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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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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마태복음 3 : 13~16절
베드로전서 2 : 11 ~12절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었던 사도 베드로는 각처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친히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그의 교회를 두셨고, 그리스도인들을 불러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곳에 있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한하신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의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사도로서 사역하던 때도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비방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선한 행실로 대답하여 마침내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때에나 세상은 교회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인들을 좋게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를 비난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다가 우리의 자세를 스스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위기는 벌써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는데 우리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우리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이 위기는 남의 탓이 아니라 다 우리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썩어도 너무 썩어서 치유 불가능상태에 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 앞에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고쳐서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여 제96회 총회의 주제를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정하고, 부제로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라고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자세를 바꾸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서 새롭게 하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만난 이 위기를 계기로 우리를 고쳐서 새롭게 하려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란을 떠난 야곱은 가나안 땅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땅히 가야할 곳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겜에 머무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을 지켜야 하겠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살해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크게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오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의복을 바꿔 입고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세겜을 떠나 약속의 땅 벧엘로 올라갔던 야곱처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써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으로 존재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입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소금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소금 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십니다. 세상의 소금 된 우리를 통하여 불의와 죄악을 몰아내려고 하십니다.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맛 잃은 소금은 소금이 아니듯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세상의 모든 불의와 죄악을 몰아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참 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세상의 소금으로써 맛을 내지도 못했고, 세상의 부패를 막아내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세상의 일부로서 세상 속에 안주하기를 원할 때가 많았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어 길가에 버려져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힐 때가 많았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차별적인 비판을 받으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지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역사 앞에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하심은 세상에 가득 찬 어두움을 몰아냄으로써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심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은 어두움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빛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옳고 그름이 한계가 모호해 졌고,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의 한계도 모호해 졌습니다.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찬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효율성의 잣대로 판단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등불은 이미 꺼져 있거나, 말 아래 있는 등불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춰야 할 빛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다운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만이 우리를 세상에 두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탓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두 내 탓입니다’하고 말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할 때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바로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모두 이런 마음가짐으로 제96회 총회에 임하여 회무를 처리하고, 함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소금이든 빛이든 스스로 희생하기를 싫어하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소금이 녹아지지 않거나, 등불의 심지가 불타서 소멸되지 않으면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고,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소금은 녹아서 없어져야 하고, 등불의 심지도 불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맛을 낼 수 있고, 그래야 부패를 방지할 수 있고, 그래야 어두움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희생하기를 싫어하면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인’하면 사람들은 우선 말은 많은데 실천은 그에 따르지 못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내 몫을 내놓으려고 하기 보다는 내 몫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한국교회의 강단을 휩쓸고 지나간 기복신앙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누구보다도 많이, 무구보다도 먼저 소유하는 데 있는 것처럼 생각했으니, 이웃을 위하여 나를 희생한다거나 혹은 내 몫을 양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앙생활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지는 것처럼 오늘 여기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지상주의에 빠지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오직 교인 수를 늘리는 데만 몰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인 수를 늘리면 유능한 목회자가 되고, 성공한 목회자가 되고, 나아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회자가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일에 몰두해 왔습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으며,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장했고 교인 수는 많아졌는데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교회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야 말로 우리가 자신을 성찰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성공이 과연 참된 성공이며,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 성장이 과연 참된 의미의 교회 성장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면 녹아 없어져야 하고,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면 불타서 없어지는 심지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내 몫을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 교회다운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무슨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일에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의 그리스도인다움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변화된 인격과 삶을 통하여 우리의 그리스도인다움을 보려고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장로교인으로서 칼빈의 신학과 정신을 이어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는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면서 교회의 제도나 바꾸고, 신학을 바꾸는 정도로 끝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네바에서 교회를 개혁하면서 시민의 의식구조와 삶에 이르기까지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로인하여 마치 그가 독제자라도 되는 것처럼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의 삶에 변화가 오지 않는 개혁은 무의미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사람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교회 또한 날마다 자기 갱신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건 간에 자기 갱신을 게을리 하는 교회로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산 교훈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는다거나, 우리 교회가 자기 갱신을 게을리 하게 된다면 세상이 이런 우리를 용납하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밖으로부터 강요된 갱신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결단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총회도 새로워져야 하고, 노회도 새로워져야 하고, 교회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뼈를 깎는 자성과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베옷을 입고 재에 앉는 마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전국남선교회연합회가 ‘경건과 절제 운동’을 제창하고 각 노회마다, 각 교회마다 경건과 절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열매가 어떠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만, 이제 우리 총회가 이런 운동을 다시 일으켜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곧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착한 행실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의 소금된 사명을 다하십시다. 세상의 빛 된 사명을 다하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내일이면 늦습니다.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제96회 총회가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박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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