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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인의 회복탄력성(3) : 인간관계 능력 (행 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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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회복탄력성(3) : 인간관계 능력 (행 18:1-11)

제가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을 맞이하여 3주에 걸쳐 신앙인의 회복탄력성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년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말고 일어서서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쉽게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패하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렵다고 가정을 포기하지 말고 자녀교육을 포기하지 말고 사명을 접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난 주 신문을 보니까 꼴찌를 무시하는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대에 들어간 스타 강사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인강의 '1타 강사(가르치는 과목에서 수강생 숫자가 1위인 강사)'라고 합니다. 서울대에 7억 기부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강의 수익 모두 모아서 가난한 학생을 무료로 가르치는 학교 설립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38명 중 34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못하는 자신을 무시하는 학교가 싫어 자퇴했지만 "공부를 못해서 죽고 싶었지만, 죽을 바에야 죽을 만큼 공부에 매달려보자"하여 2001년 전국 모의고사에서 70등의 성적을 받았답니다. 

온갖 여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힘이 회복탄력성이라고 있는 사람입니다. 회복탄력성 지수(RQ)가 높을수록 역경을 잘 이겨냅니다. 이 회복탄력성이 높으려면 자기 조절능력(감정조절력 충동 통제력 원인분석력), 대인관계 능력(소통능력 공감능력 자아확장력), 긍정성(자아 낙관성 생활만족도 감사하기)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앙인의 회복탄력성 세 번째로 대인관계 능력에 대하여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대체로 뛰어난 대인관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평소에 대인관계를 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잘 사귀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일수록 회복탄력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내게 닥친 불행한 일을 극복하게 해 주는 큰 자산입니다.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에 의하면 대인관계 능력을 높이려면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가 소통능력이 높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모든 관계의 기본은 대화이기 때문에 소통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소통하지 못하면 인간관계는 불행해지고 불행한 인간관계는 자살, 우울증,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빈다. 명예나 권력, 돈 모두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소통능력이 없으면 그것을 얻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든 정치하는 사람이든 소통이 좋아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경영, 인간관계 관리, 멘토링, 리더십 향상의 핵심 내용이 소통능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감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심리나 감정 상태를 잘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야 대인관계 능력도 뛰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아확장력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를 자아확장력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공유하는 능력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성공이 이 대인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도 법칙이 있을까?’를 연구하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1937년부터 지난 72년간 성인의 발달과 성장에 관한 최장기 전향적 종단 연구로 진행했답니다. 결론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고,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하였답니다. 

美브리검영대 연구진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50% 낮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줄리안 홀트-룬스타드 교수는 "대인관계가 부족한 것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 피는 것과 같다"며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수천년 동안 인류는 대인관계를 교육의 핵심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에는 학교에서 대인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 배우지 않습니다. 언어 수리 관련 과목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지도자를 만들기 보다는 임금 노동자를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능지수(IQ)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요즈음은 성공하려면 지능지수보다 감성지수(EQ)가 높아야 한다고 부모들이 EQ 과외까지 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NQ가 성공의 요인이자 행복의 열쇠라고 말합니다. Network Quotient(쿼션트)의 약자입니다. 네트워크 지수, 관계지수, 공존지수라고 합니다. 

"이제는 무엇을 아느냐(Know What), 어떻게 아느냐(Know how)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Know Who)가 더욱 중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의 사람들과 확실한 인간관계를 맺어두는 것이 힘이란 말입니다. 존 팀펄리는 "내 꿈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루는 길은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NQ가 얼마나 됩니까? 

일본 크리에이트사의 설립자인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40세부터 시작하라〉라는 책에서 인간관계를 친밀도가 낮은 순서부터 "기타, 팬, 아는 사람, 친구, 믿는 사람" 등 5종류로 나누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전화로 무리한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친구와 '매우 가까워 비밀도 털어놓는 사이'인 믿는 사람 정도를 자기 인맥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조건 아는 사람만 많다고 해서 NQ가 높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질문을 몇 개 해 볼터이까 우리 성도님들은 NQ가 어느 정도되는가 계산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적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집안의 결혼식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 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사람 숫자에 1만원을 곱하시기 바랍니다. 

2) 서로 알고 지내며 부탁하면 대응해서 들어주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사람 숫자에 10만원을 곱하시기 바랍니다.

3) 세 번 연속해서 부탁해도 들어줄 친구는 몇이나 됩니까? 사람 숫자에 1백만원을 곱하시기 바랍니다.
 
4) 열광적인 '신도' 수준으로 내가 무슨 부탁을 해도 대가없이 들어주며 집문서라도 가져올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그 숫자에 1억원을 곱하시기 바랍니다. 

총 합을 해서 5억 이상인 분이 있습니까? 발을 두 번 굴러 주시기 바랍니다. 
총 합이 3억 이상인 분이 있습니까? 발을 한 번 굴러 주시기 바랍니다.
총 합이 천만원 이하인 분이 있습니까? 한 숨 크게 한 번 쉬어 주시기 바랍니다. 인적자산이 너무 빈약하여 가난합니다. 

21세기는 아는 것이 힘도 되지만 관계가 힘입니다. 하비 맥케이는 그의 책 ‘ 목마르기 전에 우물을 파라 ’에서 ‘지금까지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을 딱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바로 인간관계를 만들고 그것을 풍성하게 하는 능력이다. 기본을 모르고 성공을 바라지 말라. 성공은 인맥에서 시작된다.’라고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인간관계(대인관계)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준비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함께 사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1-4)
요즈음 말로 하면 대인관계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만남에 적극성을 가지고 인맥 관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맥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기차표, 항공권 예매에서부터 결혼, 취업, 승진, 병원입원, 장례에 이르기까지 ‘아는 사람’의 위력은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인맥’을 잘 형성해 놓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쉽고도 빠르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심지어는 종교 분야까지 인맥에 의해 지배 구조가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맥이라고 합니다. 

'부자와 만나는 법'을 인기리에 강의하고 있는 지니세일즈는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라’라는 책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자와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부자의 길에 이르는 방법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점은 최우선으로 부자와의 인맥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드 카로사가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삶이란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입니다. 부모와 만나고, 친구와 만나고, 이웃, 애인, 배우자, 스승, 제자 등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런데 이 만남을 정리해 보면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경쟁자로 만나는 경우 ②이용자로 만나는 경우 ③무관자로 만나는 경우 ④동반자 동역자로 만나는 경우입니다. 우리 인생을 참으로 가치있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만남은 어떤 만남이겠습니까? 일평생 동역자로 만남입니다. 이런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경쟁자만 있다고 이용자만 있다고 무관자만 있다고 포기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일평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는 무수히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그의 사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 일 하다가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을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였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질그릇 같지만 보배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풀려나 데살로니가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또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밤에 베뢰아로 도망을 나왔습니다. 베뢰아에서도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아덴으로 갔으나 아덴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다시 홀로 고린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업으로 말하면 실패에 실패입니다. 실패의 연속입니다. 대학으로 말하면 3수 4주를 하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고 아덴에서 열심히 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로 갔습니다. 고린도는 관능적이고 방탕한 도시입니다. 항구가 있어 상업이 발달된 도시이고 성을 관장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를 받들어 섬기는 도시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하지만 지극히 타락한 도시입니다. 아프로 디테 신전 수만 명의 여사제들이 밤에는 시내에 내려와 창기 노릇을 하는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외로이 홀로 들어섰습니다. 다 끝나 버렸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나 홀로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정도 사람들에게 시달리며는 모두가 나를 반대하고 나를 이용하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중에 5년 만에 우리 교인으로 등록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웃지도 않고 인사해도 제대로 받지도 않습니다. 5년 만에 등록하고 심방을 하였습니다. 한 때 열심히 교회에 봉사했던 분입니다. 여전도 회장도 하셨습니다. 남편이 서울대를 나와 잘 나가시는 분이었답니다. 그런데 이혼의 아픔으로 대인관계를 꺼리는 것입니다. 대인관계를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탄력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도 세상에 참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내려가 무엇을 합니까?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엄청한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유대인하면 지긋지긋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 아굴라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2절에 보십시오. 이제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같은 족속 유대인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이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브리스길라 남편입니다. 이들 부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글라우디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할 때 쫓겨난 사람입니다.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로 도망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울을 반겨주었습니다. 거할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모든 것이 일거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적대자가 아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천막을 만드는 생업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유사성이 있었습니다. 본업에 충실한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새로 사업을 시작할 만큼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변절되지 않는 부부였습니다. 착실하게 다져 온 삶의 터전을 잃기는 하였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치 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고린도로 쫓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믿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비록 생활 터전은 잃었지만 믿음 하나만은 굳건히 붙잡았던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유대적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살며 일을 같이 하였습니다. 당시 바울은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경제적으로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당시의 심정을 고전2:3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탈진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십시오. 평일에는 일하고 안식일에는 본래의 목적인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이들 부부와 바울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진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성도에서 끝나지 않고 헌신적인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3, 18, 19, 26절;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어려움 마다하지 않고 따라 다녔습니다. 에베소에서 이들 부부는 자기 집을 교회 개척장소로 내어 놓았습니다. 물질적으로 안정되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할 수 있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동역자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내어놓을 정도의 동지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16:4을 읽어 보세요.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롬 16:4)“

우리가 인간관계를 하며 살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배반당했다고 낙심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명 붙들고 일하다 실패하고 실패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좌절하고 꺽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반대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도로, 성도에서 동역자로, 동역자에서 동지로 만들어 함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우리도 적극적으로 우리의 동역자 동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 신앙의 변절이 없는 사람,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사람,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동지가 될 만한 사람을 하나님은 만나게 해 주십니다. 

요나단을 보십시오. 1000명이 남았는데 다 떠나고 부관 1명만 남았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신과 싸워줄 충성스런 부하 1명과 함께 적진에 뛰어 들어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배신하고 반역하고 간첩노릇하는 만명이 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목숨 걸고 같이 싸울 충성스런 부하 한 명보다 못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혼자 남았다고 영적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라고 말씀합니다. 칠천인을 찾아 그들과 함께 일하면 되는 것입니다. 민족이 망할 위기에 처할 때 모르더게에게는 에스더라는 죽음을 각오하고 함께한 충성스런 동지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적군 앞에설 때 기드온에게는 300의 용사가 있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이 있었습니다. 나를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이 꼭 있어야만 어떤 일을 성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도 나를 용납해주고 신뢰해주고 지지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 같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케이블 채널 tvN 프로그램인 ‘코리아 갓 탤런트’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최성봉씨의 소식이 CNN에서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본 네티즌이 전세계 1000만 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는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고아원에서 자라다 다섯 살 때 구타를 피해 탈출했다고 합니다. 또래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 나이트클럽에서 껌과 음료를 팔았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야' '너'로 불렀고, 본인도 이름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멘토를 만나서였다고 합니다. 보통 나이트클럽에서는 트로트나 댄스곡을 부르는데 어떤 분이 클래식 성악곡을 하여 그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답니다. 거절해도 끝까지 찾아가 그 후부터 그의 노래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보내주신 사람과 함께 사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5-8)

요즈음 말로 하면 인맥은 서로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네크워크보다는 ‘네트월딩(networlding)’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맥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맥을 형성하는 데에는 단기적이고도 일회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편향적인 교류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네트워킹(networking)’ 보다는 최고의 인맥은 가치관, 공동 관심사의 공유를 바탕으로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공평하게 주고받는 ‘네트월딩(networlding)’을 통해 엮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캔들과 로비의 온상이 되는 미숙한 인맥 만들기가 아니라 공통의 관점, 가치관, 목표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서로의 세계를 엮어내(networlding)’는 인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맥은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수준의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과 동료들, 그리고 사회에 새로운 이익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공, 목적, 과정에 대한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과 ‘신념의 공동체’를 창조한다고 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가치관과 비전이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같은 가치관과 비전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찾아 하나님의 사역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는 또 바울에게 어떤 일을 해 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지원하기 위해 고린도에 신실한 동역자를 보내십니다. 누구를 보내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실라와 디모데입니다. 마게도냐에서 도착합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일평생 아들처럼 동역한 사람들입니다. 실라나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도 같이 갇힌 사람들입니다. 디모데 후서(딤후 4:13)를 보면 마지막 노년까지 참으로 의지한 동역자입니다. 인생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성경을 보십시오.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고전 4:17)"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 1:2)"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들로 말미암아 바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말씀만 전하는 일에 전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제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밝히 증거하였습니다. 이들이 올 때 마게도냐에서 성도들이 선교헌금을 보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비방하고 대적하였습니다.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이방이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들과 함께 사역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7절을 보십싣오. 디도 유스도가 변화됩니다. 아마 이름으로 보면 로마인이었을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수다한 고린도 사람들이 듣고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내가 노력해지 않아도 나를 도와줄 사람을 하나님은 준비하였다가 보내줍니다. 끝까지 나를 지지해 주고 함께 동역할 사람은 있는 것입니다. 다 배신하고 다 대적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이 남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극동방송국 사장이신 김장환 목사님의 아들인 김요셉 목사님이 쓴 수필집이다. 이 책의 맨 앞에 아버지 김장환 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장환 목사님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할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답니다. 6.25 동란으로 미군들이 수원에도 왔는데 한 미군이 뭘 해오라고 손짓발짓을 했는데 김목사님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논두렁에서 말뚝으로 뽑아 주었답니다. 그것을 기특하게 여긴 미군이 미군 하우스 보이로 취직을 시켜 주었답니다. 

성실하게 일한 김목사님은 미군의 신뢰를 받았고 미군이 경산까지 내려갔을 때도 함게 하였답니다. 그 때 김목사님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답니다. 칼 파워스 상사가 전쟁에서 한 명이라고 건지고 싶어 미국으로 그를 보내 공부시키겠다는 제안을 받았답니다. 그러나 김목사님은 그의 호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답니다. 

칼 파워스 상사는 김목사님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오는 귀국 기회를 5번이나 포기했답니다. 3만 4천명의 미국이 전사해 서로 빨리 고국으로 돌아갈려고 하는데도 그는 김목사님을 미국에 데리고 가기 위해 고국으로 가지 않았답니다. 그는 부자가 아니었답니다. 아팔레치아 산맥의 한 탄광촌에 태어났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한국 전쟁이 터져 가난 때문에 군에 자원했답니다. 마침내 칼 파워스 상사는 김목사님을 데리고 가 밥존스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답니다. 자신은 돈을 빨리 벌기 위해 사립대를 포기하고 2년대 교대를 입학했답니다. 

김목사님의 학비를 대기 위해 지역 신문에 내고 거리 모금도 했답니다. 김목사님이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간 뒤에야 칼 파워스는 대학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그는 혼기를 놓쳐서 결혼도 못한 채 평생 홀로 살면서도 김목사님을 도운 것입니다. 

김장환 목사님이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이루고, 극동방송 사장이 되어 방송 선교를 하고, 침례교 세계 연맹의 총회장이 되기까지는 칼 파워스 상사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은 준비시켰다가 김목사님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울어가는 내 사업터에, 어려운 내 가장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은 보내어 주어 사명을 이루도록 해 주십니다.


3.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사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9-11)

인간관계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를 도와주는 동지일지라도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납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에게 힘을 주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바울이 늙고 병들자 어떻게 됩니까?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딤후 4:10)"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딤후 4:17)"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9절을 읽어 보겠습니까? 밤중에 환상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핍박이 있다고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 회당장이 개종했으니 가만히 있겠습니까? 바울을 조용히 고린도를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보복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움으로 잠잠히 침묵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모두다 떠나난다 하여도 하나님만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보장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이 땅에 있는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한 그 말씀(마28:20)을 바울에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니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79장)"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중에 내백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남은 사명, 이룰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바울을 1년 6개월 동안을 고린도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의 신앙 생활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둘째는 인간과의 관계입니다. 세째는 일과의 관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 가장 큰 힘이십니다. 

그래서 숫한 인생의 역경을 겪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다윗 왕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라고 고백합니다. 

홀로 있다고 생각됩니까? 두려움이 밀려오고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힘이 없고 연약하며 함께 같이해 줄 사람도 없다고 생각되십니까? 우리의 동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면 함께한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다해도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도 살아 계셔서 위로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기억나게 해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우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무도 없다고 좌절하지 말고 힘을 냅시다. 우리가 찾아가면 함께할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옆을 보십시오. 마음을 열고 찾아가십니오. 우리를 찾아와 함께 사명을 이룰 동지들이 있습니다. 찾아 올 때 마음을 여십시오. 바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9-10절을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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