔이라는 파수꾼을 세우십니다. 파수꾼은 깨어서 경고의 나팔을 부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전쟁이 올 것을 경고하는 나팔입니다. 

파수꾼의 나팔소리를 들으면 有備無患입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고,  아예 전쟁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잠자는 사람, 술 취한 사람들을 깨워서 전쟁을 대비하게 하는 나팔소리입니다. 파수꾼의 나팔소리는 유다가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는 실제적 전쟁에 대한 알림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전쟁의 원인이 된 유다 백성들의 영적 부패에 대한 경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파수꾼의 사명은 다가오는 위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어떤 위험이 다가오는지를 살펴 그것을 알려 공동체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수꾼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재주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파수꾼은 칼을 잘 쓰는 사람도, 다른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닙니다. 파수꾼은 깨어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이 졸다가 적이 침략하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백성들에게 경고하지 못하면 큰 재앙이 닥치며, 그것이 파수꾼의 책임이기 때문에 파수꾼에게는 깨어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6절) 유다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워진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바르게 감당치 않을 경우에 유다 백성의 흘린 피가 에스겔 자신에게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의 파수꾼은 교회안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을 위임받은 목회자이며, 또 세상의 소금과 빛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목회자는 이 시대에 성도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세움을 받은 영적 파수꾼입니다. 목회자는 늘 영적으로 경성하여 교회 성도들에게 경고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목회자가 사람들 듣기에 달콤한 축복과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목회자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배척한다 해도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영적으로 위기가 닥쳐오면 시대를 분변하여 책망과 경고의 말씀까지도 단호하고 분명하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잠든 영혼을 말씀으로 깨우는 시대의 파수꾼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십시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파수꾼이었고, 사무엘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잇는 과도기의 파수꾼이었습니다.  나단은 다윗 시대의 파수꾼이었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와 그 이후의 대표적인 파수꾼이었습니다.  이사야는 남 유다 웃시야 왕 때부터 5대에 걸쳐 60년간 파수꾼의 사명을 수행하였고, 예레미야는 남유다 요시야 왕 때부터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역시 5대에 걸쳐 50년간 파수꾼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20년 이상 파수꾼의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시대마다 파수꾼을 세우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일차적으로 교회의 목회자들입니다. 목회자는 늘 깨어서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경고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있습니다. 
  
이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파수꾼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호 8:9을 보면,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라고 했습니다. 에브라임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에브라임은 누구를 위한 파수꾼이겠습니까? 당연히 이방인들을 위한 파수꾼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파수꾼의 사명이 있었다면 신약성도들에게도 선지자적인 파수꾼의 사명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5;13,1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는 먼저 우리가 깨어있어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여야 합니다.  이 시대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끝은 어떻게 될 것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경고의 나팔, 심판의 나팔을 불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내 등 따뜻하고 내 배 부르게 되는 것, 세속의 부와 명예에만 모든 관심이 있다면... 그 사람은 파수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늘 깨어 자신을 살피고 이웃을 살펴 다가오는 위험을 먼저 발견하고 경고의 나팔을 부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파수꾼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7절)“...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파수꾼의 사명 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는 일입니다. 파수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듣는 일에 몰입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영적 파수꾼으로 부름 받은 에스겔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없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는 파수꾼으로 세움 받은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산모퉁이에서 한 청년이 수첩에 무언가 열심히 적으면서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등산객들이 “등산은 안하고 뭐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 청년을 쳐다보자,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새를 연구하는 논문을 쓰고 있는데요. 산마다 몇 마리의 새가 서식을 하고 있는지 세고 있었습니다. 이 산에는 한 20여 종의 산새가 살고 있네요.” 그러자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별 소리 들리지 않는데 이곳에 20마리의 새가 있다고? 참 신기하네,” 합니다. “저 소리는 천연 기념물인 새이고요. 저 새는 짝을 찾고 있는 새이고요.” 청년은 항상 새소리에 관심을 갖고 노력했기 때문에 모든 새소리를 구분하여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얼마나 들으려고 노력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항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무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긴박한 상황이 오면 음성을 들려 달라고 떼를 씁니다. 왜 내게는 말씀하시지 않느냐고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속 전달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분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설교 말씀을 되새김하여 듣고 또 들어보십시오.  어느 순간 항상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항상 주님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파수꾼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고해야 합니다.

(7절)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합니다. 경고는 죄를 책망하는 것이며,  바로 서게 하는 일입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죄인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을 바로 서게 하는 데 있습니다.  “너는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라.”     

(사21;8)“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파수꾼은 낮에는 늘 망대에 서서 파수하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장소에서 좌우를 살피는 존재입니다. 

선지자에게 맡겨진 영적인 파수꾼의 책임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을 ‘잔소리’라고 싫어합니다. 물론 부모의 말은 ‘잔소리’가 아닙니다. 인생의 경험에서 나온 소중한 충고입니다.  그런데 백보를 양보해서 ‘잔소리’라고 합시다.  만약 아이가 어떤 일을 해도 절대로 잔소리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를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성경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뻔히 보았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내 일도 바쁘다고 그냥 모른 척 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깨우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 중에 빠진 사람들을 깨우쳐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교회의 주요한 기능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엄한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8절)“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악인이 죽는 것은 경고하지 않은 파수꾼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 나쁜 놈 잘 죽었다’ 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악한 사람이 그냥 그대로 죽는 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경고하지 않으면 그 피값이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경고는 죄인을 깨우치는 파수꾼의 중요한 의무이며 이것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엄하게 물으신다는 것을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폴 니그럿이라는 루마니아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목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목사가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1988년 비밀경찰의 엄청난 박해로 그는 손과 왼쪽 발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그들 부부가 없는 시간에 비밀경찰이 집을 습격해 난장판을 만들고 아이들까지 핍박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절망감을 친구에게 얘기했습니다. 그 때 낡은 종이 한 장을 친구가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25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어느 장기수 그리스도인이 쓴 편지였습니다. 공산당은 온갖 고문으로도 그를 꺾지 못하자 결국 처형시켰습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쓴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의 주님, 저는 곧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당신을 보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전도자들, 주의 종들, 선교사들, 찬양대원들, 주님을 섬기는 그들 모두를 하루 빨리 보고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면류관을 쓰고 주님의 발 앞에 면류관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님, 그때 제가 천국의 행렬에 루마니아 죄수복을 입고 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한 죄수로서 주님을 찬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폴 니그럿 목사님은 그 순교자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기도 루마니아의 죄수로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순교를 각오한 그는 성벽 위에 서서 주야로 계속 잠잠치 않는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오늘날 방송 사역을 통해 루마니아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보며 주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을 가리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상기시키도록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은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파수꾼은 쉬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무례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는 결코 쉬실 수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수꾼도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쉬지 말고 기도하며 또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기억하사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 주일 우리는 ‘국가고시 일요일 실시 반대’와 ‘자연공원법’ 통과를 반대하는 서명을 했습니다.  지난 3월 1일 본회의에서 주호영 의원이 발의한 ‘자연공원법 개정안’ 이 의결되었습니다. 자연공원법이 발효되면 사찰의 환경개선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부가 보조하게 됩니다. 개정안으로 불교계가 얻는 직접적인 혜택은 불교 의식 수행, 신도 교화, 불교 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과 이전이 쉬워지게 됩니다. 사찰 환경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이것은 엄연히 종교 편향적인 불교지원법입니다. 우리는 문화재보호라는 명목으로 불교를 지원하는 자연공원법 발효를 반대합니다. 
  
또한 대구 팔공산에 건립 되고 있는 ‘불교테마공원’은 국비와 지방비로 1200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대구시는 관광객 유치와 문화재 보존차원이라는 명목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전시관과 박물관을 만들고 심지어는 템플스테이를 개최할 수 있는 수양관 까지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세금이 불교의 포교활동에 지원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종교편향적인 사업이기에 우리는 불교테마공원 건립지원을 반대합니다.   
  
또한 전국 109곳의 템플스테이(=불교문화 체험코스) 사업에 국비(國費=2010년 185억원)가 지원되는 것이 중단되도록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팔을 불어야 할 때입니다. 불교가 자기 돈으로 하는 것이야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겠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이 땅에 불교를 부흥시켜주는 것은 못하도록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 신천지 종교 재단설립에 무관심한 지역교회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가 최근 경상북도에 '새천지'라는 이름으로 법인 등록을 신청했다. 신청서를 접수한 경상북도는 신천지와 관련한 종교적 갈등과 피해 사실, 그리고 공익적 해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있으면 제출해 달라고 교계 각 단체에 공문을 보냈다.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뒤 법인설립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응하지 않아 법인 등록증이 곧 나올 상황에 부닥쳤다.  경상북도 측은 기독교 연합 기관 측에 공문을 보냈으나 교계는 어떠한 반대 견해도 제출하지 않았다. 

경상북도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우리가 그냥 단순히 서류만 검토할 게 아니고, 사회적으로나 종교 간의 갈등이나 어떤 피해 사례가 없는지, 좀 더 판단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일단 자료 요청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교회 연합 기관도 경상북도에 신천지 법인 설립에 반대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경북기독교총연합회 등 28개 기관에 신천지에 관한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했지만, 마감 시한이 임박한 지금까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유일하게 반대 견해를 전달한 단체는 '신천지대책 과천시 범시민연대' 라는 시민단체 한 곳뿐이다. 경상북도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사실 우리는 (반대 견해가) 좀 많을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아직 기독교 단체에서는 (반대 입증 자료 제출이) 없다"고 말했다.  

신천지는 지난해 말에도 경기도청에 법인 설립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당시 신천지 피해모임 단체가 신천지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인 결과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한기총을 비롯한 교회 기관들은 신천지의 법인 설립 움직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신천지 때문에 전국교회가 손해를 입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정작 신천지의 행보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심각한 해를 끼치고 있는 신천지가 종교 단체로 공식 인정을 받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법인 설립 움직임에 교회가 당장 내 교회 교인 빼가는 것 아니니 관심없다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은 파수꾼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관’의 문제입니다.  교인이 예배에 빠지지 않고 헌금만 잘하면 신천지가 어떻든지, 불교가 어떻든지 관심 없고, 문제 없다 라는 태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복(福)만 받으면 되는 곳이라는 그런 교회관이며  ‘교회는 파수꾼이 아니다’ 는 교회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늘 깨어서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고 사람들의 죄를 깨우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이나라 이 민족이 번영하려면 교회가 깨어 있어서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 한 번  6.25의 비극이 오느냐 안 오느냐는 누구에게 달려있나요?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회에게 있습니다. 유비무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너무 너무 하고 싶어도 남한이 준비하고 있으면... 전쟁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올태면 와보라’ 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런 상대에게 전쟁을 일으키는 바보는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6.25때에도 수많은 징조(徵兆)가 있었다고 합니다. 휴전선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난 그 큰 전쟁이 어떻게 비밀로 아무도 모르게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6.25전에도 종종 국지적인 전쟁이 있었고, 대규모의 군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북한 병사들이 ‘야 너희들 25일 날 한 번 보자’ 이런 소리도 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군인들이 ‘자식들 일요일 날 또 시끄럽게 하려나 보다’ 했답니다. 아무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6.25때 수많은 군인들이 외출, 외박, 휴가 중이었습니다. 잠자고 있었을 때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천안함 이 어뢰에 맞아 침몰하고, 연평도가 폭격을 맞은 것이 징조(徵兆)라고 생각합니다. 권투할 때 처음부터 죽을 것처럼 전력으로 덤비지 않고 처음에는 잽을 툭툭 던집니다. 간을 보는 것이지요. 북한이 남한에게 간을 본 것입니다. 잽을 던져서 우리를 몇 번 툭툭 쳤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남한 사람들 지금 긴장하고 있습니까? 아니오. 긴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각 교회라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우리도 거의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큰 교통사고 나서 좀 많이 죽은  어떤 사고처럼 생각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천암함폭침이 이병박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소리도 공공연히 나옵니다. 무슨 미친 사람들이 하는 말인지, 마약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신문과 T.V.는 여전히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폭격으로는 대한민국의 잠을 깨우지 못할 만 큼 깊이 잠에 취해있습니다. 

대한민국교회도 잠에 빠져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성도여러분, 세상이 자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치인들이 여전히 부패하고, 공무원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온갖 선정적이고 음란한 행동이 인터넷을 가득 채우며, 오직 돈 버는 것을 위해 온갖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은 파수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 안 지으면 뭐 할게 있나요?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이 자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저는 또 다른, 더 큰 북한의 도발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한국교회가 여전히 잠자고 있다면.. 반드시 또 다른 도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파수꾼이 잠자고 있는데 어떤 바보가 또 침략을 안 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오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는 파수꾼의 사명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죄와 우상숭배의 위험을 경고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새롭게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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