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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까마귀와 비둘기 (창 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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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비둘기 (창 8:6-12)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었던 모든 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물이 점점 물러가게 하시고 결국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섭리하시고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홍수 후에 태양으로 물을 말리셨습니다. 바람으로 물을 말리셨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시려 역사하셨습니다. 이제 방주 밖으로 나갈 시점을 정하는 것은 노아의 몫이였습니다. 그럴려면 물이 얼마나 감하여졌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그쳤을 때 방주에서 나갈 땅의 상태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물론 물이 감하고 말라가는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하며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짐작으로만 큰 일을 치를 수 없는 일이지요. 이것이 노아의 지혜로움입니다. 짐작으로 무슨 일을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달랐습니다. 노아는 더 정확한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이 감한 여부를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도구를 사용합니다. 노아가 도구로 사용한 것이 바로 까마귀와 비둘기였던 것입니다. 노아가 물이 감한 여부를 알기 위해 그 바로미터로 새들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까마귀와 비둘기였습니다. 

오늘은 노아가 물이 감한 여부를 알아보고 방주 밖으로 나갈 시점을 정하기 위해서 사용한 까마귀와 비둘기를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노아는 까마귀를 방주 밖으로 내보냈습니다(창 8:7).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면서도 방주에서 기다리고 있는 노아아와 방주 공동체가 기다리고 있는 답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노아의 원하는 답을 가져오기보다는 자신의 날갯짓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왕래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엔 물위에 떠다니고 있는 나무토막에 앉아 노는 것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까마귀는 그런 곳에서 부패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오징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십니까? 본래는 오적어(烏賊魚)가 맞는 말입니다.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까마귀의 성질을 알고 오징어가 죽은 척하고 물위에 떠있으면 까마귀가 먹이를 찾아 내려앉을 때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오징어의 여러 개의 발이 까마귀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까마귀를 훔쳐 도적질하는 물고기라는 뜻인데 나중에 발음이 오적어에서 오징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이 까마귀를 부정한 새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레 11:15, 신 14:14). 어떻든 까마귀는 방주에서 안타깝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제 사명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망각하고 힘 자랑으로 왕래하기만 할뿐 노아와 방주의 공동체가 기다리고 있는 소식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자신의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원하는 답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잡식성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아주 영리한 새라고 합니다. 잡식성, 적응력, 영리함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삶에는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오늘의 믿음의 방주요 구원이 방주인 교회 안에도 이런 유의 육에 속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양육을 받았는데도, 사명을 지니고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면서 교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사랍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육신을 위하여 왕래할 뿐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 신령한 복음 활동에 실망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세상을 왕래하면서도 주님의 원하시는 것을 가지고 주님이 몸된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까마귀에 의한 노아의 첫번째 조사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일주일 후에 비둘기를 다시 내 보내게 된 것입니다. 비둘기는 까마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보내신 이의 일을 했습니다. 비둘기는 나갔다가 땅의 물이 덜 말랐기 때문에 비둘기는 되돌아왔습니다. 이미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해서 얼마쯤 새들이 날아 앉을 만한 곳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비둘기도 까마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들기는 그런 곳에 한눈 팔지 않고 노아의 마음을 알았기에 방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7일 후에 두 번째로 날아간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들어왔습니다. 육지에 대한 중대한 정보였습니다. 감람나무 새 잎은 평화의 상징이며 새 언약의 예표를 뜻합니다. 돌아온 비둘기는 온 지면의 물이 말랐고 새순까지 돋아났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7일 후 세 번째는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노아에겐 육지에 대한 생존여부의 정보를 알려주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둘기는 처음에 되돌아옴으로써 아직 때가 아님을 알려 주었고, 두 번째 감람나무 새 잎을 물고 옴으로 지면의 상황을 알려 주었고, 세 번째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으로서 이제는 방주 밖으로 나와도 된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비둘기는 노아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방주 공동체의 모든 식구들에게 큰 기쁨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으로 교회의 발전에 중대한 유익을 주는 신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비둘기가 방주에서 보호를 받고 살아 있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어떻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양육되고 훈련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에 필요한 비둘기 노릇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오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때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사명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존재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바르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까마귀와 비둘기에 대해서 다른 비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저처럼 해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과학주의적인 해석도 할 수 있고 조류학자의 견해로 해석도 할 수 있고 또 민속적인이고 우화적인 견해로 해석할 수도 있고 또다른 해석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해석은 교회에 유익하게 해야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석되어야 한다는 원칙만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어떻던 성서가 조명하고 있는 것은 까마귀가 아니라 비둘기였습니다. 노아가 원하는 답을 가지고 온 것은 까마귀가 아니라 바로 비둘기였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새를 내어놓은 이유는 땅이 마르고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얻고자 함이었는데 까마귀는 그 소식을 가져오지 않았으나 비둘기는 노아가 원하는 것을 알았기에 정확한 소식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방주를 두고 발생했던 까마귀와 비둘기를 통하여 보건데 이 지상 교회 안에도 까마귀 같은 종류의 사람도 있고, 비둘기 같은 종류의 신자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냉혈한이 되거나 공익을 생각하지 못하는 자기 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공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썩은 것을 탐식하고 자기만 생각하며 아무데나 주저앉는 까마귀와 같은 신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줄 알고, 봉사할 줄 알고, 주님께 기쁨을 가지고 돌아올 줄 아는 비둘기 같은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명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안과 좌절, 염려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근심의 강물이 걷히고 땅이 말랐다는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는 비둘기,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파란 잎새와 같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비둘기 같은 사람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평가할 때 "그는 까마귀처럼 살았다"는 평가를 받기 보다는 "그 분은 비둘기처럼 사셨다"는 평가를 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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