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안드레의 신앙 향기 (요 1:35-42)

첨부 1


안드레의 신앙 향기 (요 1:35-42)

어느 교회에서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열정적으로 하셨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은 한 성도가 목사님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목사님, 오늘 설교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뒤이어 예배당에서 나오시는 분들과도 인사를 해야 하는데 잡은 손을 놓지 않으니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분의 귀에 ‘성도님, 오늘 설교가 은혜스러웠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함께 귀한 말씀을 나누는 이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베드로를 중심으로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의 형제 안드레를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은 안드레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를 ‘프로토클레토스’라고 불렀습니다. ‘첫 번째로 불려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그에게 붙여줬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면서도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만 대부분이 베드로의 형제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드레 입장에서 보면 매우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그가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제자로 부름을 받게 했는데 자신은 베드로의 형제로만 기억되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했던 세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변화산에서 기도할 때,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도 세 사람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안드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제자 그룹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안드레가 서운해서 불만을 토로 할만도 한데 성경 어디에도 안드레의 불만과 불평은 없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섬기는 기본 정신을 첫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에게서 배운 것같습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나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세례 요한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헤롯 왕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백성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의 뒤에 오시는 분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언제든지 그 분이 오시면 자신을 떠나 그 분을 좇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오셨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선폰한 것입니다. 안드레가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안드레가 스승인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좇은 것은 변절한 것이 아니라 스승인 세례 요한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했던 그 말을 예수님을 따를 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기 위해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겸손함과 순종으로 예수님께서 맘껏 사역하실 수 있도록 그림자처럼 뒤에서 도운 제자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나서기를 좋아하고 이름 내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조금 봉사하고 알아달라고 합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좋아합니다. 직분을 좋아하고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감투 쓰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이미 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게 나서지 않고 묵묵히 주님을 위해 충성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알아주지 않지만 하늘의 상이 있습니다. 

묵묵히 뒷자리에서 예수님을 섬긴 안드레를 우리는 본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베드로처럼 열정을 가지고 앞장 서 섬기는 일꾼들도 필요하지만 안드레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섬기는 일꾼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이 안드레의 신앙과 그의 섬김의 자세를 모델로 삼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안드레의 사역과 함께 그의 이름이 나오는 곳은 세 번입니다. 그 세 번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안드레와 사역에 임하는 자세와 성품이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신한 후에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안드레가 가장 먼저 한 일이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안드레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가족 전도자입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안드레의 역할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는데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제자 중에 계산이 빠른 빌립이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 있어야 하고 만약 돈이 있다 하더라고 어디에서 그 많은 음식을 살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그때 안드레가 예수님께 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어린 아이의 손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두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앉게 하라고 말씀하시고는 어린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복 기도를 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주며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는데 5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안드레의 역할입니다. 커다란 문제 앞에 놓였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과 연결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에 헬라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을 찾아갔습니다. 빌립은 이방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는 일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상의를 했습니다. 안드레는 머뭇거림이 없이 헬라인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갔습니다. 안드레는 복음 안에서 이방인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에게도 이방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천하 보다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안드레는 이방인들을 예수님께 연결시켰습니다. 그는 복음 안에서 세상을 향해 폐쇄적인 사람이 아니라 개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의 첫 번째 스승인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수님을 연결시키는 중보자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헌신적인 섬김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시키는 중보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안드레는 그 분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은 중보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대중을 상대로 언변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한 번 설교를 하면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대단한 능력입니다. 아마 대중 집회의 원조가 베드로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안드레는 대중 앞에 서서 설교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한 번에 많은 회중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드레는 ‘개인 전도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열려진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안드레는 삶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그들에게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예수님께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안드레는 생활 속에서의 전도자였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전도자는 대중 집회를 통한 전도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대부분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장단점이 다 노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개인 전도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알파를 하면서 게스트로 초대 받은 남자 분이 계셨습니다. 성령의 날을 1박 2일 동안 진행하는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알파에 오게 된 동기를 말씀하는데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이 하는 말이 ‘목사님, 사실은 제 동생과 제수씨가 교회를 열심히 다닙니다. 그런데 제 동생과 제수씨가 저에게 교회를 가지고 말했으면 아마 따귀를 후려 쳤을 겁니다. 

그런데 000 형님이 교회를 한 번 와 보라고 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제가 그 분을 몇 년 동안 지켜 보면서 아! 교회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 저런 분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형님이 교회를 가자는 말에 아무 말을 못하고 참석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동생과 제수씨가 어머니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도 그렇게는 안 한다는 말입니다. 2주 전에 송도로 이사를 한 미진, 미현 두 자매가 우리 교회에 출석한 이유도 우리 교회 집사님 내외분의 모습을 보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예쁘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9시에 인천까지 출근하여야 하기에 1부 예배를 드리고 출근했습니다. 남자 친구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 자매의 소원이 있는데 부모님이 함께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곳곳에서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본된 모습을 보이는 여러분들이 있어서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안드레의 신실한 생활의 믿음을 본받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묵묵히 교회를 섬기며 삶의 자리에 어려운 이웃들과 영적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키는 안드레와 같은 삶을 살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