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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 중심교회 (갈 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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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교회 (갈 2:19-20)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존재에의 용기(Courage to Be)라는 그의 저서에서 인류역사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고대인의 불행은 숙명론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그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 불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중세 사람들의 불행은 죄와 벌의 의식으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모든 불행은 죄에 대한 신의 저주요 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무서운 심판 아래서 떨며 살던 시대였답니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무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살아야 하는지 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운명론자에게, 죄의식에 눌린 사람에게, 무의미와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답은 복음 중심 교회, 복음 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복음 중심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 율법으로 죽은 인간들

“율법 앞에서 죽은 사람들” 이것이 복음 중심 교회의 전제 조건입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19절) 나는 율법을 위해 사는 것을 중단했다. 나는 율법을 위해 죽었다. 율법이 나를 죽였다. 내가 율법을 향해서 죽은 것은 하나님을 향해 살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의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3:19-20)
  
율법 앞에서 자기 의를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의 입을 막아 버립니다. 할 말이 있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이 말뿐입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이 말씀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를 말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롬6:23) 여기서 말하는 값이란 직업군인들에게 지급되는 봉급을 뜻합니다. 죄의 댓가는 직업군인에게 봉급을 지급하듯이 반드시 지불되어야 한다. 죄 값은 죽음으로 값을 치르라는 공시적 선고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판결입니다.  
  
법률은 거미줄과 같습니다. 약자는 걸려서 꼼짝 못하지만 강자와 부자는 뚫고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 앞에는 강자도 부자도 안 통합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입니다. 누가 그랬잖아요. 운명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율법 앞에서 죽음의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클레안테스는 “운명은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끌어주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끌어당긴다”고 했습니다. 이끌거나 끌어당기는 거나 그게 그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2:12)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우리 속담에도 사람 안 죽은 아랫목 없다고 합니다.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도 죽을 운명, 율법 앞에서도 죽을 운명입니다. 복음 중심 교회는 율법 앞에서 죽은 자들로 성립됩니다. 

  
󰊲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죄인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0절)
  
복음 중심 교회는 십자가와 죽음을 믿습니다.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만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나도 거기에 못 박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복음 중심 교회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합니까? 왜? 무엇 때문에 나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못 박히셨습니다.  나는 내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했습니다.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주 성실한 남자가 결혼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내의 생일을 앞두고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생일 선물 무얼로 할까? 좋은 선물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선물을 사양했습니다. “그 날 저녁 2시간만 내 얘기 좀 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생일날 저녁 마주보고 앉았더니 아내가 말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들어달라 내 말이 끝날 때마다 “맞아” “옳아” “그랬지”라는 말만 하라.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이야기를 듣다보니 맞아가 아니라 틀렸습니다. 여보 그건 아니야!라고 하면 아내가 중지시키고 듣기만 해달라고 말합니다. 10분을 듣고 있자니 속이 뒤틀립니다. 20분이 지나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30분을 듣는데 억울하고 분해서 죽을 거 같았습니다. 그래도 참으면서 한 시간 두시간을 다 들었습니다. 모두 듣고 보니 30년 살아오며 아내에게 잘못한 것을 느껴졌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이다지도 몰랐던가? 싶었습니다. 남편은 울었습니다. 아내도 울었습니다. 
  
십자가 이야기는 자기 죄를 알게 합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보는 거울입니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된 남편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자기 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새 생명을 얻고 새생활을 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뜁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정욕과 탐심을 못 박지 않으면 그것들이 나를 넘어뜨립니다. 복음 중심 신앙은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입니다. 죄의 올무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죄를 못 박아 죽이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합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그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내 죄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한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못 박힐 때 낙원의 주인이 됩니다.  
  
기독교는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치욕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

  
󰊳 믿음 안에서 사는 성도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0절) 
  
복음 중심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2)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믿음으로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은 가졌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직분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입니다(합2:4).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사울도 다윗도 둘 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울과 다윗은 달랐습니다. 사울왕은 믿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어도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손대면 안 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원수였으나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보복하거나 자기가 하나님처럼 심판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3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 나섰습니다. 다윗은 잠자는 사울의 겉옷자락을 베면서도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다(삼상24:11). 
  
사울왕이 소리 높여 웁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삼상24:16-20).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세상을 이길 힘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셨습니다. 그가 세상을 이긴 것은 권력이나 무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17:5)라고 했습니다. 더 큰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부터 믿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꿈에 하늘나라에 갔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너는 일평생 살면서 진실하게 살았느냐?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깨끗하게 살았느냐? 깨끗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정직하게 살았느냐?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지옥으로 쫓겨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홀연히 광채가 비치면서 예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하지도 못하고 깨끗하지도 못하고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나를 믿었습니다. 내가 못 박힌 십자가를 전하며 살았습니다” 하고 변호하셨습니다. 
  
그때 하늘 문이 활짝 열리더랍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떴는데 꿈이었습니다. 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꿈속에 복음의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함으로 천국을 확장합니다. 
  
복음 중심신앙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낙심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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