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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엡 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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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엡 1:6,12,14)


: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아침에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영생의 가족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십시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자동차 속도에 알맞은 찬송가가 있다고 해서 보았더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올리려면 그에 어울리는 찬송가를 틀어놓는 것이 좋답니다.

시속 150Km에서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시속 160Km에서는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시속 170Km에서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시속 180Km에서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시속 190Km에서는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시속 200Km이상에서는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썰렁하고 끔직한 유머입니다. 이 유머는 과속금지 캠페인인 모양입니다. 운전하면서도 과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찬송이 좋아도 이렇게 까지는 찬송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평소 생활에서 많이 찬송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동안 나누었던 에베소서 1장 3절로 14절 말씀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주제는 찬송입니다.

3절 말씀은 ‘찬송하리로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기록하며 먼저 인사하였습니다(:1).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과 예수님께 찬송을 드린다고 하였습니다(:3).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찬송을 드리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찬송 드려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3절에서 14절까지 말씀에는 3절을 시작하는 ‘찬송하리로다’는 말과 다른 세 번의 ‘찬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6절과 12절과 14절 말씀입니다. 

여기서 찬송[e[paino"/에파이노스]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로는 칭찬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어떤 사람을 칭찬하고 그 의견에 찬성하고 옹호(vindication)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칭찬하는 것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칭찬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해주셔야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칭찬이라고 하지 않고 찬송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칭찬 받아 마땅하신 분(?), 아니 하나님은 마땅히 찬송하여야 할 분이십니다.

그런데 세 번의 ‘찬송’이라는 낱말이 있는 구절은 공통적으로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는’은 목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르러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목적,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심으로 이르러야 할 목적지, 성령님께서 도장을 찍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목적도 찬송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심으로 이르러야 할 목적지도 찬송입니다. 성령님께서 도장을 찍으신 목적도 찬송입니다.

이제, 그 말씀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목적인 ‘찬송’에 대하여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은혜를 주신 목적입니다.
  

I. 목적  

6절 말씀입니다.
: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여야 할 이유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는 없는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찬송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탁월하심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이 찬송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정확한 뜻은 하나님이 찬송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에는 내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 내가 주도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의미는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뿐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 중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에게 ‘야! 여기 나뭇가지가 있는데, 네가 한쪽 끝을 입으로 물고, 나는 다른 쪽 끝을 물고 있겠다. 네가 나무를 물고 날면, 나는 더불어 날겠지, 내가 하늘을 날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니?’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새는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개구리는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다른 개구리들이 부러워하면서 “야, 그런 기발한 생각을 누가 생각했니?”라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날고 있던 개구리는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하고 입을 벌리는 순간, 그 개구리는 물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순간에 죽음을 당한다는 우화입니다. 

누가 찬송하게 하셨습니까? ‘내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찬송할 수 있게 하셨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셨습니까?

다시 6절 말씀입니다.
: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때문에 우리는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2. 은혜를 찬송하여야 합니다.

내가 잘 나서 잘 되었다고 우쭐대며 뻐기며 살았는데 철이 들고 나니 부모님의 은혜였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힘으로 살았다고 큰 소리쳤는데 인생의 단 맛 쓴 맛을 다 보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찬송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 목적은 성도들에게 거저 주시는 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더 풍성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철이 나야 합니다.

우리의 찬송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그 은혜를 찬송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누리심으로 더욱 그 은혜를 찬송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두 번째 목적인 ‘찬송’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찬송은 우리를 변화시키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II. 우리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속량 곧 죄 사람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리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향하시는 그곳에 우리가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에게 머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까?

12절 말씀입니다.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셨다고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찬송하게 하심으로 우리 자신이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1. 우리가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내가 나를 내세울 때, 점점 더 초라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을 드러내고 찬송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을 받는 것 그 이상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복의 덩어리가 되어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 덩어리, 복 그 자체가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찬송 덩어리, 찬송 그 자체가 되게 하십니다. 

커크 패트릭(W. J. Kirkpatrick) 교수가 펜실베이니아 로린스빌 캠프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매일 밤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독창하는 청년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청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직업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르는 찬송은 많은 성도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부르는 찬송을 통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커크 패트릭은 청년에게 열심히 전도해 보았지만 청년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한 패트릭은 집회기간 동안 청년의 영혼을 위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온 밤을 새워 기도하던 중 문득 찬송시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즉시 그 시를 기록하고 곡을 붙였습니다. 그 날 밤 노래를 청년 가수에게 넘겨주고 독창을 부탁했습니다. 청년은 그 날 밤 아름답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패트릭이 만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찬송이 바로 우리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입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어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273장 1절)

찬송을 부르던 청년은 5절까지 다 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청년은 가사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부른 찬송이 그를 사로잡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찬송은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 자체를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찬송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어 이르러야 할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다시, 12절 말씀입니다.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예수님은 자신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본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마 9:6-8)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여기를 찔러도 저기를 찔러도 인간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모습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입술의 찬송을 멈추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찬송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계속해서 찬송하십시오. 그 찬송이 우리를 변화시킬 때까지 멈추지 말고 찬송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데 이르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찬송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게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성령이십니다.
  

III. 성령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오늘 본문 말씀인 14절을 읽으려고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새번역]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엡 5:19). 성령은 우리에게 찬송하게 하십니다.

1. 성령이 찬송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 곧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의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듣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도장을 찍은 것처럼 성령이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함께 계시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빨간색 인주처럼 분명하고 확실한 성령의 도장은 무엇입니까? 찬송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찬송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믿는 사람들에게 함께 계셔서 찬송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찬송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도장이 찍혔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표징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14절 말씀입니다.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이 분명하게 성령은 우리를 찬송하게 하십니다.


2. 성도는 찬송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찬송입니다.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찬송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자주 많이 찬송합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은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붕괴된 건물 밑에 갇히는 것입니다. 

지진이나 폭탄 테러와 같은 일로 건물이 무너지면 구조대원들이 건물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찾을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소리입니다. 생존자가 있다면 소리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의식이 있다면 비록 다리가 부러졌을지라도, 몸이 상했을지라도 뭔가 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 잔해 속에서 ‘똑똑똑’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면 그 속에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구조대원들은 작은 신음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그 소리는 기도하는 소리, 찬송하는 소리,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기도할 기분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찬송할 기분은 전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이나 기분에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것과 찬송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쇠고랑에 채워졌음에도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가 그의 영적 상태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아무 노래도 부르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감정은 메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슬픔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유행가를 입에 달고 있다면 그 가사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당연 찬송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송하게 하심으로 찬송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찬송은 그것은 부르는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여 찬송하면 그 찬송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입술의 노래를 바꾸면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면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나아가 찬송은 그것을 듣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순종하여 찬송하십시오. 찬송하여 하나님의 찬송이 되기를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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