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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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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시 3:1-8)

제가 토요일 저녁에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말씀보고 주일 준비하며 교회에서 잡니다. 어제는 너무 날씨가 무더워 지하실에 가 있다가 잠을 자려고 12시경에 유아실로 올라왔습니다. 너무 무더우니까 유아실에서 주일 식사와 꽃꽂이 준비를 하시는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에어컨을 틀고 준비를 했습니다. 올라와 보니까 그 때까지 냉기가 있어 그곳에서 잠을 자려고 시원한 방바닥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기 한 마리가 윙 소리를 내며 먹이를 만났다고 달려들었습니다. 행복한 잠을 방해하는 안티가 생긴 것입니다. 잡거나 쫓아내지 않으면 자기 배부를 때까지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물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성도님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하나님이 철야 기도하라는 신호인가 보고나라고 생각하고 철야기도 하겠습니까?” “원수 사탄 같은 모기 당장 잡아 버리겠다고 12시에 불을 켜놓고 모기와 전쟁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무덥지만 다른 방으로 가서 잠을 청하겠습니까?”

우리가 살다보면 행복한 잠을 방해하는 모기처럼 우리의 행복 삶을 방해하는 안티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웰빙하고 싶어 합니다. 마틴 셀리그만은 그의 책 플로리시에서 웰빙을 “플로리시”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단어인데 이 단어의 기원은 flower와 같습니다. 꽃이 개화한다는 의미에서 '번영하다, 번성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로리시’란 번성, 풍족 즉 삶의 만족도를 끊임없이 높여 ‘행복의 만개(滿開)’에 오름을 의미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고 더 올라갈 데 없고, 더 채울 것이 없는 더 필 것이 없는 풍족한 삶, 활짝 핀 삶, '행복의 만개'를 의미합니다. 그는 플로리시한 삶을 위해서는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가 긍정적 정서입니다.(Positive Emotion) 둘째가 몰입니다(Engagement) 셋째가 긍정적 관계입니다(Relationships ) 넷째가 삶의 의미입니다(Meaning) 다섯째가 성취입니다(Accomplishment) 이것들의 영어 앞 자를 따서 파마(PERMA)입니다. 외우기 쉽게 파마 잘해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안티들은 긍정적 정서를 방해합니다. 우울하게 만듭니다. 몰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긍정적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합니다. 의미 있는 삶을 방해합니다. 주어진 인생의 과업들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인생을 살다가 안티를 만나면 잘 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해 버리기도 합니다. 인기 정상에 올랐던 연예인들이 안티로 인해 자살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어떤 연애인들은 안티로 인해 법정 소송까지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만 안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바울에게도 수많은 안티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쫓아다니며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도 브닌나라는 여성 안티가 있었습니다. 

엘리야게도 아주 집요한 이세벨이라는 여성이 안티가 되어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에게도 안티가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매사 예수님을 반대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다윗에게도 안티가 있었습니다. 

1. 안티가 있는 세상

1) 많은 대적

어릴 땐 장인이 안티가 되어 다윗을 괴롭혔습니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으로 사울왕이라는 안티를 극복하고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번성하였습니다. 황제가 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부러울 정도로 성공하였습니다. 웰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플로리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최대의 영토를 확장하여 백성이 존경하고 이웃나라가 조공을 합니다. 매일 즐거운 긍정적 정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몰입하였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왕이 되어 대단한 성취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는 안티가 생겼습니다. 3편의 시의 제목을 보십시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아끼는 아들이 안티가 된 것입니다. 젊을 때는 장인이 안티가 되어 괴롭혔는데 이제 살만하니까 아들이 원수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자녀가 웬수덩이가 된 성도님 계십니까? 오늘 다윗을 보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윗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압살롬에게 예쁜 여동생 다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다른 형제인 암논이 자기 돈생 다말에게 반한 것입니다. 다말은 자신의 오빠이기 때문에 전혀 암논에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왕이 형제끼리 결혼을 시켜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암논은 꾀를 내었습니다. 아픈체하고 누이에게 음식을 해 달라고 아버지 다윗에게 청했습니다. 아들이 아프다고 하니까 다윗이 다말에게 오빠 집에 가서 음식을 해 주어 병을 났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빠의 음흉한 속셈을 모르고 다말은 오빠집에 가서 그만 암논에게 겁탈을 당해 버린 것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강간을 당하고 버림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이 2년 후 왕세자인 암논을 쳐 죽임으로 보복을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댁으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3년이 지나자 아버지 다윗은 암논의 죽음에 대하여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압살롬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왕궁으로 불러 놓고 2년 동안 만나주지 않는 것입니다. 잘 생긴 압살롬이 2년 동안 역적모의를 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궁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때에 다윗이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도피했습니다(삼하15:30).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빼앗았습니다.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안티가 되어 죽이기 위해 쫓아오고 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절에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안티들이 많고 많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천만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다윗의 안티가 되자 자신의 아내 밧세바의 조부이며 자신의 참모 중의 참모였던 아히도벨이 자신을 반대하여 안티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을 따랐던 수많은 군인들, 백성들도 자신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잘 될 때는 서로 돈을 빌려 주려고 하지만 사업이 기우리며 아무 주거래 은행은 물론 제 3 금융권도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잘 될 때는 그렇게 가까이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가족 친구뿐 아니라 동기 동창들도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윗의 안티들은 어떻게 비난합니까?

2) 대적의 비난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제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제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의 인생은 더 이상 과거의 영화를 누릴 수 없고 웰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플로리시한 삶은 끝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집안의 먼 친척인 시므이가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하는 장면에 대표적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는 다윗을 만나자 대놓고 “이 살인자야 꺼져라 악한 자야 영원히 망해 버려라” 무서운 저주를 해 댑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안티들도 우리를 향하여 악담을 퍼 붙습니다. 그 악담이 비수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약담을 들어 보지 않는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합니다. 

저는 교회를 건축하면서 악담을 들어 보아 무수히 악담을 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안티들이 예수님께 얼마나 악담을 퍼붓습니까?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위선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능력을 행해 보라고 조롱합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이런 악담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의 신앙에 안티 세력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안티 기독교 관련 사이트가 10개나 된다고 합니다. 회원이 2만명을 넘어섰고 포털사이트 댓글 달기나 문서 출판 등을 통해 기독교를 폄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박멸'이라는 섬뜩한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비하하는 '개독교'라는 용어는 네티즌들 사이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상처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 갔다가 헌금액수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은 경험 때문에 안티기독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성을 거론합니다. 중대형 교회의 세습, 비과세, 군부독재시절 조찬기도회 등 권력과의 밀착, 친일 활동, 단군을 섬기지 않는 등의 반민족주의적 성향, 집회에서 "사찰이 무너지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등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는 교리에 대한 거부감, 구약성경에 나오는 잔인한 명령 등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독교와 관련된 일간지 보도 중 63%가 부정적이었다고 한국교회언론회가 밝혔습니다. 한겨레신문은(100%-부정적 보도 비율)을 꼽았고, 한국일보(77.8%), 한국경제(69.2%), 중앙일보(68%), 경향신문(64.7%), 서울신문(60%), 동아일보(57.1%) 등의 순서로 부정적 보도가 많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좋은 것도 많이 있는데 나쁜 것을 부각시켜 보도합니다.

"서구 기독교의 몰락 원인을 세 가지로 설명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성경적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주말 또는 휴가 때도 신앙적 삶을 살지 못하고, 기독교를 폄하하는 내용이 오랫동안 유포됐음에도 적절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안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2.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다윗은 어떻게 안티를 극복합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어떻게 안티를 극복하게 하십니까?

1) 시각은 안티에게 집중하지 않고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합니다(3).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인간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이 싸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면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안티 세력들을 다 진멸해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안티 배후에 있는 사탄과의 전쟁입니다. 그 진리를 너무나 잘 깨닫고 있는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어느날 안티가 된다고 내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며느리, 시어머니가 나의 안티가 된다고 나의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 있는 사탄을 보아야 합니다. 사탄은 그것을 통해 부자관계를 파괴하고 가족관계를 파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화평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역사적으로 예수님보다 979년 전 사람이지만 안티를 만났을 때 어디에 집중을 합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 3:3)”

그러나가 빠져있습니다. 하나님게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시입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방어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티의 어떤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대적만 보고 있으면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에는 갈릴리 바다 위를 걸었지만 주님이 아니라 파도를 보는 순간 물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누구를 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물을 보면 물속에 들어갑니다. 안티를 묵상하지 말고 안티를 급복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의지하던 돈이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와 권력이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우리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환란을 면케 해 주십니다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십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보다는 문제의 답을 가지고 있는 분께 집중해야 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참고하면 됩니다. 

나의 영광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줄 확신하는 다윗의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목숨하나 건지기 위해 머리 숙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실의와 좌절 가운데서 수그러진 다윗의 머리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들어 올리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영광을 회복시키시고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하여 안티로부터 우리를 승리하게 해 주실 줄 믿고 우리는 어떤 안티로부터 꺼꾸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2) 안티 세력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담대하여야 합니다(6). 

사람들은 안티가 생기면 그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고 실의에 빠지고 자살을 합니다. 일부를 전부로 생각하고 일시적인 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특수한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힘겨운 안티를 만났을 때 다윗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천만인'은 대적의 수가 셀 수 없이 많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나 천만인이 있다고 해도 안티로부터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담대하게 나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해 본 사람입니다. 죽음과 삶이 순간순간 다가옵니다. 그는 전쟁은 군사의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많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사람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라고 담대히 나아가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안티 세력이 우리를 방해한다하여도 담대하여야 합니다. 가나안 정탐을 한 12명의 정탐꾼을 보십시오. 똑같은 안티를 만났는데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민 13:31)”라고 말합니다. 정탐한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합니다.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밤새 통곡하여 울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합니다. 올라가 치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9)”고 말씀하십니다. 

안티를 극복하고 주어진 일을 잘 성취하려면 자기 효능감이 높아야 합니다. 이 자기 효능감이 인간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자기효능감이 높으면 어떤 안티를 만나도 학습과제 흥미가 있습니다. 학습의욕 높습니다. 성취수준 향상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신념입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생각 곧 자신감입니다. 이 자기 효능감은 4 가지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가 성취 경험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정보입니다. 성공은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실패는 낮게 하는 것입니다. 수행의 초기에 일어난 실패, 노력이 충분하였음에도 일어난 실패, 외부의 방해 요인이 없었음에도 일어난 실패는 자기 효능감을 낮게 합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공한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안티를 만났을 때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대리경험입니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타인의 성공적 성취를 보거나 상상함으로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설교를 듣는 것도 바로 대리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해냈고, 삼손도 해냈고, 갈렙도 해 냈고 모세도 해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언어적 설득입니다. 
목사님이나 선생님 부모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설득, 칭찬 격려를 통해 성공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득하는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고 따르느냐가 중요합니다. 

넷째는 정서적 흥분입니다. 감동을 받아 도전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담대하여 웰빙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3) 안티세력에 타협하거나 비기독교적 방법으로 대항하지 말고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내 목소리로 기도해야 합니다(4,5,7,8). 

잘 나가가던 다윗이 노년에 안티를 만났을 때 어떻게 극복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짓”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소서” 8절을 보십시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무엇하는 것입니까? “나”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절실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나가 브닌나라는 안티를 만났을 때 적당히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술 취한 여인처럼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질병이라는 안티를 만났을 때 적당히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벽에 대고 통곡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한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안 되고 기도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적인 표현입니다.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신속하고도 역동적인 구원을 간구하는 의인 법적 표현입니다. 주무시거나 앉아 계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꼭 성취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티 세력이 된 백성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의 성산에서 응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취의 복을 누린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전쟁 통에 걱정 근심 없이 자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안전히 지켜 주셔서 어떤 안티 세력이 있다 해도 행복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태한 지경에서도 평안히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깰 수 있었습니다. 안티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시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취적 신앙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주신 은혜를 기억하거 이번에도 하나님이 악인의 이를 꺾으실 것을 기도합니다. 원수들이 입을 열어 다윗을 조롱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이를 꺾으십니다. 결국 다윗은 모든 안티를 이기고 승리하여 다시 왕위에 복귀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 군대는 185,000명의 죽은 시체를 남기고 퇴각했습니다. 에스더의 기도 가운데 하만이 나무에 달려 죽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기도로 이기면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필리핀에 신앙훈련을 받고 언어 연수를 위해 갔습니다. 목회자는 늘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티가 나오면 안 되니까요? 담당 선교사님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아이들이 기후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 감기 걸리고 아프다는 것입니다. 

지난주는 한 아이가 구토하고 설사하고 배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왔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걱정하니까요? 하루 밤 교회에 남아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안티가 생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심각하면 더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며칠 후 메일이 왔습니다. 건강하게 회복되어 공부 잘 하고 있다는 메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행복, 우리의 플로리시를 방해하는 안티는 언제 어느 때 튀어 나올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믿고 시각은 안티에게 집중하지 않고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합니다(3). 

안티 세력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담대하여야 합니다(6). 

안티세력과 타협하거나 비기독교적 방법으로 대항하지 말고 안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내 목소리로 기도해야 합니다(4,5,7,8).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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