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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과 불신앙의 현장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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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불신앙의 현장 (마 14:22-33)

갑작스러운 물난리로 서울의 가장 잘사는 동네인 우면동이 산사태가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산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아시아나 화물기가 바다에 추락을 했다고 합니다. 한 주간을 지나는 동안에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끝임이 없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인간의 실존은 마치 바다에 풍랑 중에 떠있는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5병2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배를 타고 떠나는 제자들이 흥분이 가시기 전에 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려 가시고 제자들만 가다가 심한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제자들의 편에서는 큰 문제를 만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보통 때는 알지 못합니다. 풍랑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과는 차이가 납니다. 주님을 그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시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언제 불신앙이 드러나고 언제 신앙이 드러나는 가를 상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과 불신앙의 현장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풍랑을 만난 이유(22-24)

예수님은 기도하시려 산으로 가시고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이 닥쳐왔습니다. 역풍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역풍은 거스려 부는 바람입니다. 배가 가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오니까 파도가 치고 심해져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교회나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순풍만 불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스리는 역풍이 불어 올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역풍이 불어 올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업에 역풍을 만나기도 하고 건강에 역풍이 만나기도 합니다. 교회에도 역풍을 만나느냐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의 공격은 끊임 없고 세상의 공격도 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기 30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바람을 이용하여 비거라는 날으는 기계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했다는 역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비행기는 공기 부양을 통하여 하늘을 날으는 것입니다. 바람을 이용하여 무거운 동체가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역풍을 만나도 믿음으로 대처하면 능히 성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금의 순도는 뜨꺼운 용광로에 몇번 들어가는냐 따라 결정됩니다. 역

풍이라는 고난은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괴로운 것이지만 진짜 신자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기도 한 것입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대하33:12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였다고 하였으며 

약1:3절은 인내하는 자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만치 지옥을 체험하는 것과 같은 아픔이지만 진짜 성도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거스리는 역풍이 불어 풍랑을 만났다면 원망과 불평하기 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역풍을 만난 이유는 주님이 없이 배를 타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15장5절에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도 더 많이, 말씀도 더 많이 예배도 더 열심히 하여야 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제자들의 태도(25-28)

역풍을 만나 풍랑으로 밤새도록 고난을 당하는 두려움과 지쳐있었습니다. 사경은 3-6시인데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왜 밝은 날에 오시지 않고 밤 사경이 그 어려운 밤이 다 지나고 오십니까? 제자들이 풍랑을 어떻게 해결하는 가를 보시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역풍을 만나 지치고 두려워 떨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차라리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으셨습니까? 절망에 빠져있던 제자들이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없는 소리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자연계를 지배하고 물위라도 걸어서 오실 분으로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기는 하지만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걸어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인간에 두려움이 옵니까? 불신앙이며 죄 때문입니다. 언재나 불신앙의 자리는 두려움과 원망의 자리입니다. 

아3: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왜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무장을 하느냐 하면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총이나 칼로 해결하는 것인 아닙니다. 두려움을 해결하는 길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길입니다. 인생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르심(29-33)

두려워 떨던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께 주시어든 나를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오라! 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모험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부르심을 받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모세도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갔으며 본문의 배드로도 용기 있게 바다로 믿고 뛰어 내린 것입니다. 

이란사람 세 사람이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여 받아 들였습니다. 왜 그런고하면 그들이 목사안수를 받았는데 이란에 가면 사형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개종을 한 것입니다. 

신앙은 모험입니다. 형편에 따라서 좋으면 가고 나쁘면 물러서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뛰어 내리는 것 이것이 믿음의 자리입니다. 오라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바다를 내려갔습니다. 그가 바다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시선이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으로 출렁이는 바다는 쳐다보는 순간에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각자지 풍랑을 만나지만 오직 주만 바라보면 기적같은 역사로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이지만 출렁이는 세상을 바라보면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 올리시면서 믿음이 적은자야 왜 의심하느냐하셨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믿음이 적은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는 세상의 소리 세상의 조건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어 그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소리에 거절하지 못합니다. 풍랑을 일으키는 바람을 그치게 하는 역사는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드디어 배에 타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주님을 모시므로 풍랑을 해결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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