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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들링(moodling, 쉼)의 축복 (막 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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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들링(moodling, 쉼)의 축복 (막 6:30-34)

여름철에 조심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음식입니다. 덥다고 무조건 찬 것만 선호하면 배탈이 납니다. 그리고 음식이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식중독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김밥 같은 것, 단체 음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물입니다. 여름에는 대부분 물을 찾아갑니다. 바다, 아니면 강가나 개울을 찾아갑니다. 해마다 익사 사고가 발생합니다. 하천이나 강, 저수지 등에서 익사사고의 약 90%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더위로 피서객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물놀이를 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가 교통안전입니다. 들뜬 기분으로, 그리고 피곤한 몸으로 운전하다 보면 주위가 산만해지고 피곤하여 졸음운전 등으로 사고가 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안전운전해야 합니다. 자신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장애를 입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누구든 조심해야 할 내용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적 나태함입니다. 즉 영적 게으름입니다. 더위는 사람을 나태하게 만듭니다. 

여름에는 일상생활에서 다소 느슨하게 만드는 휴가철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나태함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육일동안 일하고 하루는 쉬도록 창조해놓으셨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 쉬는 동안 영적으로는 충족시키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제정해 놓으신 주일만 잘 지켜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유기체입니다. 이 말은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상태는 곧바로 정신적 상태와 육체적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육체적 상태는 또한 정신적 상태와 영적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건강한 영성이 건강한 육체를 만듭니다. 미국에서 나온 통계에 의하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은 평균 수명이 길고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직업별 평균수명은 성직자가 제일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기도와 영성생활이 건강에 가장 좋은 약이라는 것으로 신앙생활이 영약(靈藥)인 셈입니다.

신앙생활은 비단 영적인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전인적으로 관계된 활동입니다. 이것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모든 영역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가정의학에 관한 한 논문에서, 신앙적 헌신과 육체적, 정신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90% 이상이 신앙적 헌신이 정신건강에 임상적으로 유익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은 자살, 약물남용, 청소년 비행, 이혼 및 결혼생활 만족도, 심리적 스트레스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 국민 전체의 교회 출석률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국민 전체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상관관계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하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보다 자살률이 네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적인 건강은 정신건강과 육체건강과 상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상 그동안 한국의 노동자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대 2000년도 노동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이 독일 1,480시간, 영국 1,720시간, 일본 1,842시간, 미국이 1,979시간이었지만 한국은 무려 2,474시간이나 되었습니다. 주당 평균 취업시간도 선진국이 대개 40시간 전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0.4시간이나 되었습니다. 

이런 억척스런 근로의 삶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이루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건강한 삶을 생각할 여유가 생겨서 결국 주 5일 근로를 하게 되었고 내년부터 모든 학교도 주 5일제 수업으로 전환됩니다. 
주5일 근무하는 이 제도는 1950년대 전후에 미국, 캐나다와 유럽에서 전반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경제적인 여러 파장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가 여기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로서, 그리고 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로서 말씀중심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면에서 본다면 주 5일 근로하고 이틀을 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위배됩니다. 출애굽기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매일 새벽에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26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하루 분량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만약에 더 거두어 저장해 놓아도 이튿날이 되면 그것이 다 썩어서 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일 째 되는 날에는 안식일에 먹을 것까지 이틀 분을 거두라고 하셨고 그렇게 거둔 것은 썩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20장10-11절 말씀,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날은 구별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오히려 쉬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23장12절 말씀에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숨을 돌리라’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보면,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하루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날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명기16장8절 말씀,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그것은 결국 인본주의로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으로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이 됨으로 인해 결국 망하는 길로 치닫는 것이 됩니다. 더 잘 살고 더 나은 삶을 살 것 같으나 점차적으로 어려운 형편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주 5일제가 영적인 면에서,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5일제 시행이 프랑스가 1936년, 미국이 1938년, 독일이 1967년, 우리는 2002년부터 부분적으로 시행해 왔으니 이제는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주5일제 근무는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빨리 시행했습니다. 이들 나라는 역시 기독교가 먼저 들어가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나라들이 결코 기독교 국가라고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기독교 신자율이 급격이 줄어들고 무교이거나 타종교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진행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진행될까요? 말씀에서 벗어난 신앙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일성수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잠시 육체적인 휴식이 좋을 것 같으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지 아이하고는 참 된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괜찮을지 모른다고 착각 할 수 없지만 사단이 은혜의 줄, 기도의 줄, 축복의 중을 끓어 놓습니다. 결국 영적으로 치명적인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휴가라 할지라도 영적인 쉼까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함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일예배는 나의 여적인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입니다. 

미국을 망국의 위기에서 구해 낸 해양산업의 왕이며, 필라델비아의 재벌인 스티븐 지라드(1750-1831)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지라드씨는 직원들에게 내일 모두 출근하여 선박에서 짐을 내리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한 직원이 “저는 내일 주일은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에 도저히 출근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해고를 당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늙은 모친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다른 직장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장으로 있는 지라드씨의 친구가 은행지점 오픈에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스티븐 지라드는 전에 자신이 해고시켰던 그 직원을 추천하여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함부로 자신의 신념과 뜻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좋은 지점장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지라드의 친구는 이 사람을 은행 새 지점장으로 발탁하여 전보발령 하였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변치 않는 신앙 절개를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귀히 쓰시고 구원 역사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하지 못한 것 가지고 목사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일은 근본적으로 ‘주님의 날’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구별 된 성일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예배를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일은 자신을 위한 일상을 벗어나 오직 구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드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을 위한 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한 날로 정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살아보면 우리가 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쉼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시고 쉼의 시간을 적절하게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고 주일을 통해 우리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축복의 날인 줄 믿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위로부터 허락해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루의 노동에서 쉼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밤을 주셨습니다. 밤에는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4시 영업하는 편의점들을 보면 아르바이트생을 쓰지만 그 사람도 쉬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병원이나 산업체도 쉬어서는 안되는 곳들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런 성경적 쉼을 제공해 주신 것을 삶으로 모델이 되는 것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물론 예수님도 공생애를 3년 동안 하셨고 그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이 가지는 휴가처럼 쉬신 적은 없습니다. 매일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분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몰려들어서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막 3:20). 

또 틈만 나면 한적한 곳으로 가 기도하시고(눅 5:16), 때로는 산에 올라 밤새워 기도하시고(눅 6:12),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혀 휴식을 취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예수님도 틈틈이 쉬셨습니다. 언제 쉬셨나요? 틈틈이 쉬셨습니다. 따로 시간 내어 쉬진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시간에도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30절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 말씀만 보면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앞의 7-13절 내용에 이어지는 말씀인데 그 사이에 ‘세례 요한의 죽음의 사건’이 삽입되었습니다. 7-13절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신 후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내어보내시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나가서 회개를 선포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귀신도 쫓아내고 병자도 고치는 치유의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사역보고를 하는 장면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고한 것을 “낱낱이 고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사역보고를 자세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역보고를 다 들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31절입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배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없으니까 더 바빴습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려하여 갈릴리 주변에 흩어져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치유와 축귀,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가르치는 사역을 했기 때문에 제자들의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함을 아시고 조용한 곳에 가서 쉬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사역도 힘들었지만 지금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여전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쉬어라. 안식을 누리도록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쉬어라’고 한 단어를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아나파우사스데’라는 단어입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라는 의미와 함께 ‘새로운 원기를 회복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안식’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누구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내일을 위해, 다음을 위해서 쉼이 필요합니다. 쉴 때 쉬어주지 못하면 결국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생명까지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적어도 일상에서 벗어나 안식할 수 있는 주일을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별로 쉬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말씀도 보면 한적한 곳에 가서 제자들과 쉬시려고 배를 타고 건너가고자 했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이 가는 곳을 알고는 이들이 예수님과 제자들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33절). 그래서 예수님은 쉬시지도 못하고 목자 없는 양 같은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3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5장1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하여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소문을 내지 말라고 했는데도 입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예수님의 소문이 더욱 퍼져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한 곳에 물러가셔서 기도하였다고 5: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바쁘게 사셨습니다. 사역으로만 바쁘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말하면 신경써야 할 일이 얼마나 많으셨는지 모릅니다. 안식일 논쟁으로 시비를 거는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까? 가시는 곳마다 따라붙어서 걸고 넘어졌습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러면 사람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릅니다. 심방하고 환우 위해 기도해드리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덜 피곤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 신경을 쓰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이 갑자기 앞에 나타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않거나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경험을 해보신적이 있습니까? ‘무슨 행동을 할까. 무슨 말을 할까?’등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나가서 일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는 일 자체는 숙련된 기술로 생각만 잘하면 기쁨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면 육체적으로 다소 피곤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나 윗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잘못되면 그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쉼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를 갖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미국의 신학자 ‘레오날드 스위트’는 건강하려고 하면 ‘무들링을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바쁘게만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무들링’이라고 했습니다. 무들링은 딱히 어느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묘사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호숫가 나무 그늘 아래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지켜 보는 것. 더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각이 제 마음대로 흘러 다니게 하는 것. 풍요로운 가을밤 보름달 아래서 그물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것. 말 등에 올라 않아 들판을 천천히 가로질러 가는 것.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 그냥 거니는 것..” 등은 ‘무들링’이란 단어의 뜻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무들링은 내 힘으로 하던 것을 내려놓고, 물살의 흐름에 맡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환경을 벗은 채 조용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것입니다. 무들링이 묵상과도 비슷하지만 묵상은 아닙니다. 묵상은 묵상의 어떤 소재가 있지만 무들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에서 조용히 있는 것입니다. 물살을 거슬러, 어떤 힘을 사용하여 가다가 모든 힘을 뺀 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무들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들링은 목욕탕에서, 길에서, 책상 앞에서, 자동차 안에서 등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잔잔한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나를 비움으로 나를 채우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하신 것은 바로 ‘무들링’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걷기도 하셨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무들링’ 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잠자는 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서 2:23절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금심과 걱정하는 사람은 밤에도 그 마음이 쉬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것은 헛되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쉼이 나태함으로 나타나면 안 됩니다. 영적 게으름을 나타난다면 쉼이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일에 얽매여 있습니다. 일이 많아서 편히 쉴 틈이 없습니다. 다들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피로가 누적되어 과로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신앙인 중에는 일을 멈추고 쉬는 것을 게으름 피우거나 빈둥거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짓는 쉼이 아닌 이상 쉬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여름 휴가철,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을 찾아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풀 꽃 바람 햇빛을 접하고, 우리 영혼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도 들어보고, 천천히 숲 속을 걸으며 느림의 철학을 실천해 보고,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면서 무들링 (느슨한 휴식시간)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으며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일화입니다. 

자고새 한 마리와 놀고 있던 폴리캅을 향해, 지나가던 사람이 “성자라는 분이 어떻게 새와 놀며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폴리캅은 빙그레 웃으며,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메어두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만물이 그러하듯 인간에게도 적절한 쉼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자연을 관찰할수록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을 관찰할 때, 먼저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잎사귀 하나에서도 질서와 대칭, 다양성과 복잡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경험한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55:12)라는 말씀 그대로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꽃과 나무들, 땅에 기어 다니는 많은 벌레와 곤충들을 친구로 삼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저술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심지어 모래 알 하나까지 사랑하라. 
나뭇잎을 사랑하고, 모든 빛을 사랑하고,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라. 
모든 것을 사랑하라. 모든 것을 사랑하면 만물에 드러난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산책하면서 기도를 즐긴다면 ‘거룩한 배회’라고 말합니다. 나무와 꽃들, 벌레와 곤충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삽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처럼 바쁜 와중에서도 무들링 생활을  즐기셨습니다.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이 충분히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나님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즉 인간은 미완성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입니다. (김지평 작사) 그러므로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메시아 콤플렉스’를 벗어나야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서두르시지 않습니다. God isn't in hurry.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기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기고 예수님처럼 무들링 생활을 누릴 줄 아는 행복한 영성의 사람이 되어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살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소리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휴가철에 쉼의 여유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다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휴가가 진정한 휴가가 될 것입니다. 휴가가 참된 쉼이 될 때에 내일이 아름답고 행복해집니다. 쉼은 내일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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