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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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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마 7:7-12)

추석명절 연휴기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중추절, 한가위라고도 하는 추석 명절은 고향과 가족, 그리고 부모와 조상을 생각하며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즐거운 절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신앙의 모습으로 명절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한번은 생면부지의 40대 초반의 남자가 상담을 요청해 왔답니다. 그를 만나 사정을 들어보니, 3년 전 아내와 이혼을 했고 그 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재결합하고 싶은데 아내가 믿어줄 것 같지 않으니 목사님께서 그 여자를 좀 설득해 주십시오 라는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참 난처한 일이지만 한 가정을 살리는 일이라 그 목사님이 그 여자를 만나 용서하고 받아들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 사람 사람되기는 틀렸습니다. 제가 결혼해서 10년간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실패하고 내린 결론이 이혼이었습니다. 목사님, 성의는 고마우나 공연히 헛수고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이번에는 다르다,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예수 믿는다고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고 그 후의 소식은 듣질 못했답니다. 다만 두 사람이 예수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 새사람 만드는 일, 그것보다 어렵고 동시에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 결코 인간의 노력만으로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지금까지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의 귀중한 교훈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의처럼 겉으로만 의를 행하지 말아라’,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세상의 염려에서 벗어나라’,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라’, 등. 이제까지의 말씀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소극적인 말씀이었으나 오늘 말씀은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남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뛰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음까지도 그들을 정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영원한 생명력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7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서 먼저, “신앙생활은 곧 기도 생활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도 없이 신앙 생활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야말로 신앙 생활로 이어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생명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수준은 바로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인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기도하느냐, 어떤 자세와 내용으로 기도하느냐 그리고 계속적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의 신앙 수준은 결정됩니다. 

허브 밀러 라는 분이 쓴 「Connecting with God」이라는 책에 있는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한적한 아주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큰 술집, 나이트 클럽이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이제 이 평화로운 마을이 시끄럽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이 나이트 클럽에 드나들면서 타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걱정에 휩싸여 있는 마을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서 철야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야기도 중에 몇몇 열심있는 교인들이 뭐라고 기도했느냐 하면 “하나님, 이 술집, 나이트 클럽을 불태워 주십시오” 불을 질러 달라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죄악으로부터 우리들을 건져 주시옵소서” 

아, 그런데 얼마 후 정말로 나이트 클럽에 불이 나서 몽땅 타버렸습니다. 이 나이트 클럽 주인이 교회에서 자기네 술집에 불이 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를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판사 앞에서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교회에서는 술집이 불난 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도 때문에 나이트클럽이 불탔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나이트 클럽 주인은 ‘교회가 기도를 했기 때문에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판사가 판결을 하기에 앞서 그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이트 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교회의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기는커녕 아예 부정을 하고 있군요. 내가 보 에는 나이트 클럽 주인의 믿음이 더 좋습니다’ 

허브 밀러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믿으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함. 기도의 수준은 바로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신앙 수준은 결정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아직도 좋지 않은 습성들과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가 부족한 연고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기도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구하라’는 낱말은 가장 단순한 의미로서 의지하는 마음으로 구걸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저에게 좀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찾으라’는 말은 그 속에 근심의 요소가 있습니다. 이는 참된 걱정인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하는 것은 물론, 큰 열망으로 절박하게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라’는 말은 앞의 두 가지 명령, ‘구하라’와 ‘찾으라’에 나타나는 의존심과 노력이 뒤섞여 있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하라’와 ‘찾으라’는 것은 성별된 사람의 하나님의 뜻을 향한 노력을 말합니다. ‘문을 두드리라’는 말은, 곧 끊임없이 적용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 시간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며 살지 않으면, 분별을 할 때와 비판을 해야 할 때를 알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본문의 이 말씀을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는다’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6:8 - “...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껏 살아오면서 우리는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때로는 불의한 자로 살아왔는데도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는 기도하여 얻은 것도 있지만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골고루 해와 비를 주셨듯이 말입니다. - 세상의 부모도 자녀들이 구하지 않아도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채워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고 주지 않으시고 찾지 않는다고 찾아 주지 않으시고 두드리지 않는다고 열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구하지 않아도 주시고, 찾지 않아도 찾게 해 주시고,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결국은 문을 열어 주시면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1절 하반절에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구하는 자는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얻게 됩니다. 구하지 않고 얻은 것은 귀하게 느껴지지 않는 법입니다. 찾지 않았는데 찾아진 것은 은혜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저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원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기도하면 살려주고 원망하면 죽이시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찬양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 후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자 또 원망을 합니다. 홍해를 건넘으로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가 벌써 다 소멸된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열심히 기도해서 홍해를 온 백성의 기도로 말미암아 건너게 되었다면 저들은 평생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라에서 쓴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지 않는 자는 좋은 것을 받아도 그것이 좋은 줄을 모르게 됩니다. 구하여 받은 자는 똑같은 것을 받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 다 좋은 것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축복을 더하여 받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삶에 닥치는 고난과 어려움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우리의 삶에 부족함과 어려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의 삶을 부족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부족하게 하시고는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갘추어 놓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을 감추신 후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찾으라!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의 삶의 문을 때때로 닫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의 삶의 문을 닫으신 후에 우리에게 말씀하심. 두드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당하는 모든 삶의 어려움과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는 기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도 아니 주실 뿐 아니라 쓸데없고 우리에게 무익한 고난도 아니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렇듯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기도의 응답을 받을 만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집니다. 


2.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또한 기도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입니다.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구절은 소위 “황금률”이라고 불리는데 가만히 이 대목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안 맞는 구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11절까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고 이어서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1~6절까지의 말씀 다음에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이 말씀이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6절 다음에 있어야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지난 시간에 본 1~6절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남을 비판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금률의 말씀이 나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먼저 우리의 인간 관계에 적용됩니다. 즉, “우리가 바라는 대로 먼저 상대방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인간 관계에서 소원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허물과 부족이 덮어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타인에게 칭찬 받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내 소원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내가 먼저 남의 허물과 부족을 덮어 주고, 다른 이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곧 내가 행한 대로 대접받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30대 젊은 목사 시절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도 넉넉하게 살아오지 못했기에 남을 대접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함께 밥 먹어도 밥값을 잘 내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내가 왕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기회만 있으면 먼저 대접하려고 합니다. 

진정 여러분은 존경받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상대방을 존경해야 합니다. 진실한 친구를 원하십니까? 먼저 진실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 받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친절하게 인사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간단합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용서하셨고, 먼저 진실하신 친구가 되어 주셨으며 먼저 죽으시기까지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그분은 먼저 십자가로 황금률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을 최고로 인정하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기도 이상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로써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영국 트리니티 대학에 ‘조셉 스크리븐’이라는 기독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틀 전 그 여자가 사고로 익사해서 죽었습니다. 스크리븐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말합니다. “얘야, 그러고 있지만 말고 친구 좀 사귀어라”, “저는 이제 친구는 절대 안 사귈 것입니다”, 어머니는 말합니다. “그런 친구 말고 너는 너의 진정한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을 잊어버렸니? 친구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라” 

스크리븐은 그 후 캐나다로 가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10년쯤 지난 후 영국의 그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은 스크리븐은 그 어머니의 말씀을 생각하며 한 편의 찬송시를 써서 어머니께 보냅니다.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   
 (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국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우리는 무엇보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면 합심해서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기도한 만큼 먼저 자신이 변화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기도한 만큼 은혜를 받고, 기도한 만큼 이루어지며, 기도한 만큼 변화되는 축복을 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로 대접받기를 원하십니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축복이, 하나님이 대접해 주시는 은총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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