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샘솟는 기쁨 (사 41:18-20, 요 16:20-22)

첨부 1


샘솟는 기쁨 (사 41:18-20, 요 16:20-22)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이라는 환상소설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시골, 초원 한쪽에 남아있는 불과 몇 천 평밖에 안 되는 숲 한가운데 작은 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백 년 전 터그 가족은 우연히 이 숲을 지나다가 샘물을 마시게 됩니다. 그 샘물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비한 샘물입니다. 이 샘물을 마신 후에 가슴에 총을 쏴도 죽을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된 터그 가족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삽니다. 

그러다 샘물이 있던 곳에서 위니 포스터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비밀을 다 말해줍니다. 이들은 영원한 삶을 살면서 겪는 문제에 동참하면서 끊임없는 갈등을 함께 경험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샘물을 소재로 삶과 죽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 밖에서의 영원이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요즘같이 상수시설이 되기 이전의 샘, 샘물은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샘이 없으면 사람이 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물이 귀한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땅을 파도 물을 얻지 못하여 물 한 동이를 얻기 위하여 종일 걸어야 하는 지구촌의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을 알고 있고, 소유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14에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이 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아시스는 사막의 담수가 계속 공급되는 곳에서 형성되는 비옥한 일대의 토지입니다. 지하수로 샘, 우물, 찬정을 이루는 곳이 사막입니다. 리비아 사막에는 800 제곱킬로미터 이상 되는 오아시스가 있고, 사하라사막의 전인구의 3분의 2가 오아시스에 살고 있는 정착민입니다. 오아시스에는 물과 태양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물이 잘 자랍니다. 사막을 지나다보면 오아시스에는 푸른 나무들이 아주 무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아시스에서는 주로 대추야자가 많이 생산되어 주식량원이 되고 오아시스에는 마을이 형성됩니다. 
  
사막에 있는 대부분의 수도원들이나 집들이 오아시스에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가 있던 성마카리우스 수도원도 오아시스에 세워져 있습니다. 사막이지만 물이 있으니까 나무가 자랍니다. 나무에 새가 있습니다. 수도원 안의 정원에도 아주 예쁜 꽃들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물만 있으면 나무는 자라고 생명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팔레스타인은 물이 귀한 지역입니다. 물이 얼마나 귀하고, 샘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늘 염려하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것을 의식주(衣食住)라고 하지만 그들은 의식주가 아니라 식음의(食飮衣)입니다.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면 기적입니다.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온 사람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그래서 귀한 것이고, 야곱은 물 때문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부족끼리 전쟁을 하다가 적의 우물을 돌로 매워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마을을 정복했다는 뜻입니다. 유목민들은 물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푸른 풀이 자라는 초지와 솟아나는 샘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인생의 오아시스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인생에서 샘솟는 희열과 감동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랑이란 눈물의 씨앗이기도 하고, 사랑은 뼈를 찌르는 아픔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외에 어떤 것도 오아시스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오히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오아시스이다”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이유 없이 기쁜, 그러나 분명한 이유가 있는 기쁨이 샘솟는 삶을 우리는 삽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매일 오아시스 같은 샘솟는 기쁨이 늘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골짜기에 샘이 나게 하십니다. 

이사야 41:18 상반절에는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고 합니다. 여러분, 건천이라고 아시지요? 우리말로 ‘마른 내’라고 하는데 비가 오면 물이 좀 흐르지만 비가 그치면 금방 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시내가 건천입니다. 팔레스타인은 강이 흐르고 물이 있다가 며칠만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르는 강이 많습니다. 마른 샘들이 많아 샘은 샘인데 물을 내지 못하는 샘이 있습니다. 
  
‘헐벗은 산’은 문자적 뜻은 ‘메마른 고지’인데 토질이 척박하여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숭이산을 말합니다. 골짜기, 광야, 마른 땅은 모두 물이 없는 메마른 곳을 의미합니다. 물이 없이 메마르다는 것은 삶의 고통이 가장 심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물이 없는 메마른 곳이 풍부한 곳으로 변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의 마른 생활에서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생명의 물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생명의 물을 공급받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항상 상상해 보세요. 오랜 가뭄 끝에 양철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지 아시지요? 가장 듣기 좋은 소리 중의 하나가 비 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부족은 비가 올 때까지 끝나지 않고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러니까 기우제 지낼 때마다 비가 올 수밖에 없지요. 하늘이 비를 내리셔야 하고, 하나님이 주셔야 우리가 얻습니다. 생명 물이신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그리스도인은 마르지 않는 물을 마십니다. 쉼 없이 솟는 샘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합니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그리스도 때문에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삶이 우리의 삶입니다. 
  
사라의 몸종으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임신한 하갈이 사라의 구박에 못 이겨 자기의 고향인 애급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다가 지쳐 죽을 것 같은 하갈을 보시고 하나님은 하갈의 걸음을 멈추게 하십니다. 창세기 16:7에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나 생명을 보전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수르광야에 이르렀지만 물을 얻지 못했니다. 그러나 간신히 물을 얻었지만 마라의 쓴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무 가지를 던지게 하셨고, 나무 가지를 던지니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쓴물로 가득합니다. 나무 가지를 던지면 단물이 됩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나무라고 합니다. 아무리 쓴물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생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꿉니다. 쓴 인생을 단 인생으로 바꿉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진을 친 곳이 ‘엘림’이라는 곳입니다. 엘림은 큰 나무라는 뜻입니다. 엘림은 무성한 나무에 둘러싸인 오아시스지대입니다. 이 지역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었습니다. 메마른 광야 여정에서 시원한 물, 그늘진 쉼터를 얻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십니다. 메마른 골짜기에서 샘이 나게 하십니다. 이미 물이 말라 마른 내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인생길이 끝도 없는 광야 같은 세상살이지만 하나님은 인생을 촉촉이 적셔주십니다. 메마름도 갈증도 해소하시기 위하여 샘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공로로 메마른 인생에 샘물이 흐릅니다. 더 이상 우리 인생이 쓴 샘이 아니라 단 샘입니다. 더 이상 쓴물을 마시고 살지 않고 단물을 마시고 삽니다. 다윗은 그의 시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고통과 괴로움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 골짜기가 기쁨의 샘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폴로 문화권은 해를 중심한 문화를 말합니다. 아폴로 문화권은 조기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아침밥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다이애나 문화권은 달을 중심한 문화를 말합니다. 다이아나 문화권은 야행성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저녁밥을 강조합니다. 우리나라는 아폴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아침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기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래로 우리 전승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둥근 달이 비친 샘물을 아침 정안수라 했습니다. 그 물을 깃는 것을 용란 혹은 용안을 깃는다고 했습니다. 샘에 둥글게 비친 달을 퍼온다는 의미입니다. 

아침에 깨끗한 샘물을 길러서 빌면 영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달이 샘에 비친 모양을 보고 용의 알을 깃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는 물을 길어야 영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속 속설에는 정월 대보름 이른 새벽 해뜨기 전에 샘물을 떠 마시고 그 물로 얼굴을 씻으면 한 해 동안 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침 샘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정신입니다. 
  
제가 아는 미국의 어느 집사님은 참 신앙도 좋고, 머리도 좋고 인품도 좋은데 하는 일마다 잘 안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없고 계속 미국에 살 수도 없고,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하던 사업이 신통치 않고 정리가 안 되어 친구를 도와주려고 그 식당을 맡았다가 얼마나 식당이 잘 되는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은 메마른 골짜기에 빠진 하나님을 사람에게 샘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게 하십니다.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성령께서 권고하심 죄 씻으라 하시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샘은 그리스도의 옆구리입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한번으로 영원한 피의 구원을 받게 하셨고, 매일매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 보혈의 피와 물에 진정한 구원과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둘째,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이사야 41:18 하반절에는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불가능한지 아십니까? 샘 근원이면 이미 마른 땅이 아닙니다.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른 땅에 샘이 나는 것, 바위에서 물이 솟는 것, 맑은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는 것, 손바닥만 한 구름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있습니다. 전혀 뜻하지 아니한 상황에서 뜻밖에 입는 재난을 이르는 말입니다. 실제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있을까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발생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고 하네요. 그러나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카메론 톰슨은 “하나님은 불가능한 곳에서 시작하시며 불가능한 바로 그곳에서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른 땅에서 샘물이 흐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마른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지하고 미신이 지배하던 나라입니다. 60년 전만 하더라도 희망이 싹이 보이지 않던 나라이고, 전쟁고아가 득실거리던 나라이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이고, 구제품으로 살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경제규모가 8위이고, 하계 동계 올림픽을 전부 치르게 된 나라이고,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다음 달에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온갖 경기를 다 치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많은 인재들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고, 세계 65억 명 중에 한 사람 밖에 할 수 없는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 사람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메마른 땅이 아니라 풍족한 땅입니다. 하나님이 세계의 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싹 마른 머리로 믿던 많은 교인들이 은혜를 받아 풍성한 샘처럼 은혜의 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15:18-19에는 삼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손이 심히 목말라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목이 말라 죽겠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레히에서 우묵한 곳을 터트리시고 물이 나와 삼손이 정신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습니다. 그 이름은 부르짖은 자의 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는 하나님께서 샘물로 채우십니다. 목마른 자가 샘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마음의 풍족한 샘이 되게 하십니다. 더 이상 목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목이 말라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러 해 전에 여리고에 있는 엘리사의 샘이라고 알려진 곳에 가 보았습니다. 아주 맑은 물이 제법 많이 콸콸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갔을 때에 여리고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여리고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좋지 못하여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하여 샘의 근원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샘물이 맑아지고 열매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샘물 근원에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익지 않던 열매가 익고 없던 것이 있게 됩니다. 맑은 샘물이 좋은 열매를 냅니다. 
  
팔레스타인은 물이 귀한 지방입니다. 언제나 물 문제는 심각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항상 염려해야 합니다. 야곱의 우물은 하나님의 은혜의 물이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양떼에게도 물은 필수적입니다. 양들에게는 쉴만한 물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흔한 나라가 되어 물을 물 쓰 듯합니다. 그래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지 못하는 물 좋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입니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으로 분류되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이 풍족한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가장 치열한 전쟁은 물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맑은 샘물은 모든 사람의 욕구이고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은총입니다. 
  
샘은 생명입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의 샘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샘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4:2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가 생명의 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 교회가 생명의 샘입니다.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청각장애인이 듣고, 손 마른 자가 손을 펴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 모든 것이 다 마른 땅에 샘이 솟는 일입니다. 눈을 떠도 보지 못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무기력하고, 복음을 받았다고 하지만 전도하지 못하는 마른 땅 같은 우리의 영혼이 샘물의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7:17에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물이십니다 그분께서 구원받은 하늘의 백성을 샘으로 인도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예레미야 2:13에 보면 생수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께로 인도되어 살게 됩니다. 그 곳에 가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샘이 있고 그 샘물을 마시며 살게 될 것입니다. 
  
재미있는 북한 말을 한 번 들어보세요. 원피스를 나리옷이라고 합니다. 샴푸를 머리비누라고 합니다. 도넛을 가락지빵이라고 합니다. 노크를 손기척이라고 합니다. 보조개를 오목샘이라고 합니다. 참 귀여운 말이지요? 오목샘이란 오목한데 사랑과 정이 소복이 쌓여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샘은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샘은 생명이며, 은혜이며 기쁨입니다. 

  
결론 
  
그리스신화에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까마귀는 아폴로가 키우던 은빛 날개를 가진 새입니다. 아폴로가 까마귀에게 샘물을 떠오라고 멀리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가는 도중 까마귀가 무화과를 발견하여 무화과 익기를 숲 속 나뭇잎 뒤에서 기다립니다. 무화과가 다 익어 따먹고 샘물을 떠간 까마귀는 늦은 핑계를 물뱀에게 돌렸습니다. 화가 난 아폴로는 까마귀와 물뱀과 물 컵을 하늘로 던졌습니다. 그래서 밤하늘 까마귀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샘물은 아폴로 신도 좋은 걸 아나 봐요? 샘물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고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저수지는 물이 말라 우리를 채워주지 못할 수 있지만 샘물은 항상 가득 차게 합니다. 
  
수가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얻었습니다. 퍼도 퍼도  끝이 없는 샘물이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르지 않는 샘이 그분에게 있습니다. ‘용비어천가’ 제2장에는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믈은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라고 합니다. 샘이 깊어 마르지 않는 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물이 꼭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그 샘에 우리의 죄를 씻고 구원받은 감격과 은혜가 늘 충만하여 우리에게 샘솟는 기쁨이 늘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