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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모스의 애가 (암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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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의 애가 (암 5:1-15)

아모스는 세 편의 설교를 했는데 3장이 첫 번째 설교, 4장이 두 번째 설교, 5-6장이 세 번째 설교입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아모스 5장은 아모스의 애가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부고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고장을 읽어보도록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볼 때 사설은 안 읽어도 부고란은 열심히 읽습니다. 부고란을 보면 그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떤 후손들을 남기고 죽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부고장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고란에는 당사자가 죽은 다음에 글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고장을 먼저 읽어보게 하신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유명한 작가 찰스 디킨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소설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럴」이 있는데 거기에 스크루지라는 구두쇠 영감이 나옵니다. 스크루지 영감은 성탄전야에 자기와 함께 일하다 7년 전에 죽은 동료 말리의 유령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스크루지 영감은 말리와 함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미래의 자기 무덤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자기 무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수군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본 스크루지 영감은 크게 변화되어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는 인정 많은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부고장을 미리 보는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Ⅰ. 1-3절은 아모스의 애가(lamentation)이다 

남왕국 유다가 멸망했을 때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애가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너무 길어서 성경 한 권이 되었는데 이것을 우리는 예레미야 애가라고 부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는 아모스가 애가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짧아서 한 장밖에 안 됩니다. 아모스 5장이 바로 아모스가 지은 애가입니다. 애가는 장례식 때 부르는 노래인데 조가 혹은 장송곡이라고도 합니다. 
 
아모스 5장의 핵심은 2절입니다.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암 5:2) 호세아 선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처녀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음녀 아니면 창기라고 했었는데 아모스 선지자는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혹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시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기록한 것은 죽을 나이도 안 되었는데 시집도 한번 못 가보고 죽었다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애달프겠습니까? 

만약 100세가 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면 사람들마다 장례식에 와서 호상이라며 그리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꽃다운 나이 20대에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엎드러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엎드러졌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비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 나이에 시집도 못 가고 비참하게 살해되었다면 그 장례식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또한 남의 땅에서 간호장교로 전쟁하다 죽었다면 전몰장병 유가족회 혹은 국가에서 보상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자기 땅에서 죽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외적의 침략을 받아 자기 땅에서 죽었는데 곱게 죽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 시신을 자기 땅에 던진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에서는 시신을 옮길 때 양쪽에 세 명씩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운반합니다. 영구차에 실을 때도 나사로 다 조여서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서 운반하는데 처녀 이스라엘은 짐짝처럼 던져졌다는 것입니다.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멸망했기에 장송곡을 부를 지경이 되었느냐? 아모스 5장 3절을 보니까 군대의 90%가 죽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암 5:3) 천 명의 군대 중 백 명만 남고 백 명의 군대에서 열 명만 남았으니 90%가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아모스가 이런 애가를 부르던 시대는 경제가 가장 번영했고 평안했던 여로보암 2세 시대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만 보게 되면 아모스가 부르는 애가는 광신자의 쓸데없는 걱정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2세가 죽고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이 왕들을 지나면서 불과 40년 뒤에 오늘 부르는 애가는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이 됩니다. 주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은 군대의 90%가 죽고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현재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이 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Ⅱ. 4-6절은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향한 초청(invitation)이다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그 나라의 속한 개인들이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이미 확정이 되어 있습니다. 아모스 5장 2절에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는 과거시제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완료태라고 하는데 미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과거시제를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행하시기로 작정하셨고 더 이상 변경이 불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예언적인 완료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기로 완전히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망하게 하려고 작정하신 나라에 살 길을 말씀하시느냐? 나라가 망해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살 길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썩고 부패하여 모든 사람들이 잘못 사는 것 같아도 그 가운데 언제나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습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암 5:15) 

멸망 중에도 살아남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요셉의 남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 보면 아합과 이세벨이 통치하던 가장 악한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하나님을 찾고 선을 행하는 진실한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4)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암 5:6) 여호와를 찾으면 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주 간단한 약속이지만 대단히 위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아도 진실하게 찾아야 됩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암 5:5)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다고 벧엘로 가고 길갈로 가는데 전부 우상숭배의 본거지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 절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이런 거짓 종교행위를 하면서 하나님을 찾는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거짓된 종교는 모두 파괴되고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때는 진실해야 됩니다. 인간이 만든 우상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가 아무리 많아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종교는 모두 거짓된 종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보십니다. 인간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하고 용서받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주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죽어서 행복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90세에 돌아가셔도 10년은 더 살아야 되는데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가시느냐고 말합니다. 세상이 참 좋긴 좋은가 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무리 화려하고 번창해도 불로 멸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아무리 태풍이 불고 비가 많이 쏟아져도 물로는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아시대에 물로 한번 망하고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세워주셔서 다시는 물로 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불로 망할 것입니다. 불에 의해 하늘도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도 다 녹아져서 이 세상은 망할 것이라고 베드로후서 3장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불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원자폭탄이나 핵전쟁일 수도 있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백두산, 한라산, 후지산이 폭발하여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망할 세상에서도 참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살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거짓된 종교를 믿고 따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살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만이 유일한 참된 종교입니다. 

Ⅲ. 7-12절은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explanation)하시는 것이다 

왜 이스라엘은 군대의 90%가 죽고 망하게 되었느냐? 아모스 5장 7-12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공법(justice)과 정의(righteousness)가 부패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암 5:7) 공법과 정의는 비슷한 단어인데 공법은 외적인 면이 강조되었고 정의는 공법을 행하는 인간의 내적인 면이 강조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실은 같습니다.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면 그 사회에는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게 됩니다. 사회 정의가 무너져서 악인들이 상 받고 잘 먹고 잘 사는데 의인들은 벌 받고 고생하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에 억울함과 씁쓸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회의 정의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여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을 보실 때는 우리의 죄가 무엇인가를 보시지만 사회를 보실 때는 사회 정의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정의가 억압받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아모스 5장을 보면 사법부와 국세청의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중한 책임을 물으신다고 했습니다.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암 5:10) 성문은 오늘날로 말하면 법정입니다. 

그런데 성문에서 정직하게 말하는 자들을 재판장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재판장들이 정직하고 옳은 사람들은 벌을 주고 불의한 사람들은 무죄 선고하는 것입니다. 사법부의 공의가 훼손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심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암 5:11) 

세금을 많이 내야 될 사람에게 당신 세금이 일억 원인데 천만 원만 내고 나에게 천만 원만 달라고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금 낼 사람은 일억 원 낼 것을 이천만 원만 내면 되니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세금을 많이 내야 될 사람에게는 뇌물을 받아 조금 받고 월급 받아 생활하는 근로자들에게는 이것저것 붙여서 정확하게 모두 받아낸다는 것입니다. 약자를 착취하는 과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법부와 국세청의 불의가 왜 일어나느냐? 그것은 모두 그들의 물질적인 이득 추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뇌물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암 5:12) 

사법부든 국세청이든 뇌물을 받게 되면 공의가 무너지게 됩니다.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자연석을 가지고 그대로 집을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돌을 다듬을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뇌물을 받은 사람은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서 집을 아주 견고하고 멋있게 짓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집을 짓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거기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뇌물 받은 돈으로 포도원을 만들고 거봉 포도를 잔뜩 심어서 내년이면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너는 그 포도를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공의가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그 사회를 심판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 사회 속에서 공의롭게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요즘은 학교 선생님들도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혼내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고 인터넷으로 선생님이 때리는 것을 현장 중개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말썽부리는 학생이 있어도 건드려봐야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제가 잠깐 뉴스를 보니까 지하철에서 어떤 할머니 옆에서 젊은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예쁘다고 아이를 만지니까 남의 아이를 왜 만지느냐고 하면서 페트병으로 할머니를 때렸다는 것입니다. 공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의가 무너지면 사회가 망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시당할 분이 아니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데 그것은 자신의 벌을 쌓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냐?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암 5:8) 

얼마나 멋있습니까? 하나님을 소개하는데 묘성부터 나옵니다. 이 묘성이라는 것은 영어로 “Pleiades”인데 희랍신화에 보면 두 어깨로 지구를 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라는 신이 있습니다. 이 아틀라스에게 딸 일곱 명이 있었는데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 개로 이루어진 별이 황소자리이고 묘성입니다. 그리고 삼성은 오리온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별자리도 만드시고 천체를 움직이시고 바닷물이 증발되어 수증기가 되고 다시 땅으로 떨어지게 하시며 어둠을 밝히시고 밝은 것을 어둡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공의를 파괴하는 사회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공의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공의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Ⅳ. 13-15절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불의로부터 분리(separation)될 것을 명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은 공의가 무너진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불의로부터 분리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암 5:13) 

중국에 난세가 되면 현자들이 모두 잠잠하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이런 글들을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악한 때일수록 지혜자라면 아모스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더 외쳐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잠잠하라고 하실까요? 

여기서 잠잠하라는 말씀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의미보다 불의에 동참하지 말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남들이 다 뇌물을 받아도 나는 받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남들은 다 술을 먹어도 나는 먹지 않겠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분리되고 불의에 가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모서 5장 14-15절을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요셉의 남은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암 5:14-15)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공의를 세우라는 세 가지를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고 나라는 멸망해도 너희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멸망할 세상 가운데 사는 성도들을 향해서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격리를 명하신 것이 아니라 분리를 명하신 것입니다. 격리는 지리적으로 떨어지는 것인데 세상이 더럽고 불의하다고 해서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 가끔 스트레스 해소한다고 민정시찰을 핑계로 가발 쓰고 돌아다니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무슨 분리입니까? 

분리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다르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이 불의해도 세상과는 다르게 살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뇌물만 받지 않아도 얼마나 밝은 사회가 되겠습니까? 싱가포르의 이광요라는 수상은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공무원의 월급을 많이 주고 뇌물을 받게 되면 엄중히 처벌하였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는 뇌물을 주고 받는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깨끗해지고 공의가 세워지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 7:1)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엡 4: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7)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세상이 아무리 불의하고 어둡더라도 불의에 가담하지 말고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벨은 1888년 프랑스 신문 부고란에 자신이 죽었다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형이 죽었는데 기자가 잘못 알고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가 부고란에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라고 썼습니다. 그것을 본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노벨상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죽은 뒤 부고란에 “악을 사랑하고 선을 미워하며 이생에서도 악하게 산 악인이요 죽어서도 지옥에 떨어질 멸망 받은 악인이다.”라고 쓰여 있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후회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장송곡을 미리 보여주신 이유는 미리 보고 스크루지 영감이나 노벨처럼 변화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긍휼을 얻으리라. 공의를 따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어둔 세상에서도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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