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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근본 (전 12:7, 눅 3: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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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근본 (전 12:7, 눅3:23-38)
  

여러분, 토비 도슨을 아십니까? 미국 입양아 출신으로 한국명은 김수철입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키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청년이죠. 지난 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투표를 앞두고 홍보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3살 때 부산 시장 골목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린 후 고아원을 거쳐 미국으로 입양됐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자신의 뿌리 근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황 끝에 다행히 스키 선수 생활을 하게 됐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서려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TV 카메라 앞에서 한국어로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유명해지자 수십 명이 친부모라고 연락해 와서 상실감이 컸는데, 다행히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TV에서 상봉 장면을 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정말 얼마나 둘이 닮았는지! 신기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낼까요? 인간에게는 자신의 근본을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비단 고아, 입양아 혹은 실향민만 그런 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습니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귀성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교통이 복잡한데도 굳이 고향을 찾고, 가족들을 만나고, 성묘하는 이유가 다 그런 본능의 발로인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귀소본능도 비슷한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제아무리 근본을 찾으려고 애를 써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저 내 위로 몇 대만 알면 많이 아는 겁니다. 족보상으로 십대, 이십대까지 안다 해도 별게 아닙니다. 근본을 아는 게 아닙니다. 한국인의 경우 단군이 B.C. 2333년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알고 있지만, 정확한 역사는 아닙니다. 

환웅과 웅녀(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되었다고 함) 사이에 단군이 태어났다는 단군신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전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인 중 한 명도 자기 근본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는 셈입니다. 그게 어디 한국인뿐이겠습니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역사도 자신의 근본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인생의 근본을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인생의 뿌리를 찾아주는 책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데, ‘뿌리 찾기’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이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 근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각자의 근본을 확인하고, 그로 인해 정말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genealogy)가 나옵니다. 또 한 군데가 있는데, 마태복음 1장이죠.(마1:1~16, 눅3:23~38)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 형태도 내용도 조금씩 다릅니다. 

(1) 형태적 차이 :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을 거쳐 예수님까지 하향식 기록인 데 반해 누가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을 거쳐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상향식 기록입니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윗을 비롯한 왕들이 등장합니다. 결국 이 족보는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되었던 메시야이심을 알려 줍니다. 반면 누가복음은 이방인(헬라인 등)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인류를 위해 오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 내용적 차이 : 마태의 족보에 오른 이름들과 누가의 족보에 오른 이름들은 서로 많이 다릅니다. 얼른 보면 어떻게 동일한 예수님의 족보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태의 족보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족보이고, 누가의 족보는 마리아 자신의 족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태의 족보는 부계 족보, 누가의 족보는 모계 족보라는 겁니다. 요셉과 마리아 모두 유다 지파지만 다른 가문으로 갈라졌으므로 같은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차이점들을 염두에 두고 본문의 족보를 살펴보면, 중요한 교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모든 인생의 근본 : 창조주 하나님 

누가의 예수님 족보를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을 거쳐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고 했죠. 본문 36절~38절을 봅니다. “36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족보의 맨 윗선은 하나님이고, 바로 아래 인류의 시조 아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족보인 동시에 모든 인간 개개인의 족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다가 보면 아담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수없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중 한 갈래에 나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모든 인간은 각각 아담과 관계가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관계’입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담은 나에게 혈연적인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영적인 조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죠.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후 창조주와 피조물 차원에서 부자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나도 하나님과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아덴에 가서 설교할 때 뭐라고 증거합니까? 행17:26,28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his offspring)이라 하니”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겁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든 인간들에게 생존할 수 있도록 골고루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5:45 “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불신자들조차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일반 은총(Common Grace)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만 특별히 주시는 은총(예를 들어 영생, 기쁨, 평안 등)은 특별 은총(Special Grace)이라 부릅니다. 

인간은 육체만 갖고 있는 게 아니죠. 육체와 더불어 영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은총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영적인 생명을 계속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의 근본 뿌리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2] 근본을 잃어버린 인생 : 하나님을 떠난 인생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을 잃어버린 인생이 된 겁니다. 이게 바로 불행의 원인입니다. 

솔로몬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다가 뒤늦게 깨닫고 전도서를 씁니다. 거기서 그가 뭐라고 고백합니까?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무언가 열심히 했는데, 무언가 많이 모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허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인생의 비참함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근본을 상실한 인생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엡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와 같은 모습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겉으로 볼 때 아직 멀쩡한 것 같아도 실상은 죽은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롬6:23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 ” 영적인 사망입니다. 그 후에는 육적인 사망,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입니다. 히9:27 ...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에게나 죽음이 있고 그 후에 내세가 있는데, 영원한 천국이냐 아니면 영원한 지옥이냐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아갑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근본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 잘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가수 최희준 씨의 하숙생입니다. 뭣도 모르고 따라 불렀습니다. 옛날 가요들은 곡조도 좋고 가사도 점잖았지만, 잘 뜯어보면 인생의 근본을 모르는 말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간다” 어린 게 뭘 안다고 ... ? 그런데 어른들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을 모르고 살다 보니까 그 영혼이 불쌍한 겁니다. 입양아나 실향민만 불쌍한 게 아닙니다. 영적인 근본인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모두 다 불쌍합니다. 공허한 나머지 엉뚱한 짓들을 합니다.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들을 찾아다닙니다. 물질을 찾아, 권세를 찾아, 명예를 찾아, 쾌락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면 막연히 좋은 데 가겠다고 명당 묘 자리를 찾고 제사를 지내고 난리법석을 피웁니다. 조상이 좋은 데 가야 후손들이 잘 된다고 착각 ... 명절 때가 되면 불신 가정에서 조상 제사 지내는 문제로 성도들이 고민을 하는데, 이것도 참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상이 와서 잡수시면 명절 때만 하면 어떻게요. 매일 해야지, 자기네끼리만 먹고 1년에 겨우 두어 번만 밥상 차려 주면 어떻게 해요? 우리는 조상을 추모하며 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드리면 됩니다. 

너무 무지하다 보니까, 심하게는 이런 일조차 있습니다. 천도제 비용을 마련하기 공금 횡령한 종합병원 경리과장의 이야기입니다. 집안에 우환이 끓자 죽은 조상들 저승으로 평안하게 인도해야 된다고 천도제를 지냈습니다. 동자보살을 사칭한 무속인에게 5억원을 바쳤는데, 중간에 그만 두면 이전 화가 한꺼번에 닥친다고 겁주니까 공금에 손대기 시작 했는데, 수백억 원을 횡령하다 결국 들통이 나서 구속되고 말았습니다.(2011/01/27 동아일보) 

[3] 근본을 찾은 인생 :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인생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영혼의 참 평안을 누리고 죽음 이후 천국에 들어가려면 근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근본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시죠.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마태의 족보와 다르죠. 마1:16 보면, 이러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 ”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입니다. 그런데 누가의 족보에는 요셉 위에 헬리로 되어 있습니다.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입니다. 법적으로는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지만, 실제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하나님의 아들이란 뜻으로 마리아 쪽 족보를 기록한 겁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이 인간을 죄와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시죠? 창3:15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사탄)에게 저주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을 괴멸한다는 예언입니다. 장차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오실 예수님을 예언한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최초의 복음이란 뜻으로 ‘원시복음’이라 부르죠. 

이 예언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근본을 찾은 사람입니다. 뿌리가 땅 속에 잘 박혀 있으면 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인생이 잘 됩니다. 영적인 생명이 있어 영혼에 참 평안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고대 신학자 어거스틴은 헬라 철학과 로마의 문화, 종교를 섭렵했지만 늘 공허했습니다. 그 후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했나이다. 그런고로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내게는 평안이 없었나이다.” 또 프랑스의 과학자, 수학자, 그리고 문학가였던 빠스칼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마음에 텅 빈 공백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메워 주실 때까지 아무 것으로도 메워질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이 세상에 살지라도 항상 천국을 소망해야 합니다. 골3:1~2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천국을 소망하며 살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고, 현재는 이 세상에 머물고 있기에 세상을 완전히 초월할 수 없죠. 또 염세적으로 사는 게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이 세상 살 동안 최선을 다해 살되, 천국을 소망하기에 세상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일제시대 어린 시절 교회에서 찬송가, 풍금, 악보 등을 통해 음악에 눈뜬 그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 유학을 하러 갑니다. 그 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당대로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조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관한 음악을 작곡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애국가입니다. 한국환상곡(교향곡)도 주요 작품입니다. 일본이 항복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그는 조국에 돌아올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백작의 딸 로리타와 결혼했고, 마요르카로 이사합니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안익태였기에 아내는 근사한 보금자리 마련할 꿈을 꾸었습니다. 그곳에서 지휘자 자리도 얻었으니 오래오래 살기 위해 집을 사자고 조릅니다. 그러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싫소! 나는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갈 사람이오. 집은 사서 무엇 하겠소?” 이승만 대통령 당시 잠시 귀국해서 훈장도 받고 국제음악제도 개최했지만 조국의 냉대로 영구 귀국하지 못한 그는 말년을 스페인에서 보냅니다. 1965년 눈을 감을 때도 서울국제음악제 때 자신이 지휘 녹음한 레코드를 들었을 정도로 조국을 그리워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삶의 모습도 마치 그런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인생의 근본인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전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그러기에 세상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겁니다. 우리는 오직 천국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물질, 건강, 시간, 재능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선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도 축복하시고 저 천국에 들어갈 때 하늘의 영원한 상을 주실 겁니다.

아무쪼록 추석 같은 명절 때 잠시 일상을 멈추고 인생의 근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영생의 기쁨을 재확인하시고, 장차 들어갈 천국을 소망하며 남은 생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리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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