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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리라 (삿 8:22-23, 마 1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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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다스리시리라 (삿 8:22-23, 마 18:18-20)

지난 주간 중국 단기선교여행 중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모두가 의미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삼자교회의 주목사님이란 분을 만났는데 아주 감동적인 말씀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그는 아주 복음적이고 공산주의의 체제 하에 있지만 담대한 분이었습니다. 삼자교회의 목사이기 때문에 정부의 눈치를 더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아주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자신의 명함도 건내고, 말씀도 아주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그는 생각이나 삶이 하나님 중심이었고, 열정적인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회나 선교나 복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그의 대답이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3대 째 신자인 친구의 소개로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생각하여 목사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반대하던 아버지는 그와 의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의절한 아버지는 1년 반 만에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 후 아들 주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형제와 자매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7년 만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주목사님은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공산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관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 외에 어떤 다스림도 받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현대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라도 평가합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학자라고도 합니다. 그가 발표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이론에서 “우주를 관측한 결과 우주 탄생에는 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하였습니다. 중력과 같은 물리법칙의 존재인 우주는 무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으며 창조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이론은 과학적 무신론입니다. 
  
무신론 과학자들은 우주의 생성이나 운행이나 우주를 누가 다스리나 라는 문제에는 전혀 대답을 줄 수 없습니다. 과학은 대답을 주지 못하지만 성경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위험하고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과 과학은 서로 보충적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과학적이어야 하고, 과학은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시편 50:12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임이로다”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6은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로다”라고 합니다. 땅과 하늘 온 세계가 다 주님이신 하나님의 것인데 누가 다스리시겠습니까? 이 세계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13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합니다. 신앙과 지식이 만나야 합니다. 온전한 신앙은 지식적이어야 합니다. 온전한 지식은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과학이 참 과학이며 참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세요!”라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약한 것 같지만 가장 강한 것입니다. 비겁한 것 같지만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아서왕’(King Arthur)은 원탁의 기사를 많이 양성했습니다. 그는 충신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그 때 충신들은 “왕이 되소서. 왕을 사랑하는 저희는 왕의 뜻을 받들겠나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다스리심 받으면 가장 든든합니다. 가장 안전합니다. 이런 삶이 가장 행복합니다. 
  
기드온은 위대한 사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그는 나라를 적에게서 구했습니다. 그가 미디안의 왕들을 물리쳤을 때 백성들은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기드온은 “나와 나의 자녀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첫, 세상의 요구는 사람이 다스리라고 합니다. 

사사기 8:22에는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라고 합니다. 세상의 생각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웅이 자신을 다스리라고 합니다. 사람을 높이고, 사람에게 의존하고, 사람을 믿는 것이 일반적 세상의 이치이며 심리이며 관습입니다. 
  
기드온은 물론 위대합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시대적 영웅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스스로 전쟁하고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이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은 많은 병사가 아니라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는 300명만 거느리고 전쟁에 나갔지만 승리하였습니다. 누가 전쟁한 것입니까?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쟁하셨고 승리하셨습니다. 누가 용사를 전쟁에 이끌어 갔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에 볼 때 위대해 보인다고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자신의 형제 70명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왕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가장 큰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다스린다는 사고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들을 이끌 신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가 그들을 이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이끌어내는데 모세는 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입과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흔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죽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죽으라고 할 때에 불평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대로 한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지도자를 세우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세우십니다. 사람의 중심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이미 하나님을 떠났고 백성을 이끌 지도력도 상실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6:7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사울은 당대의 얼짱이고 몸짱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이 아니라 내면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을 때 백성들은 당신과 당신의 아들들 그리고 당신의 손자가 그들을 다스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민심이 얼마나 오락가락 하는지 아십니까? 이런 백성들의 마음은 조금 후에는 죽이라고 변하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민심이반은 쉽게 일어납니다. 
  
사무엘에게는 아들들이 있습니다. 요엘과 아비야입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8:5에는 “당신은 늙고 당신들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백성들이 말합니다. 

왕을 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왕이 있으면 왕이 백성들의 자손들에게 곡식과 포도원의 소산을 달라고 하며, 노비를 만들어 일을 시키며, 소년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백성들은 “그래도 좋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던 나라를 사람이 다스리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그들은 사람이 다스리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왕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바보들입니다. 
  
고대 황제들의 묘실에는 많은 부장품들이 있습니다. 황제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고스란히 다 묘에 함께 묻었습니다. 죽어서도 사용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묘실을 파고 묻었던 인부들과 지키던 병사들을 다 함께 묻어 죽였습니다. 묘실이 도굴당하지 않게 하기 위험입니다. 차라지 부장품을 넣지 말던지 라고 할지 모르지만 죽음 이후의 삶을 믿고 있던 터라 이런 관습은 계속되었습니다. 

중국 서안의 병마용도 진시황제의 죽음을 지키던 8천 병사를 흙으로 만들었는데 실제 병사도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대로 지배하려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저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다스릴 자격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라고 한 말은 당시 고대 근동에 왕위의 세습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적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확보하려고 왕을 세우려는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의도는 왕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7세기 북유럽의 선교사인 보니파키우스는 이교도들에게 신뢰를 얻어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교도들은 갖가지 신을 믿고 있었는데 우레의 신도 있었습니다. 그가 우레의 신 ‘토르’의 신성한 떡갈나무를 도끼로 쓰러트리자 ‘토르’를 숭배하던 이교도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쯤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조금 지난 후에는 기독교에서 섬기는 하나님이 훨씬 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온 이교도들에게 퍼졌습니다. 

시편 44:4에는 “여호와는 나이 왕이시니”라고 합니다. 시편 84:3에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다스리소서”라고 하는 사람은 지혜롭고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합니다. 

사사기 8:24에는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분임을 압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자신 힘이나 군사력이나 지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말한 것입니다. 지도자인 인간을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뢰하여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세상 우주 모든 만물을 다스릴 자격은 단 한분에게 있습니다. 에베소서 4:6에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만이 모든 만유를 통일하시고 그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증명합니다. 
  
‘다스리다’의 히브리어는 통치권 행사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스리다’라는 말의 신약적 의미는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칫 지배하기 쉽습니다. 인간은 다스린다고 하지만 지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인간을 도우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섬길 자격이 애초부터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스려야 하는 존재이지만 다스리지 못하고 다스림을 받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면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내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에 다스림을 받습니다. 섹스, 마약, 권력, 돈 그리고 모든 재물을 다스리도록 지음 받았지만 그러나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가 다스림을 받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통치권과 지배권을 다 드리고, ‘날 다스리소서’라고 통치권을 이양하고 사는 것이 가장 강하게 사는 법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보면 종교 전쟁과 같은 치열한 전쟁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싸움도 교회의 싸움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어떤 전쟁도 종교전쟁에 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있다 믿는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추악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묵인합니다. 유럽의 30년 전쟁은 종교전쟁에서 정치전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완전한 패자도, 완전한 승자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나라들이 전쟁으로 탈진하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독일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고, 유럽 대륙은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빌려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는 욕망이 이렇게 치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의미합니다. 통치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스리시라고 할 것입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는 8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당시의 규례로는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하려면 18살이 되어야 했습니다. 승정원은 왕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여자를 지배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폐하 !” 그런데 여자를 지배하려니 어렵지요. 여자는 지배할 대상이나 존재가 아닌데 지배하려고 하면 언제나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의 가장 큰 실패는 지배하고 다스리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고, 인간을 섬겨야 합니다. 여자도 나라도 지배하고 다스릴 존재가 아니라 섬김의 대상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와 우리 세계를 다스리실 존재이십니다. 출애굽기 15:18에는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고 합니다. 출애굽의 감격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감격은 야훼 하나님의 다스리심 때문이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을 찾는 왕으로 모시고, 다스림을 맡긴 지도자로 하여금 흥하게 했습니다. 성경의 다윗이 그랬고, 히스기야가 그랬고, 콘스탄티누스 대왕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왕들이었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따라 살았던 왕들입니다. 이들은 다 잘 되었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왕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자기가 다스린다고 생각했던 왕들은 다 망하게 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그랬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미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이 그랬습니다. 그는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하였고 그도 마지막에 자살하였습니다.  
  
청와대에서 하나님을 찾는 소리가 크게 나기를 바랍니다. 청와대에서 하나님께 묻는 소리가 하늘로 퍼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대통령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이 하나님께 다스려달라고 하나님을 의탁하는 대통령이기를 바랍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게으른 사람과 무식한 사람이랍니다. 그 중에 게으르면서 무식한 사람이 제일 무섭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가장 겸손하고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시편 97:1에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가장 즐겁고 가장 기뻐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우리, 우리의 삶, 우리의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영국의 윌리엄 4세가 죽던 날 밤 왕실의 한 처녀가 초조하게 왕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승정원에서는 이 처녀를 왕으로 책봉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빅토리아여왕(1819)입니다. 빅토리아여왕은 64년 동안 영국을 통치하였습니다. ‘빅토리아 풍’이라는 말을 만들만큼 위대한 왕입니다. 빅토리아여왕은 책봉 소식을 듣고 즉시 무릎을 꿇고 성경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주여, 내가 왕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왕의 왕관은 다이아몬드가 2,783개, 중앙에 ‘제2의 아프리카 벨리’라는 별명을 가진 309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고, 277개의 진주, 17개의 사파이어, 5개의 루비, 데마라이스가 박혀 있었습니다. 빅토리아여왕은 힘이나 왕관의 권위로 다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렸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었습니다. 여왕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빅토리아여왕의 제위 시절에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이 해질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영국이 지배하던 나라마다 빅토리아라는 이름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뢰하고, 하나님께 통치권을 맡기는 자가 가장 위대한 통치자입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내가 다스리지 말고, 하나님이 다스리게 합시다. 사람의 짧은 머리나 힘에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통치에, 하나님의 지배권에 맡기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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