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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 (벧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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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준비하는 삶 (벧전 4:7-11) 

핸드폰하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핀란드의 노키아를 꼽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애플의 아이폰은 순식간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아이폰은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사의 CEO인 ‘스티브 잡스’ 는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문에서 자신이 17세 때 읽었던 자신의 생애에 큰 전환점을 이루게 된 경구를 소개합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글에 감동을 받고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아니오!'” 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투병하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넓게는 세계적인 종말의 날과 좁게는 인생의 마지막 날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마지막 날은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다가오는 마지막 날을 의식하며 ‘오늘’ 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한국 교회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이 하나님의 곁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은 아니지만 평소 존경하는 목사님으로 하목사님은 오로지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으시며 불꽃과도 같이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7번의 대수술을 받고 한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으면서도 오로지 복음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가시다가 짧은 생애를 마치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신 것입니다.

하목사님의 간증 가운데 이러한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역과 주어진 시간이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 자신의 연약함과 건강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정말 그 말씀처럼 사시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원하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지금 내가 드리는 찬양, 내가 드리는 기도, 내가 드리는 헌신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간절함을 안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가까이 왔으니’ 라는 원어적인 뜻은 ‘임박한 상황’ 을 표현하는 것으로 베드로는 박해를 받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낙심치 말고 소망을 가질 것을 말하면서 어렵고 급할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 개념과는 달라서 벧후3:8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날과 그 시를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표현은 종말에 대한 자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늘 깨어 있으라’ 는 의미입니다. 즉 도적같이 임할 그 날을 대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한때 한국교회에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나타나서 생업을 전폐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광신적으로 재림에 매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적 종말론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종말론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마틴 루터는 성경적인 종말론에 대해 ‘믿는 사람은 내일 주님께서 오실 것처럼 깨어 근신하고, 동시에 천년 뒤에 오실 것처럼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야 한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시간에 대하여, 나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분명한 종말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믿는자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찰스 스탠리’ 목사는 ‘기도 응답의 비밀’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때 저는 기도를 시작하기만 하면 잠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잠을 적게 자고 공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으면서, 이상하게 기도만 하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1년을 씨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문제의 원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탄은 제가 기도하는 것보다 설교하거나 공부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갖가지 교묘한 공격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라는 영적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며 사탄를 대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역시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적 전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로 무릎을 꿇을 때 시작된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알고 있기에 필사적으로 우리의 기도 생활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크게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도 우리는 무릎을 꿇을 때이며, 가장 선한 결과를 얻을 때도 역시 무릎을 꿇을 때임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다시 7절 말씀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정신을 차리고’ 라는 원어적인 뜻은 ‘올바른 마음과 침착한 마음’ 을 의미합니다. 
‘근신하여’ 는 환경에 따라 요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조심성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다시말해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무절제한 생활을 버리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바쁘기 때문에 우리는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가운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더욱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간과의 관계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쁘고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더욱 힘써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시간에 기도하지 않으면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당한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서로 기도하므로 사탄이 두려워 벌벌 떠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마지막 때에 믿음의 성도들에게 권면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코리 텐 붐’ 여사는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나치감옥에 수용되어 모진 고문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가족을 다 잃고 전쟁이 끝난 뒤에 독일의 지방과 교회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간증집회 때마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참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간증 집회 후 성도들과 악수하며 나오는 그녀 앞에 자신에게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하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질렀던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간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때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안돼요, 저 사람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 사랑하라는 음성을 내게 주셨습니다. 못한다고 계속 머리를 흔들어도 “사랑하라, 이건 명령이다!” 하셨습니다.
그녀는 할 수없이 마음에는 없었지만 하나님 명령이니 그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안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는 말씀에서 ‘무엇보다도’ 는 어떠한 일보다 사랑을 먼저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열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사랑하라는 것은 힘껏 노력하여 전심전력 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사랑은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가지고 행동을 수반하는 아가페적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만이 허다한 죄를 덮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이를수록 마지못해 하는 사랑이 아니라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미움을 두고는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이미 그 마음이 지옥입니다.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원하기는 마지막 때가 더욱 가까울수록 이와 같은 사랑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계적 대형할인점 중에 하나인 ‘월마트’ 는 특별한 경영방침으로 미국전역에서 매출액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지금도 월마트는 특별한 경영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 발자국의 원칙’ 이라고 합니다.

열 발자국의 원칙은 직원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열 발자국 안에 들어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책임지고 환영하고, 책임지고 친절하고, 책임지고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월마트는 이 일을 위해 인원을 더 채용하였는데 이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책임 있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열 발자국의 원칙 때문에 월마트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편리함을 느끼며, 호감을 갖고 다시 찾게 되니 매출액이 꾸준히 늘어난 것처럼 이것은 우리 신앙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열 발자국의 원칙을 가진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는 이미 열 발자국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서로 친절히 대하고 그래서 교회는 부흥하고 세상 사람들은 초대교인들을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러분 ‘은사의 의미’ 는 무엇입니까? 
은사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로 자기의 이익과 자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한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감정이 들어가면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를 앞두고 아직까지 주님 앞에 무엇 하나 봉사한 것 없이 지내 오지는 않으셨습니까?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할 때에 서로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만이 교회의 유익과 덕을 추구하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주님을 위해 봉사하십시오, 충성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마지막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의미있게 하고 집중하게 합니다.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긴지 5년이 되어 담임 목회를 위해 기도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에서 검진을 받던 중 암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현실에 교회를 사임하고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충북 음성의 한 교회에서 주일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던 목사님이 유학을 떠나면서 친구인 이 분을 후임으로 추천한 것입니다. 
교인들은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막상 나타난 목사님의 모습에 모두가 크게 실망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초라한 몰골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안수집사 한 분이 이 목사님을 후임목사님으로 모시자는 의견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비록 암으로 투병중이라 하더라도 담임목사님으로 모시고 이런 설교를 한 주밖에 더 듣지 못한다 해도 우리 교회로서는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목사님을 후임으로 모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청빙을 받은 목사님은 암으로 투병중인 자신을 담임목사로 받아주는 교회가 있다니, 비록 자신이 담임을 맡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은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금식기도는 자신이 후임목사로 부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너무 그 마음이 감사해서 그 교회에 정말 훌륭한 목회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암이 치유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자신의 암이 치유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그 교회의 청빙을 받아 목회를 잘 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목사님의 한 번의 설교가 도대체 얼마나 은혜스러웠기에 모든 교인이 암으로 투병중인 목사님을 후임으로 청빙하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목사님이 자신에게 있어 마지막 설교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강단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무슨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적당히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마지막 힘을 다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주일밖에 없다고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만일 하루의 시간밖에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가족들과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다투시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겠습니까? 
자신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불평하며 원망하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가시겠습니까?

정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부탁한 일들을 소홀히 한 것을 후회하며 남은 시간 조금이라도 더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이제 곧 주님 앞에 서야 함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하나같이 어리석어서 죽음이 가까워야 비로써 소중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마지막을 늘 의식하며 소중한 것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물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원하기는 이 시대에 더욱 깨어 기도하며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서로 봉사하며 충성하므로 정말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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