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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33)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유명한 논문이 있습니다. 루터는 이 논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요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자유로운 만물의 지배자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충성스러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이 말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된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의 지배자로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신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종처럼 그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러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교훈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본문에 앞서 성도는 자기의 신앙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자유가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에서부터 삶의 중요한 문제까지 결정하며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상의 문제들을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삶의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참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정확하게 요약한 핵심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모든 행위의 기준, 전 인생의 기반 역시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 즉 그것이 먹는 것이든지 마시는 것이든지 생업의 일이든지 봉사의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오늘 중추절을 맞이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하나님이 영광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목적을 바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존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 목적인 무엇인지 알아야 분명한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면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치창조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상실하면 자연히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는 마치 땅만 허비하고 세월만 허송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목사님은 말하기를 "실패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목적이 잘못된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가장 잘 인식한 사도 바울은 빌 1:20-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이 고백을 통해 자신의 존재목적이 예수님을 존귀하게 해드리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존재목적도 역시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우리 한국교회에 ‘목적이 이끄는 삶’ 열풍이 불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님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열풍이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가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되었다면 지금쯤 우리 한국교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아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세상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습니다. 

높은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님은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원인을 한국교회가 교회의 존재목적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을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천국, 즉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이 교회의 소명이고 사명이며 교회의 존재목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그 목적을 잊었습니다. 세상을 등졌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잊었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부흥, 교회의 성장이 교회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장이 목적이 되고, 교회의 부흥이 목적이 되어 온 교회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그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 세계에서 제일 큰 감리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점점 커지는데 교회는 점점 그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점점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의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던 교회는 점점 세상의 지탄을 받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로 추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회가 교회의 존재목적을 잃으면서 교인들도 존재의 목적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자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똑같은 목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목적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겠다고 하는 것만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처럼 소중한 소명을 잊었습니다. 사명을 잊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목적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잃어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의 능력은 상실한 사람들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삶의 목표와 목적을 수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만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어리석은 삶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목적을 다시 한 번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개념이 무엇인지는 잘 알아야 합니다. 영광의 개념을 생각할 때 항상 두가지 개념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표현도 있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의 영광의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나 나타내심”의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실 때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11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갈릴리 가나의 한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셨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말이나 행동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드러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고, 알려주고, 보여주며, 높이는 방편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원 에벤에셀 박성철 회장은 장로님입니다. 20여 년 전 남의 건물 얻어서 조그맣게 봉제공장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물질의 복을 주시면 수입의 30%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오늘날 그 기업은 신흥재벌의 순위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사업을 하든,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차적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보여주며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의 전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데 두었습니다. 

롬 1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제일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목표를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말씀합니다. 사 43:7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목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나타나는 중요한 열매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2-33절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자유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도든지 아니든지, 아니면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관계없이 그들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거미같이 자기만 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손해나게 하며 해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개미와 같이 부지런히 살기는 하는데 전적으로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지런히 일하는 꿀벌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꿀벌은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갑니다만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삶의 결과는 반드시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많은 사람에게 전도하여 영생 얻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은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6:39-40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구원받아 영생을 소유한 우리 성도들의 삶은 어찌하든지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기를 권하고, 예수 믿게 하여, 우리와 같이 영생을 얻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생애의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한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 그들의 영혼을 건져야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재능을 바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복음을 위해 생명까지 바친다면 최고의 영광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무슨 일을 하든지 궁극적인 목표를 영혼구원에 두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박해와 핍박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내 가족, 내 친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혹 아직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습니까? 

추석명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온 가족이 감사하시고, 우상숭배를 멀리하며 온 가족을 구원하는 전도의 기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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